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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송길영의 빅 데이터, 세상을 읽다

모두 다 사랑하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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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송길영 Mind Mi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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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은 항상 분주했습니다. 큰댁이 아니라 차례를 지내러 부모님과 시골에 가야 했습니다. 차 타는 일이 적던 시절, 멀미로 고생하던 저에겐 2시간이 안 되는 버스 여행도 고역이었습니다. 손이 야물지 못한 어린 나이라 젓가락질이 서툴러 큰아버지께 받던 타박이 야속했기에 명절이 다가오면 이번엔 안 가겠다, 투정도 부렸습니다. 차례 후 둘러앉은 밥상에서 숟가락으로만 먹으려 애썼던 기억이 지금도 아른합니다.

그래도 넉넉한 먹거리와 친척들이 주신 세뱃돈이 기대되기에 즐거운 명절이었습니다. 이번 설에는 모처럼 KBS가 큰 선물을 주었습니다. ‘KBS 대기획’ 송골매 콘서트가 그것이었습니다. 배철수를 주축으로 1979년 결성된 후, 1982년 구창모의 영입으로 가요계를 휩쓸었던 전설의 그룹이 ‘40년 만의 비행’이라는 부제로 다시 뭉쳤습니다.

올 설날 찾아온 반가운 선물
송골매 40년 만의 재회 감동
인생의 무게와 의미 일깨워

빅데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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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의 행진’이라는 프로그램을 기억하시나요. 매주 청춘들을 TV 앞으로 끌어들였던 이 프로그램에 단골로 나왔던 이번 설 콘서트의 주인공들이 칠순을 넘겼다 합니다. 예로부터 70은 드문 일이라 했던 두보가 본다면 전혀 믿지 못할 만큼 지금도 ‘젊음’을 지키고 있는 두 스타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잊기 쉬운 진리를 우리에게 다시 알려주었습니다. 서로에게 은인이자 삶의 일부라 말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 이들의 우정과 각자 다른 장점이 더해진 시너지의 행운에 부러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화면 속 콘서트는 무대 위와 아래에서 40년 세월이 펼쳐졌습니다. 그 시절 열성 팬은 함께 다니던 친구와 나란히 객석에 앉아 어느덧 환갑이 다 되었음을 수줍게 고백합니다. 벽에 붙인 브로마이드와 책상 위 차곡차곡 모으던 음반은 예나 지금이나 10대의 표상입니다. 그러다 나이가 들며 삶은 바빠지고 관계의 무게가 늘어납니다. 어느덧 좋아하는 일만 하겠다던 순수함의 잔치는 끝났다고 말하는 세상의 압력에 무릎을 꿇기도 합니다. 그 시절 그들이 이제 이순을 바라봅니다. 세월은 그렇게 다가옵니다.

객석에 찾아온 당시 국민 여동생으로 불린 배우 임예진은 조카가 태어난 후의 감정을 쓴 글이 노래로 만들어져 히트곡 ‘아가에게’ 작사가가 자신이었음을 밝혔습니다. 스티비 원더가 자신의 딸이 태어나자 만들었다는 ‘Isn’t she lovely’의 스토리가 떠오릅니다. 하나하나의 곡마다 우리 말로 표현된 아름다운 언어가 자막으로 설명되며 그때의 화면과 함께 시대의 서정을 고스란히 전해 주었습니다.

멤버들이 같이, 또 따로 활동한 시기는 1980년대를 가득 채웁니다. 가진 것은 적어도 미래는 밝을 것이라 희망하던 고도성장기, 화살표가 오른쪽 위로 솟구치며 누구나 무엇인가를 꿈꾸는 것이 가능하던 시대였습니다. 축적의 부가가치가 늘어남이 기대되며 더 긴 준비의 시간이 허락되자 청춘은 여유를 갖기 시작했습니다. 빈곤의 그늘이 옅어지고 생산의 눈뭉치가 굴러가자 소비의 미덕이 처음으로 허락되고 새로운 문화가 꽃피기 시작했습니다. 그 시절의 불안과 희망이 고스란히 그들의 음악에 남아 있습니다.

물끄러미 TV를 보다 그룹 프로콜 하럼(Procol Harum)의 2017년 공연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1967년 데뷔하며 발표한 ‘A whiter shade of pale’은 발표하자마자 많은 사람을 사로잡았습니다. 그 후 1000번도 넘게 다른 가수들에 의해 불린 이 명곡을 50년이 지나도록 부르는 모습을 보며 인생이라는 두 글자의 무게를 느꼈습니다. 시대를 초월해 우리의 마음을 움직인 작품을 남긴 사람은 잊히지 않습니다. 반 백 년이 넘도록 사람들을 감동시킨 그룹의 보컬 게리 브루커(Gary Brooker)는 작년 세상을 떠났지만 우리의 가슴에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이처럼 나의 행위는 사라져도 나의 뜻은 남습니다. 이번 콘서트에서 그동안 앨범으로만 만나온 우상의 라이브를 직접 볼 수 있음에 감사함을 표현한 중학교 1학년 팬을 통해 뜻의 이어짐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설을 가득 채운 두 시간이 넘는 공연은 ‘모두 다 사랑하리’로 마지막을 장식했습니다. 지금도 너무나 세련된 천재 김수철의 멜로디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메시지는 아름다운 가사로 더욱 선명히 다가옵니다.

‘비 맞은 태양도 목마른 저 달도 내일의 문 앞에 서 있네/ 타오르는 태양도 날아가는 저 새도 다 모두 다 사랑하리.’

그렇습니다. 지나간 나날도, 지금의 일상도, 다가올 내일도 모두 다 사랑합니다.

송길영 Mind Min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