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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할매글꼴’ 주역들 학사모 쓰던날, 덩실덩실 춤사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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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25일 경북 안동시 경북도청에서 이철우 경북지사(가운데)로부터 졸업장을 받은 ‘칠곡할매글꼴’ 할머니들이 춤을 추고 있다. 김정석 기자

25일 경북 안동시 경북도청에서 이철우 경북지사(가운데)로부터 졸업장을 받은 ‘칠곡할매글꼴’ 할머니들이 춤을 추고 있다. 김정석 기자

“차렷! 선생님께 경례!”

25일 오전 경북 안동시 경북도청 1층 미래창고. 평소 직원들이 책을 읽으며 쉬는 장소로 활용되는 곳에 커다란 칠판이 세워졌다. 칠판 앞에는 옛날 모습을 간직한 책·걸상도 마련됐다. 천장에 태극기와 교훈까지 내걸린 풍경이 ‘그때 그 시절’ 교실을 옮겨온 듯했다.

이윽고 할머니 네 명이 교복을 단정하게 차려입고 교실로 들어섰다. 일흔이 넘어 깨친 한글로 디지털 글씨체 ‘칠곡할매글꼴’을 만들어 관심을 끈 주인공들이었다. 건강 악화로 참석하지 못한 이종희(91) 할머니를 제외한 추유을(89)·이원순(86)·권안자(79)·김영분(77) 할머니가 명찰을 달고 자리에 앉았다. 이날 수업은 건강과 개인 사정으로 더는 한글 수업에 참석할 수 없는 이종희·이원순·김영분 할머니를 위한 ‘마지막 수업’이었다.

칠곡할매글꼴은 성인문해교육을 통해 일흔이 넘어 한글을 배운 다섯 명의 칠곡 할머니가 넉 달 동안 종이 2000장에 수없이 연습한 끝에 2020년 12월 만든 글씨체다. 윤석열 대통령이 각계 원로와 주요 인사 등에게 보낸 신년 연하장은 물론 한글과컴퓨터, MS오피스 프로그램에 사용되고 국립한글박물관 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이날 교단엔 이철우 경북지사가 일일교사로 섰다. 수업은 한 명 한 명 출석을 부르는 것으로 시작됐다. 할머니들은 이 지사가 이름을 부르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큰 소리로 대답했다.

수업 말미에는 받아쓰기 시험 치렀다. 이 지사가 ‘화랑’ ‘호국’ ‘선비’ ‘새마을’ 등 단어를 읽으면 할머니들이 받아썼다. 결과는 네 할머니 모두 만점. 이 지사가 공책에 붉은 색연필로 ‘100점’ 표시를 하자 할머니들은 웃으며 손뼉을 쳤다.

시험을 만점으로 통과한 할머니들은 졸업장을 받고 학사모를 썼다. ‘위 학생은 행복대학 수업에서 위와 같이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기에 이 상장을 수여합니다’라고 적힌 상장도 받았다. 상장과 졸업장을 받아든 할머니들은 학사복을 입은 채 덩실덩실 춤을 췄다.

이원순 할머니는 “이름 쓸 줄도 몰랐는데 한글을 배우게 해주셔서 감사하다. 아들딸도 좋아한다. 오늘 너무 즐겁고 좋다”고 말했다.

김영분 할머니는 “몰랐던 것도 많이 배우고 사람들도 만나고 교복도 입고 모든 게 너무 좋았다”며 “한글은 물론 영어도 공부하고 싶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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