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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초짜리 BTS 춤 춰봐"…예일대생 근자감 깬 한국계 교수 명강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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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초짜리 BTS(방탄소년단) 안무 동영상을 여러 번 보여주고 따라 할 수 있겠냐고 물어보니 학생 10명이 강단에 올라오더군요. '그래 봤자 6초인데 얼마나 어렵겠어?'라고 생각한 거죠."

안우경 미국 예일대 심리학과 석좌교수가 쓴 『씽킹 101: 더 나은 삶을 위한 생각하기 연습』(흐름출판)은 BTS 춤을 엉망으로 따라 하는 예일대 학생들을 보여주며 시작된다. 이들이 뮤직비디오를 몇 번 보고 안무를 따라 할 수 있다고 과신한 것은 '유창성 착각'에 빠졌기 때문이다. 유창성 착각은 어려운 일을 척척 해내는 사람을 보면 그 일이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인지 오류 현상이다.

안우경 미국 예일대 심리학과 석좌교수. 예일대 학부생을 대상으로 진행한 '생각하기' 강의를 토대로 인지심리학 대중서『씽킹 101: 더 나은 삶을 위한 생각하기 연습』(흐름출판)을 썼다.

안우경 미국 예일대 심리학과 석좌교수. 예일대 학부생을 대상으로 진행한 '생각하기' 강의를 토대로 인지심리학 대중서『씽킹 101: 더 나은 삶을 위한 생각하기 연습』(흐름출판)을 썼다.

안 교수는 유창성 착각은 메타인지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한다. 메타인지는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파악하는 능력이다. 이를테면 몸으로 수영을 익힌 사람의 뇌가 스스로 수영이 가능하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문제는 눈으로만 봤을 뿐 실제로 시도해보지 않은 것들을 잘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경우다. BTS 안무를 반복 시청한 학생들처럼 어떤 대상에 익숙함을 느낄 때 우리는 쉽게 해낼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질 수 있다.

예일대 최고강의상 받은 교수 심리학 대중서

이 책에서 안 교수는 BTS의 안무 동영상이나 아이유의 노래 '좋은 날'의 3단 고음 동영상을 여러 번 보면 나도 쉽게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느끼는 착각(유창성 착각), 사건의 발생 순서가 중요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가장 최근에 있었던 사건을 모든 결과의 원인으로 돌리려는 경향(최신성 착각), 99개의 좋은 리뷰보다 3개의 나쁜 리뷰에 영향을 받아 물건을 환불하는 등 긍정적인 자극보다 부정적인 자극에 더 큰 영향을 받는 심리(부정성 편향) 등을 일상적 예시와 함께 풀어냈다.
주요 심리학 실험과 예시는 안 교수가 예일대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생각하기' 수업 내용에서 가져왔다. 안 교수는 이 강의로 지난해 예일대 학생들이 뽑은 최고 강의상을 받았다.

안우경 예일대 심리학과 석좌교수가 쓴 인지심리학 대중서『씽킹 101: 더 나은 삶을 위한 생각하기 연습』(흐름출판) 표지.

안우경 예일대 심리학과 석좌교수가 쓴 인지심리학 대중서『씽킹 101: 더 나은 삶을 위한 생각하기 연습』(흐름출판) 표지.

인지 오류는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방관에 의한 비극보다 악행에 의한 비극에 더 크게 반응한다. 굶어 죽은 사람보다, 살인 피해자를 더 연민하는 식이다.
안 교수는 "사람들은 방관보다 악행이 더 나쁘다고 생각하지만 두 가지가 비슷한 해악을 끼치기도 한다"며 "기후 변화 대응에 동참하지 않는 것, 형평성에 어긋나는 일을 목격하고 신고하지 않는 것, 투표를 포기하는 행위 등이 그 예"라고 했다. 그러면서 "직장이 마음에 안 들어도 이직 준비를 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대충 흘려보내거나, 파탄 난 결혼을 끝내지 않고 현상유지 하는 것도 방관에 따른 비극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향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부정성 편향'은 부정적 정보에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심리다. 똑같은 고기라도 '지방 함량 25%'가 아닌 '살코기 함량 75%' 고기가 더 맛이 좋다고 평가하는 것, '지연될 확률이 12%인 비행기'보다 '정시 운항할 확률이 88%인 비행기'를 선호하는 것이 그 예다. 미국 입학사정관들이 A 학점과 C 학점을 고루 받은 학생보다 모든 과목에서 B 학점을 받은 학생이 대학에서 더 좋은 학점을 받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 역시 부정성 편향에 따른 결과다.

유식하다는 착각 글 쓰면 깨져…"불행 이유 찾지 마세요"

안 교수는 인지 오류를 피해갈 수 있는 해법도 다양하게 제시한다. 특히 정치·사회적 현안과 관련한 유창성 착각을 피하기 위해서는 글을 써보는 게 좋다고 했다.
그는 "낙태, 복지, 기후 변화 등 사회문제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각각의 사안에 찬성 또는 반대하는 이유와 특정 정책이 사회에 미칠 영향을 글로 써보라는 요구를 받으면 놀랍도록 겸손해진다"며 "자신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설명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때 지식의 부족함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런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이 줄어들면 정치적 극단주의가 완화한다는 심리학 연구 결과도 있다.

자책감이나 후회 같은 부정적 감정을 어떻게 떨쳐낼 수 있냐는 질문에 안 교수는 "불행의 이유를 찾는데 몰두하지 말라"고 했다.
"사람들은 어려운 시험에 통과하거나 큰 거래를 성공적으로 체결했을 때는 '왜 일이 잘 풀렸을까' 고민하며 날밤을 새진 않지만 무언가 실패하면 '왜'에 집착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불행의 인과관계가 늘 무 자르듯 뚜렷한 것은 아니다"면서다.
그는 "불행한 감정에 사로잡혀 무력감을 느낄 때는 통제 가능한 일을 생각하며 생각을 환기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오늘 저녁에 무엇을 먹을까', '빨래는 몇 시에 할까' 등 사소하지만 구체적인 행동으로 부정적인 감정을 산란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전략을 "아주 작은 시작의 힘"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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