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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시장 국경이 없어졌다…한국작가 키워야 살아남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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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삼청동 국제갤러리 집무실에서 양혜규 작품 앞에 선 이현숙 국제갤러리 회장.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서울 삼청동 국제갤러리 집무실에서 양혜규 작품 앞에 선 이현숙 국제갤러리 회장.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지난해 말 글로벌 미술전문지 '아트리뷰(ArtReview)' 선정 '파워 100'에 한국인 3명(한병철·정도련)이 올랐다. '파워 100'은 세계 미술계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으로, 명단은 작가에서부터 미술관장, 화랑을 운영하는 갤러리스트, 큐레이터, 철학자·이론가까지 망라한다. 한국인으로 8년 연속 이 명단에 이름을 올린 인물로는 국제갤러리 이현숙(73)회장이 유일하다. 아트리뷰는 “그는 국내외 미술계를 잇는 가교 역할을 했다"며 "양혜규 등 예술가들의 활약에 중요한 역할을 했고, 단색화 명성을 확립하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이현숙 국제갤러리 회장 인터뷰 #8년 연속 '아트리뷰 파워 100'에 #4월 칼더-이우환 전시 준비중 #"작가들 아카이브 아직 부족해"

한편 오는 4월 6일부터 국제갤러리에선 '모빌의 창시자' 알렉산더 칼더(1898~1976)와 이우환(86)의 작품세계를 함께 조명한다. 전시는 동·서양의 미술 거장 칼더와 이우환의 만남으로도 눈길을 끌지만, 칼더재단에서 먼저 제안해 추진됐다는 점에서 더 화제다. "동시대 작가 중 이우환을 주목하고 존경해왔다"는 칼더재단 측의 강력한 의지가 현재 눈에 띄게 달라진 'K-미술'의 위상을 보여준다.

키네틱 아트의 창시자 알렉산더 칼더의 'Black Beast', 1940. Image courtesy of Calder Foundation, New York / Art Resource, New York c 2021 Calder Foundation, New York /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 SACK, Seoul사진: Ken Adlard © Calder Foundation, New York[사진 국제갤러리]

키네틱 아트의 창시자 알렉산더 칼더의 'Black Beast', 1940. Image courtesy of Calder Foundation, New York / Art Resource, New York c 2021 Calder Foundation, New York /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 SACK, Seoul사진: Ken Adlard © Calder Foundation, New York[사진 국제갤러리]

4월 6일부터 서울 삼청동 국제갤러리에서 알렉산더 칼더와 나란히 전시하는 이우환 화백. [사진 국제갤러리]

4월 6일부터 서울 삼청동 국제갤러리에서 알렉산더 칼더와 나란히 전시하는 이우환 화백. [사진 국제갤러리]

지난해 한국 미술시장은 사상 처음으로 거래총액 1조원을 돌파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해외 갤러리들이 잇따라 서울에 지점을 열었고, 국내 작가들의 해외 전시가 이어지고 있다. 'K-미술 시대'가 활짝 열렸다. 1982년에 문을 열고 지난 40년간 한국 미술계 최전선을 지켜온 이 회장은 지금 미술계를 어떻게 볼까. 그를 만나봤다.

한국 미술시장이 큰 전환점을 맞은 거 같다. 
맞다. 전 세계가 이렇게 밀려 들어온 적이 없었다. 요즘엔 그냥 칼끝에 서 있는 것 같다. 한국갤러리가 바짝 긴장해야 한다. 적당히 해서는 안 된다. 한국미술을 키우기 위해선 어느 갤러리 하나의 힘으로는 절대 안 되고, 네댓 개 갤러리가 서로 경쟁하며 같이 움직여야 한다. 
아트리뷰 '파워 100'에 8년 연속 선정됐다. 
과분한 평가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론 국내와 해외 시각의 차이가 있다는 걸 절실하게 느낀다. 해외에서 우리 갤러리를 더 높게 평가해주고, 더 예우해준다. 미술관이든, 컬렉터든 세계 구석구석에 우리 고객이 있다. 40년간 계단을 하나씩 밟고 올라가듯이 일해온 성과라고 생각한다.
처음엔 컬렉터였다가 갤러리를 차렸다고. 
말 그대로 내가 '선무당'이었다. 아이 셋을 키우며 살림하다가 화랑을 열었다. 젊을 땐 그림 사는 게 그렇게 좋았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내가 직접 팔아보고 싶어져 남편 몰래 화랑을 차렸다. 곧 들통나 난리가 났지만(웃음). 당시 모 일간지 미술 기자가 "저 유한마담이 몇 개월이나 할 수 있을까'라고 했다는데 여기까지 왔다.
40년간 성장해온 비결이 뭘까.  
무엇보다 이 일을 하는 게 굉장히 즐거웠다. 이게 다른 장사와는 다르다. 작가를 몇 년간 지원하고, 시간이 걸려 그 작가가 큰 미술관에서 전시하게 됐을 때 느끼는 보람이 크다. 초기에 젊은 작가로 만난 이기봉(65) 홍승혜(63)작가가 지금은 중견이다. 칸디다 회퍼(78), 아니쉬 카푸어(68), 빌 비올라(72) 등 세계적인 작가들도 오랫동안 함께 해왔다. 

그는 "화랑이 아무리 노력해도 낙하산으로 내려온 작가는 절대 못 키운다"며 "작가도 고객도 다 롱텀(long-term)으로 보고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작품을 팔기 위해선 작가도, 고객도 잘 골라서 관계를 맺어야 한다"며 "갤러리가 작가를 키우기 위해선 작품을 아무한테나 팔지 않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고객을 잘 골라야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예술작품을 소장하는 게 나중에 큰 수익을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작가와 작품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안 된다. 루이스 부르주아(1911~2010) 같은 거장도 생전에 작품가가 오르락내리락했다. 작가의 성장을 응원하며 기다려줘야 한다. 
과거엔 국내서 '그림 수집=탈세'로 통했다.    
그것도 오래된 이야기다. 우리는 초기부터 외국 작가들 작품을 많이 다뤘기 때문에 자료 없이 거래할 수가 없다. 미국서 공부하고 돌아온 아들이 현지 회계법인 PwC 회계감사팀에서 일한 경력이 있어 이후부터 일찍 투명한 거래 시스템을 갖췄다. 그런데 그 과정이 힘들었다. 고객들은 왜 이렇게 빡빡하게 구느냐고 했고, 작가들도 다른 갤러리는 세금 내게 해서 힘들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일해온 지 25년째다.  
요즘엔 해외 갤러리가 한국 작가 발굴에도 나서고 있다. 
한국 미술계가 살아남으려면 정말로 긴장해야 하는 이유다. 내 목표도 더 확고해졌다. 한국 작가를 키워야 한다. 전에 우리가 외국 작가를 국내에 소개했다면 이제 거꾸로 우리 작가를 키워서 밖으로 나가야 한다. 국내 갤러리라고 하더라도 작가를 제대로 지원하지 못하면 작가가 붙어 있지도 않다. 미술시장에 국경이 없어지고 있다. 

현재 국제갤러리 전속 외국 작가 대 한국 작가 비율은 50 대 50 정도다. 이 회장은 "해외 갤러리가 한국 작가를 소개하기 시작한 것은 반가운 일"이라면서도 "관건은 그들이 한국 작가를 어느 정도까지 지원해 국제적인 작가로 성공시킬 것이냐는 것"이라고 말했다.

젊은 컬렉터들이 늘고 있다. 초보 컬렉터에게 조언한다면.  
그림은 반드시 남아 있는 돈으로 사고 즐거움을 위해 사라. 돈 주고 사서 걸어놨으면 즐거워야 하지 않겠나. 절대 빚내서 사면 안 된다. '저게 돈이다'하고 보면 고통만 된다. 
'K-미술 시대'를 위해 작가들은 어떤 준비를 해야 하나. 
국내 작가 아카이브가 아직도 너무 약하다. 단색화를 해외에 소개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게 아카이브였다. 박서보 화백만 준비돼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가는 자기 작품에 대한 모든 기록을 갖고 있어야 한다. 드로잉도 중요하다. 작가가 크면 그게 다 초기 작품이다. 젊은 작가들은 지금 작품이 팔리지 않더라도 열심히 그리고 쌓아 놓아야 한다. 

이 회장은 "작가에게도, 화랑에게도 탁월성을 인정받기 위해선 작품 하나가 아니라 빽빽하게 축적된 것이 있어야 한다"며 "한국 단색화의 기적도 여러 작가와 함께 2000점에 달하는 작품군(群)이 있어 가능했다. 한국미술도 그렇게 힘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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