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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中반도체 우회 수입…아르메니아선 휴대폰 대거 매입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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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러시아가 중국과 옛 소련 국가를 통해 금수 품목을 우회 수입하는 수법으로 서방의 경제제재에 대응해 어느 정도 성과를 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가운데 중국의 러시아 지원 문제를 놓고 미국이 반발하는 등 우크라이나 전쟁이 미ㆍ중 대립을 더욱 자극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경제제재에도 불구하고 공급망 재편 등으로 러시아 국내 소비재 수급 상황이 정상화되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은 지난달 26일 러시아 모스크바 마네즈나야 광장의 크리스마스 마켓을 찾은 시민들이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경제제재에도 불구하고 공급망 재편 등으로 러시아 국내 소비재 수급 상황이 정상화되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은 지난달 26일 러시아 모스크바 마네즈나야 광장의 크리스마스 마켓을 찾은 시민들이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의 보안 전문 싱크탱크인 실버라도 폴리시 액셀러레이터(Silverado Policy AcceleratorㆍSPA)가 지난 22일(현지시간) 공개한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의 제재망을 피하기 위해 반도체 등 주요 필수품을 중국ㆍ홍콩 등을 경유해 대거 수입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한마디로 중국 등이 서방 물품을 대신 사들여 러시아에 되판다는 얘기다.

그러다 보니 러시아로 향하는 세계 각국의 전체 수출 규모가 제재가 발동되기 이전 수준으로 거의 회복한 상황이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이와 관련, 블룸버그 통신은 소식통을 인용해 “중국 국영기업들이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러시아를 지원한 정황을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포착해 물밑에서 중국 정부에 문제 제기했다”고 24일 전했다. 다만 이들 기업이 러시아에 구체적으로 어떤 물자를 지원한 것인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통신에 따르면 중국 기업들의 대러시아 수출은 “비살상 군사적ㆍ경제적 지원으로 제재 체제를 전면 회피하는 수준은 아닌 것”으로 파악됐다.

중국에 반도체 수입 아웃소싱

실제로 SPA 보고서에서도 이같은 흐름이 드러난다.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해 10월 기준 러시아의 최대 공급국이자 전년 대비 수출이 가장 많이 증가한 나라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 중국의 대러시아 수출이 일시적으로 감소했으나, 오히려 침공 이후 빠르게 반등한 결과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중국의 대러시아 수출 품목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반도체다. 서방 각국은 스마트폰에서부터 미사일에 이르기까지 전자장비의 필수 부품인 반도체에 대해선 제재 초기부터 수출을 통제해왔다.

그런데 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는 전쟁을 일으키기 전부터 이같은 서방의 제재 칼끝을 대비한 것으로 분석된다. 반도체 재고를 대폭 늘리면서 중국 등 제재와 무관한 국가들로 공급망을 바꿔 나간 것이다. 반도체 수입 자체를 아웃소싱한 셈이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 결과 중국ㆍ홍콩은 러시아로 가는 반도체의 최대 선적지가 된 상황이다.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중국ㆍ홍콩을 경유한 반도체 수출이 전체 대러시아 수출의 55%를 차지할 정도다.

아르메니아서 휴대폰 수입 급증

러시아에 가까운 독립국가연합(CIS) 회원국들과 튀르키예 등도 이같은 우회 수출의 통로가 되고 있다. 일례로 아르메니아의 휴대전화 무역 규모를 보면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되던 수입량이 전쟁 이후 급증세를 보인다.

이는 아르메니아가 휴대전화를 러시아에 그만큼 재수출한 결과였다. 전쟁 이전만 해도 러시아가 아르메니아에서 수입하는 휴대전화는 없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다만 이같은 아르메니아의 재수출 물량도 점차 줄고 있다. 러시아 국내 시장점유율 30%(2021년 기준)로 1위였던 삼성전자와 3위 애플(13%) 등이 철수한 틈을 노리고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이 집중 공략하고 있어서다. 러시아의 한 해 스마트폰 출하량이 2900만~3000만대(세계 6위 규모)인 만큼 이같은 무역 추세는 글로벌 시장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이뿐 아니라 가전제품과 승용차 등 러시아 소비재 시장도 완연한 회복세다. 보고서는 그중 러시아 국내 생산품의 시장점유율이 높은 세탁기(75%), 냉장고(50%)의 수급이 원활해진 것에 주목했다. 서방의 제재 이후 일시적으로 줄었던 주요 부품의 러시아 유입이 정상화됐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한국산 등 중고차 수입도 늘어

러시아 승용차 시장에선 다소 특이한 무역 동향이 나타났다. 중국산 승용차의 수입량이 많이 늘어난 가운데 한국ㆍ일본ㆍ독일산 중고차 수입량이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계속 늘어나는 모습이다.

이를 두고 서방 자동차 업체들의 러시아 시장 철수 이후 줄어든 수입 신차 규모를 제3국을 통한 중고차 수입이 대체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보고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비해 주요 필수품의 재고량 확보에 나선 점도 짚었다. 서방 제재를 염두에 두고 전쟁을 준비했다는 얘기다. 실제로 전쟁 직전 달인 지난해 1월 러시아의 반도체 재고량 등은 러시아 정부가 집계한 공식 통계 사상 최고 수준이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하지만 재고 확보와 공급망 재편이란 러시아의 전략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실패할 가능성이 상당하다는 관측도 나온다. 제3국 우회 수출을 막는 등 서방의 제재망이 더 촘촘해질 수 있다는 전망에서다.

현재도 소비재 수급 흐름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전쟁 전보다 품질은 떨어지는데 가격만 올랐다”는 러시아 국민의 불만이 들끓는 실정이다. 또 중국 의존도가 너무 높아진 탓에 러시아 정부 내에서도 경계의 목소리가 나온다고 보고서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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