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車 앞유리 녹이는데만 온수 4리터…'올스톱' 제주에 갇혔다 [영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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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제주도에는 4만여 명의 발이 묶여 있다. 한파와 강풍, 대설로 항공‧선박 등 모든 교통편이 끊기면서다. 이들 대부분은 설 연휴를 제주에서 보내고 귀경하려던 사람들이다. 본지 김민상 기자가 현장에서 눈보라와 싸운 이야기를 보내왔다.

24일 오후 제주시 오라3동 인근 도로에서 한 시민이 눈보라를 맞으며 걷고 있다. 뉴스1

24일 오후 제주시 오라3동 인근 도로에서 한 시민이 눈보라를 맞으며 걷고 있다. 뉴스1

23일 오후 6시쯤 제주 귤 체험 농장에서 숙소로 이동 중이었다. 이때 날아온 문자 메서지 한 통이 모처럼의 가족 여행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대설로 인해 이튿날(24일) 오전 11시로 예정됐던 항공권이 취소된다’는 통보였다.

여객선사는 “전화 불가” 안내 방송만

연휴 이후 예정된 일정이 순식간에 머릿속을 지나갔다. 급한 마음에 부산까지 배로 이동할 생각으로 여객선 쪽에 연락해봤지만 “전화가 불가능하다”는 자동응답 안내만 흘러나왔다. 비행기는 27일 오후 5시부터 예약이 가능했다. 이마저도 2시간 뒤에는 ‘매진’이라는 안내가 떴다.

24일 오후 제주시 조천읍의 한 편의점. 폭설로 주변에 차량이 거의 없다. 김민상 기자

24일 오후 제주시 조천읍의 한 편의점. 폭설로 주변에 차량이 거의 없다. 김민상 기자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24일 오후 6시 기준으로 백령~인천, 포항~울산, 군산~어청도 등 여객선 86개 항로 113척의 운항이 풍랑에 의해 통제됐다. 제주지방항공청에 따르면 강풍특보와 급변풍특보가 발효 중인 제주공항에서는 이날 국내선 466편(출발 233, 도착 233)과 국제선 10편(출발 5, 도착 5) 등 총 476편이 모두 결항했다.

항공권은 27일 오후 5시 돼야 예약 가능    

그나마 숙소와 차량은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 육지에서 제주로 들어오는 항공‧선박도 끊기면서 추가 수요가 없어서다. 다행히 숙소 1박과 렌터카 운행은 연장이 가능했다. 24일 오전에 눈을 떠보니 제주 북쪽 김녕항 근처에 있는 숙소 일대에 세찬 바람과 눈이 창문을 두들겼다. 이날 오후 5시 기준 한라산에는 사제비 20.3㎝, 삼각봉 18.3㎝, 어리목 15㎝ 등 눈이 쌓였다.

24일 오후 제주시 오라3동 인근 도로에서 차들이 눈보라를 맞으며 거북이 운행을 하고 있다. 뉴스1

24일 오후 제주시 오라3동 인근 도로에서 차들이 눈보라를 맞으며 거북이 운행을 하고 있다. 뉴스1

아침 식사를 하러 숙소에서 400m가량 떨어진 식당으로 이동했다. 귀가 따가울 만큼 바람이 셌다. 2~3년마다 제주에 한 번씩 와봤지만 강원도 산간과 비슷한 추위를 느껴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제주의 낮 최고기온이 제주 영하 0.8도, 서귀포 영하 1.2도, 성산 영하 2도였다. 하지만 강풍 때문에 체감 온도는 영하 10도 이하였다.

강풍 때문에 체감 온도는 영하 10도  

오후 1시 무렵 잠시 구름 사이로 햇빛이 비치더니 금세 먹구름이 몰려와 눈발이 창문을 다시 세차게 때렸다. 오후에는 주변 식당이 모두 문을 닫아 전날 체험 농장에서 사 온 귤 몇 개와 물 만으로 4인 가족이 하루 가까이 버텨야 했다.

간단한 먹거리를 사 올 요량으로 5㎞쯤 떨어진 편의점에 전화를 걸었다. “시내에는 차가 가끔 지나다닌다”는 말을 듣고 혼자 다녀오기로 결정했다.

일단 시동 걸기부터 난제였다. 차량 앞문은 눈이 쌓인 데다, 이마저도 단단히 얼어 1.5L 물통에 온수를 담아 세 번은 씻어내야 했다. 차량 주변을 모두 보여 주는 어라운드 뷰 기능은 카메라에 눈이 엉켜 절반밖에 쓰지 못했다. 센서에 이물질이 끼었으니 제거하라는 안내 메시지가 모니터에 떴다.

24일 제주시 조천읍에 있는 국도. 표지판이 눈보라에 가려진다. 김민상 기자

24일 제주시 조천읍에 있는 국도. 표지판이 눈보라에 가려진다. 김민상 기자

시속 5~10㎞나 될까. 거북이 주행으로 편의점에 가까스로 도착해보니 주변에는 시내버스만 돌아다니고 있었다. 편의점 직원은 “산 주변 눈길 주행은 위험하니 주의하라”고 일러줬다.

임시편 투입…25일도 공항 혼잡 예상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는 안내 표지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과 섞인 바람이 앞을 가렸다. 길을 지나쳐 브레이크를 급하게 밟으니 바퀴가 헛돌면서 차량이 앞으로 미끄러졌다. “블랙아이스를 만나면 미끄러지는 방향과 반대로 운전대를 돌리면 안 된다”는 조언을 들어 봤지만 막상 부딪혀 보니 말처럼 쉽게 되지 않았다.

한국공항공사는 25일부터 국내선 임시편 38편(출발 21, 도착 17)을 추가 투입돼 결항편 승객들을 수송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날이 풀리기를 실낱같이 기대하던 여행객 4만여 명이 이날 모두 제주를 나가지 못했기 때문에 25일 제주공항은 더욱 극심한 혼잡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24일 제주시 구좌읍에서 촬영한 차량 메인 모니터. 차량 카메라에 눈이 붙어 주변이 절반 밖에 보이지 않는다. 김민상 기자

24일 제주시 구좌읍에서 촬영한 차량 메인 모니터. 차량 카메라에 눈이 붙어 주변이 절반 밖에 보이지 않는다. 김민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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