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술 읽는 삼국지](4) 멍청한 하진은 죽고 음흉한 동탁이 낙양을 차지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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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량자사(西涼刺史) 동탁이 하진의 밀조를 받자 회심의 미소를 지었습니다. 동탁은 황건적에게 연신 패했지만, 십상시에게 뇌물을 먹인 까닭에 자신의 본거지에서 벼슬을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책사였던 동탁의 사위는 동탁이 야심을 이루는데 그럴듯한 명분을 만들어냅니다.

“천하가 어지럽고 반란과 반역이 끊이질 않는 것은 상시(常侍) 장양 등이 지켜야 할 사람의 도리를 업신여기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신이 듣자하니 ‘끓는 물을 식히려면 불부터 빼야 하고, 고름을 짜내는 것이 아프기는 하지만 종기가 속에서 곪는 것보다는 낫다’고 하였습니다. 신이 감히 징과 북을 울리며 낙양으로 들어가는 것은 장양 등을 쓸어내려고 하는 것이옵니다. 이는 사직은 물론 천하를 위해서도 다행한 일이옵니다.”

무능한 대장군 하진 [출처=예슝(葉雄) 화백]

무능한 대장군 하진 [출처=예슝(葉雄) 화백]

동탁의 말을 듣고 기뻐한 자는 하진 뿐이었습니다. 시어사(侍御史) 정태와 중랑장(中郞將) 노식은  모두 동탁의 입경(入京)을 반대했습니다. 동탁은 승냥이와 이리 같은 자이므로 들어오게 하면 반드시 변란이 생긴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하지만 하진은 듣지 않았습니다. 계속해서 같은 말만 반복했습니다. “그렇게 의심이 많아서야 어디 큰일을 하겠느냐?” 정태와 노식 등 대신들은 벼슬을 버리고 한탄하며 낙향합니다.

결국, 하진은 눈칫밥과 감언으로 천하를 장악한 장양과 단규 등 십상시들의 선제공격에 어처구니없이 죽고 맙니다. 모종강도 무능한 하진의 죽음을 풍자하는 시 한 편을 넣었습니다.

사태가 급박해지자 수도의 치안을 담당했던 원소가 십상시와 그 가속을 처단합니다. 궁궐은 피로 물들고 아수라장이 됐습니다. 이 와중에 소제와 진류왕이 최의의 집으로 피난하였습니다. 영제에게는 유변과 유협의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첫째인 변이 소제이고, 둘째인 협은 진류왕입니다. 장자상속에 따라 변이 황제가 되었지만, 진류왕 협이 훨씬 영리하고 사리 분별이 뛰어났습니다. 진류왕의 영특함은 기병을 이끌고 기세등등하게 도성으로 들어온 동탁을 조목조목 논리로 응대하여 무릎을 꿇게 만들 정도였습니다.

진류왕의 사리가 분별한 말에 무릎을 꿇은 동탁 [출처=예슝(葉雄) 화백]

진류왕의 사리가 분별한 말에 무릎을 꿇은 동탁 [출처=예슝(葉雄) 화백]

동탁은 군마를 둔치고 형세를 관망하다가 난리가 나자 곧장 철갑기병을 이끌고 성안으로 들어와 권력을 장악합니다. 청소는 원소 등이 하고 자리는 동탁이 차지하였으니 걱정했던 일은 현실이 되어 버렸습니다. 동탁은 권력을 잡자 안하무인이었습니다. 모든 것은 자기가 맘먹은 대로 처리하였습니다. 동탁은 진류왕 협이 영특함을 알고 그를 황제로 옹립하려고 마음먹었습니다. 이는 진류왕의 영특함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동탁은 자신과 같은 성씨인 동태후(董太后)를 좋아하였는데, 동태후가 진류왕을 키웠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동탁이 진류왕을 황제로 옹립하려고 하자 병주자사(幷州刺史) 정원이 호통을 치며 반대했습니다. 동탁이 즉시 그를 죽이려 했으나 그의 부장인 여포의 위세가 대단하여 참고 넘어갑니다. 병주자사 정원도 하진이 보낸 밀조를 받고 왔습니다. 그럼, 하진은 동탁과 정원에게만 밀조를 보냈을까요? 아닙니다.

리동혁 작가가 번역한 『본(本) 삼국지』는 모종강의 연의뿐만 아니라 나관중의 연의도 함께 번역해 놓았습니다. 나관중 연의에는 하진이 4명의 장수에게 밀조를 보내는 내용이 있습니다. 바로 동군태수 교모, 하내태수 왕광, 병주자사 정원과 서량자사 동탁입니다. 그런데 낙양에 들어온 것은 동탁과 정원이고, 교모와 왕광은 하진이 주살된 것을 알고는 오다가 다시 돌아가 버렸습니다.

여포는 잘 아시다시피 천하제일의 비장(飛將)입니다. 연의 전반부를 장식하는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그의 무예가 얼마나 뛰어났는가는 ‘사람 중엔 여포’라는 말로 잘 알 수 있습니다. 동탁은 이러한 여포를 자신의 부하로 삼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여포와 고향이 같은 호분중랑장(虎賁中郞將) 이숙이 동탁에게서 적토마(赤免馬)와 보물을 가지고 여포를 회유합니다. 여포에게 정원은 상관이자 양부(養父)입니다. 여포는 주인을 제대로 만날 수 없어서 잠시 양부로 모시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를 안 이숙이 적토마와 보물을 내놓으며 꼬드깁니다.

“좋은 새는 나뭇가지도 가려서 앉고, 훌륭한 신하는 주인을 가려서 섬긴다네.”

적토마가 어떤 말인가요. 하루에 천 리를 달리는 명마입니다. ‘말 중엔 적토마’이지 않습니까? 요즘으로 치면 자동차인데, ‘롤스로이스’를 준 것입니다. 여포는 단번에 마음이 솔깃해집니다. 이제 동탁에게로 가는 길만 남았습니다. 엄청난 선물을 받았으니 답례품을 가지고 가야겠지요. 여포가 밤중에 책을 읽고 있는 양부에게 다가가 긴말 안 하고 그의 목을 벱니다. 그리고 외칩니다.

“정원이 어질지 못하여 내가 죽였다. 기꺼이 나를 따르고 싶은 자는 여기에 남고 따르기 싫은 자는 각자 가고 싶은 데로 가라!”

동탁을 모시기 위해 상관이자 양아버지인 정원의 목을 베는 여포 [출처=예슁(葉雄) 화백]

동탁을 모시기 위해 상관이자 양아버지인 정원의 목을 베는 여포 [출처=예슁(葉雄) 화백]

군사의 반이 각기 살길을 찾아 떠났습니다. 동탁은 여포를 얻자 너무 기뻤습니다. 즉시 자신의 양자로 삼았습니다. 여포를 얻은 동탁은 더욱 기고만장해졌습니다. 이제 자신의 말에 토를 다는 놈들은 다 목을 베겠다고 서슬 푸른 으름장을 놓습니다. 그리고 진류왕을 황제로 옹립하는 수순을 밟습니다. 모두가 숨죽이고 있는 이때, 원소가 ‘그 짓이 곧 반역’이라고 반대합니다. 동탁이 칼을 뽑고 죽일 듯한 기세로 노려보자 원소도 칼을 뽑아 들고 일갈합니다.

“네 검이 날카롭다면 내 검은 무딘 줄 아느냐?”

이쯤을 읽노라면 연의가 점점 재미있어집니다. 이숙이 여포를 꼬드기는 말이나 여포가 정원을 죽이고 하는 말들이 참으로 가당치도 않은 말이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언행과는 정반대의 경지에 이른 자들이 마치 옳은 말과 행동인양 행세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자신들의 정체를 알려주는 꼴입니다. 게다가 동탁은 ‘죽어 없어진’ 양부를 대신하여 여포의 양부를 자처했습니다. 동탁도 정원처럼 ‘죽어 없어질’ 길을 걸어가고 있으니 세 사람 모두 눈이 멀어도 한참 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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