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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60년’ 김혜자의 눈물/ "난 오늘도 희망을 전할 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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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권혁재 기자 중앙일보 사진전문기자
권혁재의 사람사진/ 배우 김혜자

권혁재의 사람사진/ 배우 김혜자

최근 배우 김혜자씨가 『생에 감사해』란 책을 출간했다.
1962년 대학 2학년 때 KBS 공채 1기로 시작한 60년 배우로서
책에 담담히 풀어 놓은 그의 고백은 이러하다.

“나는 직업란에 ‘탤런트’라고 쓰는 사람을 보면 무심결에 ‘아 저이는 저걸 직업이라고 생각하는구나’ 하면서 놀랍니다.아주 어릴 때부터 연기를 해와서 그런지 나는 연기가 직업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직업이라고 하면 왠지 자존심이 상합니다.‘마더’의 엄마가 아들 도준한테 ‘나는 나야’ 하듯이 연기는 나입니다.숨 쉬는 것처럼….”
배우는 자기 안에 담긴 여러 인물을 꺼내야만 한다. 그 여럿, 결국 모두 ‘나는 나’이듯 김혜자였다.

배우는 자기 안에 담긴 여러 인물을 꺼내야만 한다. 그 여럿, 결국 모두 ‘나는 나’이듯 김혜자였다.

이렇듯 그에게 연기는 직업이 아니라 들숨과 날숨이었던 게다.
숨 쉬는 것처럼 ‘나는 나’였던 배역의 선택 기준은 뭘까.

“내가 맡은 배역이 아무리 인생의 속박에서 고통받는 역이라 해도 그 속에 바늘귀만 한 희망이 보이는가, 그것이 내가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이었습니다.”
2015년 연극 ‘길 떠나기 좋은 날’의 대본, 온통 ‘빨간 펜’이다. 읽고 또 읽으면 쓴 메모, 대본에 적혀 있지 않은 그 배역의 느낌을 찾고 또 찾은 흔적이다.

2015년 연극 ‘길 떠나기 좋은 날’의 대본, 온통 ‘빨간 펜’이다. 읽고 또 읽으면 쓴 메모, 대본에 적혀 있지 않은 그 배역의 느낌을 찾고 또 찾은 흔적이다.

바늘귀만 한 희망, 이것이 그가 배역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였던 게다.
2014년 연극 ‘오스카! 신에게 보내는 편지’ 연습 중 사진을 찍을 때였다.
온 나라가 비통할 당시 그는 하염없는 눈물로 위로를 전했다.
되돌아보면 이 또한 바늘귀만한 희망을 구하는 일이었다.

두 해 전 코로나가 한창인데도 아프리카로 떠날 준비를 하면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내가 그 아이들을 얼마나 더 돌볼 수 있겠어요. 조금이라도 힘이 남아있을 때 가서 돌보고 싶어요.”

이 또한 바늘귀만한 희망을 구하는 일이었음을 이 책에서 고백하고 있다.

“내가 힘을 쓸 때는 연기할 때와 아프리카에서 아이들 안아 줄 때밖에는 없습니다.”

배우 ‘혜자’로서의 삶, 자연인 ‘혜자’로서의 삶,
결국 모두 바늘귀만한 희망을 구하기 위해서인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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