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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 북극 한파, 귀경길 강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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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 마지막 날인 24일 광주송정역에서 귀경객들이 열차에 탑승하려고 이동하고 있다. 기상청은 25일 전국의 아침 최저기온이 서울 영하 18도 등 지역별로 영하 23도에서 영하 9도로 떨어지고, 강한 바람에 체감온도는 10도가량 더 낮을 것으로 예보했다. [연합뉴스]

설 연휴 마지막 날인 24일 광주송정역에서 귀경객들이 열차에 탑승하려고 이동하고 있다. 기상청은 25일 전국의 아침 최저기온이 서울 영하 18도 등 지역별로 영하 23도에서 영하 9도로 떨어지고, 강한 바람에 체감온도는 10도가량 더 낮을 것으로 예보했다. [연합뉴스]

설 연휴 마지막 날인 24일 전국을 덮친 올겨울 최강 한파와 폭설, 강풍으로 제주를 잇는 하늘길이 꽁꽁 묶였다. 항공기 전편 결항으로 제주공항이 사실상 마비 상태에 빠지면서 귀경객과 관광객 4만여 명이 제주에 갇혀 발을 굴렀다.

이날 오전 제주공항 3층 출발 대합실. 항공편 233편(출발 기준)이 모두 결항되면서 공항은 종일 북새통을 이뤘다. 국내선 출발 상황판엔 빨간 글씨로 ‘결항’ ‘결항’ ‘결항’이 쭉 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4만여 명이 제주에 발이 묶였다. 상당수 항공사가 남는 좌석을 선착순으로 배정하다 보니 이용객들은 이날 새벽부터 대체 항공권을 구하려고 각 항공사 카운터에 수십m씩 길게 줄을 섰다. 하지만 당장 돌아갈 항공편 구하기는 쉽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저비용 항공사를 이용해 서울에서 제주로 관광 온 한모(60)씨는 “27일에야 항공 좌석이 겨우 나올 것 같다”며 “출근하지 못하게 돼 회사에 미안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예정에 없던 일정 변경에 부담은 커졌다. 가족과 함께 제주를 방문했다는 이모(65·서울)씨는 “가장 빠른 대체 (항공)편이 27일자 비행기라는 항공사 답변을 들었다”며 “가족 6명의 추가 숙박비만 해도 큰 부담이라 막막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한항공 등 상대적으로 여유 편(특별기) 동원에 수월한 대형 항공사 이용객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결항 편 운항시간 순서에 맞춰 탑승에 우선권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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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국제공항 항공편 233편 이 모두 결항한 24일 공항 3층 출발 대합실이 대체 항공편을 구하려는 귀경객과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뉴시스]

제주국제공항 항공편 233편 이 모두 결항한 24일 공항 3층 출발 대합실이 대체 항공편을 구하려는 귀경객과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뉴시스]

귀경객 이모(54·서울)씨는 “새벽 5시에 공항에 왔는데 다행히 내일(25일) 출발하는 항공편을 겨우 구할 수 있었다”고 했다.

제주공항과 제주관광협회에 따르면 이날 오후 4시부터 공항에 몰린 귀경객 등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오후 7시 현재 50~100명의 이용객이 혹시 남아 있을 항공권을 구하기 위해 대기했다. 각 항공사는 25일 제주공항에 발이 묶인 귀경·관광객 수송을 위해 임시편 등 총 251편을 제주 노선에 투입할 계획이다. 제주지방항공청은 25일 오전 9시쯤부터 항공기 운항이 순차적으로 재개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날 공항 주변 식당과 카페 주차장엔 ‘허’나 ‘호’로 시작하는 렌터카가 주차면을 가득 채웠다. 식당의 이른 브레이크 타임(재료 준비를 위해 쉬는 시간)에 헛걸음하는 관광객이나 아예 결항 상황에 체념하고 이호테우해변 등 관광지를 찾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도착 편(233편) 항공기 결항으로 입도객도 끊기다 보니 제주도 내 숙박시설은 부족하지 않았다. 하지만 관광객들은 갑작스러운 결항에 숙박앱 검색 등을 하며 서둘러 머물 곳을 구해야 했다.

제주공항 현장뿐 아니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온라인에서도 ‘제주도에 갇혀 버렸다’ ‘집에 가야 하는데 비행기 결항이라고 한다’ 등의 글들이 잇따라 올라왔다. 한 누리꾼은 제주 여행 관련 커뮤니티에 글을 올려 “항공권은 대체 편이 편성됐지만, 숙소는 동일한 방이 연장되지 않아 다른 방으로 예약했다”며 “놀러 와서 하는 것도 없이 돈은 돈대로 더 쓰고,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참 심란하다”고 토로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 따르면 이날 오전 제주 산지엔 대설·한파 경보가, 산지 외 지역에는 대설·한파 주의보가 각각 발효됐다. 제주 육지 전역엔 강풍, 전 해상엔 풍랑 경보가 내려졌다. 25일까지 제주 한라산엔 최대 70㎝가량의 눈이 쌓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풍랑 경보 발효로 제주의 바닷길도 막혔다. 제주항 여객터미널에 따르면 이날 제주 출발 여객선 11편이 모두 결항했다.

이날 제주 지역엔 크고 작은 사고도 잇따랐다. 이날 오전 11시7분쯤 노형동 한 도로를 주행하던 버스가 눈길에 미끄러지면서 신호등을 들이받았다. 빙판길을 걷다 넘어져 병원으로 이송된 시민도 6명 나왔다. 용담일동 등에선 차량 고립 신고도 이어졌다.

제주뿐이 아니다. 대설 주의보와 한파 경보가 내려진 호남 지역도 상대적으로 피해가 컸다. 이날 광주와 여수 공항을 오가는 항공편은 모두 결항됐다. 또 전남 나주시 왕곡면 한 도로에서 차량이 눈길에 미끄러져 운전자 1명이 경상을 입고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다. 보성군 벌교읍에선 강풍에 구조물이 날아와 지붕이 파손됐고, 여수시 신월동 넘너리 선착장에선 정박 어선 8척의 줄이 끊겨 표류했다. 대설로 인해 내장산·다도해·무등산 등 6개 국립공원 137개 탐방로가 통제되기도 했다.

중대본은 이날 오전 11시 기준 백령도~인천, 포항~울릉도, 군산~어청도 등 여객선 86개 항로 113척의 운항도 통제된 상태라고 밝혔다. 이날 오후 7시10분쯤 대전시 유성구 덕명동 일대 주택가에선 지상 개폐기 고장으로 59가구에 세 시간 가까이 전기 공급이 중단돼 주민들이 한파 속 큰 불편을 겪었다. 개폐기 고장 여파로 인근 노은동과 지족동 아파트 수백 가구도 30분간 정전됐다. 인구가 밀집한 서울과 인천, 경기도 등에선 수도계량기 등이 동파(凍破)된 사례가 이날 오후 5시 기준 68건으로 집계됐다. 다행히 한랭 질환 등 인명피해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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