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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균으로 휘발유 만들다, 21세기 연금술사 이상엽의 마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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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바이오 기반 화학물질 합성 지도’를 설명하고 있는 이상엽 KAIST 특훈교수. 프리랜서 김성태

‘바이오 기반 화학물질 합성 지도’를 설명하고 있는 이상엽 KAIST 특훈교수. 프리랜서 김성태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을 떠올렸다는 아이작 뉴턴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자 중 한 명이다. ‘마지막 연금술사’로도 불린다. 금속을 금으로 바꾸는 마법 같은 기술. 연금술사들은 금 연성에는 실패했지만 연금술(Alchemy)의 도전은 현대의 화학(Chemistry)으로 이어졌다.

뉴턴은 영국 왕립학회(Royal Society) 회원이었다. 363년 역사의 왕립학회는 찰스 다윈, 스티븐 호킹 등 인류 역사에 획을 그은 과학자들이 회원이다. 이곳에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이름을 올린 사람이 있다. 이상엽 특훈교수다.

이 교수는 미생물을 조작해 인간에게 필요한 플라스틱, 휘발유까지 내놓도록 만든다고 한다. 흔해 빠진 금속으로 금을 만들려 했던 연금술사처럼…. 그는 2017년부터 매년 세계 상위 0.1%의 연구자(HCR·Highly Cited Researchers)로 선정되고 있다. 대전 KAIST에서 ‘21세기의 연금술사’를 만났다.

이상엽 교수가 개발·완성한 ‘바이오 기반 화학물질 합성 지도’. 국제학술지 네이처 카탈리시스에 표지논문으로 게재됐다. [사진 KAIST]

이상엽 교수가 개발·완성한 ‘바이오 기반 화학물질 합성 지도’. 국제학술지 네이처 카탈리시스에 표지논문으로 게재됐다. [사진 KAIST]

미생물이 플라스틱이나 기름을 내놓는다는 게 꿈같은 얘기로 들린다.
“박테리아도 우리가 밥 먹듯이 여러 가지를 먹어요. 우리가 밥을 먹으면 똥을 싸듯 얘들도 이산화탄소나 메탄, 식초나 술 같은 여러 가지를 내놓죠. 이걸 인위적으로 디자인해 플라스틱, 휘발유는 물론 눈에 좋은 루테인 같은 것도 만들게 할 수 있어요. 미생물을 공장처럼 쓰는 셈입니다.”
기술이 상용화되면 석유 걱정 사라질까.
“경제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어요. 인간은 석유로 싸게 원료도 만들고, 플라스틱도 만들죠. 미생물에게 석유를 만들게 하는 건 비용이 많이 들어요. 경제성에서는 석유화학을 따라갈 수 없어요.”
경제성이 낮으면 쓸모없는 것 아닌가.
“석유는 언젠가 고갈됩니다. 50여 년 뒤 고갈된다는데, 그때 저는 세상에 없겠지만 우리의 손주, 손주의 손주들도 써야 하지 않겠어요. 재생 가능한 바이오 기반 물질을 쓰고, 바이오로 만들지 못하는 것만 원유를 써서 고갈 시점을 늦춰야죠. 지난 20여 년 연구로 많은 화학물질을 바이오로 만들 수 있게 됐어요.”
대장균을 이용해 세계 최초로 휘발유를 만들어낸 이 교수의 논문을 실은 2013년 10월호 네이처 표지. [중앙포토]

대장균을 이용해 세계 최초로 휘발유를 만들어낸 이 교수의 논문을 실은 2013년 10월호 네이처 표지. [중앙포토]

이 교수는 미생물을 통해 다양한 물질을 만들어내는 ‘시스템 대사공학’이란 학문 분야의 창시자다. 연구실에는 미생물로 만들 수 있는 화학물질을 정리해 놓은 일종의 지도가 붙어 있다. 그는 “우리가 지도 제작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버드·매사추세츠공과대(MIT) 같은 세계 유수의 연구집단보다 더 많은 물질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미생물을 통해 페트병 소재인 PET를 만들어냈고, 쉽게 분해시키는 법도 개발했다. 대장균을 통해 세계 최초로 인공 거미줄을 뽑아내기도 했다. 여러 가닥을 모으면 강철보다 강해 방탄복부터 교량을 지지하는 케이블로도 쓸 수 있다고 한다. 그가 생각하는 가장 큰 문제는 ‘환경’과 ‘건강’이다.

최고의 ‘작품’은 뭔가.
“생물 기반 플라스틱입니다. 폴리락틱애시드(PLA)라는 바이오 기반 플라스틱을 누가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느냐는 부분에서 세계 챔피언이 됐어요. 이걸 대규모로 만들 수 있는 촉매가 자연에 존재하지 않았는데, 우리가 만들어냈거든요. 해외에서도 화제가 많이 됐어요.”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나오나.
“늘 우연히 찾아와요. 한번은 약국에 갔다가 아이들이 먹는 시럽약 성분을 봤더니 ‘인공 향(Artificially flavored)’이라고 적혀 있었어요. 석유화합물에서 나오는 거거든요. 아이한테 석유화합물을 먹이는 셈이죠. 이거 우리가 바이오로 못 만드나 싶어 연구했고 성공했어요.”
2020년 영국 왕립학회의 첫 한국인 회원(Fellow)이 됐을 때 기분은.
“회원이 되면 1660년부터 이어온 차터북에 사인을 남겨요. 앞 페이지를 보니까 아이작 뉴턴, 찰스 다윈, 스티븐 호킹 같은 역사책에서 보던 사람들 이름이 남아 있어요. 그걸 보곤 열심히 사인 연습을 했죠.”

이 교수는 역사적인 차터북에 영어로 ‘Sang Yup Lee’라고 서명했다. 그때 뭔가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 한글로 ‘이상엽’ 석 자를 더 써넣었다. 차터북에 처음 선보인 한글이다. 그는 “지금 생각해도 참 잘했다 싶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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