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을 떠올렸다는 아이작 뉴턴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자 중 한 명이다. ‘마지막 연금술사’로도 불린다. 금속을 금으로 바꾸는 마법 같은 기술. 연금술사들은 금 연성에는 실패했지만 연금술(Alchemy)의 도전은 현대의 화학(Chemistry)으로 이어졌다.
뉴턴은 영국 왕립학회(Royal Society) 회원이었다. 363년 역사의 왕립학회는 찰스 다윈, 스티븐 호킹 등 인류 역사에 획을 그은 과학자들이 회원이다. 이곳에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이름을 올린 사람이 있다. 이상엽 특훈교수다.
이 교수는 미생물을 조작해 인간에게 필요한 플라스틱, 휘발유까지 내놓도록 만든다고 한다. 흔해 빠진 금속으로 금을 만들려 했던 연금술사처럼…. 그는 2017년부터 매년 세계 상위 0.1%의 연구자(HCR·Highly Cited Researchers)로 선정되고 있다. 대전 KAIST에서 ‘21세기의 연금술사’를 만났다.
- 미생물이 플라스틱이나 기름을 내놓는다는 게 꿈같은 얘기로 들린다.
- “박테리아도 우리가 밥 먹듯이 여러 가지를 먹어요. 우리가 밥을 먹으면 똥을 싸듯 얘들도 이산화탄소나 메탄, 식초나 술 같은 여러 가지를 내놓죠. 이걸 인위적으로 디자인해 플라스틱, 휘발유는 물론 눈에 좋은 루테인 같은 것도 만들게 할 수 있어요. 미생물을 공장처럼 쓰는 셈입니다.”
- 기술이 상용화되면 석유 걱정 사라질까.
- “경제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어요. 인간은 석유로 싸게 원료도 만들고, 플라스틱도 만들죠. 미생물에게 석유를 만들게 하는 건 비용이 많이 들어요. 경제성에서는 석유화학을 따라갈 수 없어요.”
- 경제성이 낮으면 쓸모없는 것 아닌가.
- “석유는 언젠가 고갈됩니다. 50여 년 뒤 고갈된다는데, 그때 저는 세상에 없겠지만 우리의 손주, 손주의 손주들도 써야 하지 않겠어요. 재생 가능한 바이오 기반 물질을 쓰고, 바이오로 만들지 못하는 것만 원유를 써서 고갈 시점을 늦춰야죠. 지난 20여 년 연구로 많은 화학물질을 바이오로 만들 수 있게 됐어요.”
이 교수는 미생물을 통해 다양한 물질을 만들어내는 ‘시스템 대사공학’이란 학문 분야의 창시자다. 연구실에는 미생물로 만들 수 있는 화학물질을 정리해 놓은 일종의 지도가 붙어 있다. 그는 “우리가 지도 제작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버드·매사추세츠공과대(MIT) 같은 세계 유수의 연구집단보다 더 많은 물질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미생물을 통해 페트병 소재인 PET를 만들어냈고, 쉽게 분해시키는 법도 개발했다. 대장균을 통해 세계 최초로 인공 거미줄을 뽑아내기도 했다. 여러 가닥을 모으면 강철보다 강해 방탄복부터 교량을 지지하는 케이블로도 쓸 수 있다고 한다. 그가 생각하는 가장 큰 문제는 ‘환경’과 ‘건강’이다.
- 최고의 ‘작품’은 뭔가.
- “생물 기반 플라스틱입니다. 폴리락틱애시드(PLA)라는 바이오 기반 플라스틱을 누가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느냐는 부분에서 세계 챔피언이 됐어요. 이걸 대규모로 만들 수 있는 촉매가 자연에 존재하지 않았는데, 우리가 만들어냈거든요. 해외에서도 화제가 많이 됐어요.”
-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나오나.
- “늘 우연히 찾아와요. 한번은 약국에 갔다가 아이들이 먹는 시럽약 성분을 봤더니 ‘인공 향(Artificially flavored)’이라고 적혀 있었어요. 석유화합물에서 나오는 거거든요. 아이한테 석유화합물을 먹이는 셈이죠. 이거 우리가 바이오로 못 만드나 싶어 연구했고 성공했어요.”
- 2020년 영국 왕립학회의 첫 한국인 회원(Fellow)이 됐을 때 기분은.
- “회원이 되면 1660년부터 이어온 차터북에 사인을 남겨요. 앞 페이지를 보니까 아이작 뉴턴, 찰스 다윈, 스티븐 호킹 같은 역사책에서 보던 사람들 이름이 남아 있어요. 그걸 보곤 열심히 사인 연습을 했죠.”
이 교수는 역사적인 차터북에 영어로 ‘Sang Yup Lee’라고 서명했다. 그때 뭔가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 한글로 ‘이상엽’ 석 자를 더 써넣었다. 차터북에 처음 선보인 한글이다. 그는 “지금 생각해도 참 잘했다 싶다”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