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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민노총 사무실에 북 지령문 숨겼을 것” 영장 적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국가정보원과 경찰이 지난 18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전·현직 간부의 사무실 10여 곳(민주노총 본부 포함)을 압수수색할 당시 “북한 측 지령문과 ‘스테가노그래피’ 프로그램(기밀정보를 이미지 파일 등에 숨기는 방법) 등을 찾기 위함”이라고 압수수색 영장에 적시한 것으로 24일 파악됐다.

국정원 측은 “가장 안전한 장소라고 할 수 있는 노조 사무실에 (프로그램을) 숨겼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정원은 압수수색 영장 청구서에 북한이 민주노총 간부들을 오랫동안 포섭·관리해 왔다고 볼 수 있는 정황도 적시했다. 북한과 연계된 민주노총 활동이 있는지도 들여다보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민주노총 조직국장을 지낸 A씨와 보건의료노조 조직실장 B씨,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 부위원장을 지낸 C씨, 제주 평화쉼터 대표인 D씨가 압수수색 대상이었다. A씨는 2016~2019년까지 캄보디아와 베트남으로 출국해 북한 노동당의 대남 공작 부서인 문화교류국 공작원 리광진 등을 접선해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리광진은 2021년 9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자주통일 충북동지회’에 지령을 내렸으며, 1990년대부터 수차례 국내 침투한 공을 인정받아 북한에서 영웅 칭호를 받은 인물이라고 한다. 국정원은 A씨가 B·C·D씨를 각각 포섭해 관리하는 총책 역할도 맡았다고 의심하고 있다.

한편 최근 국가정보원이 주도하는 간첩 사건이 속도를 내면서 문재인 정부 책임론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국정원 전·현직 관계자들에 따르면 국정원은 2018년 초 ‘청주 간첩단’으로 알려진 ‘자주통일 충북동지회’ 일당이 2017년 8월 중국 선양에서 북한 문화교류국 공작원을 만난 사실 등을 파악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보고해도 윗선에서 뭉개면서 강제 수사로 나아가지 못했다.

국정원 안팎에서는 2018년 서훈 전 원장이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해빙 무드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며 고의로 수사를 지연시켰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정원과 검경은 2021년 9월에서야 북한의 공작금과 지령을 받아 이적단체를 결성, F-35 스텔스기 도입 반대를 포함한 각종 반미·반보수 투쟁에 나서고 간첩 활동을 한 혐의로 충북동지회 일당 4명을 기소했다.

또 최근 경남과 제주, 전북 전주 등을 중심으로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자주통일 민중전위’와 ‘ㅎㄱㅎ’ 사건은 박지원 전 원장이 국정원을 이끌던 2021년에 광범위한 조사가 이뤄졌다. 국정원 내부에서는 정식 내사·수사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는 보고가 올라갔지만 윗선에서 유야무야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박 전 원장과 서 전 원장은 간첩 수사 뭉개기 의혹에 대해 적극적으로 부인했다. 박 전 원장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지금 공개수사로 전환된 창원·제주 지역 및 민주노총 간첩단 사건은 내가 재직할 당시에도 수사 보고가 이뤄졌던 사안”이라며 “이전 정부에서도 정상적으로 내사가 진행되고 있었고, 특이사항은 없었다”며 고의 지연 의혹을 일축했다. 서 전 원장은 국가안보실장이던 2021년 8월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해 “(청주 간첩단) ‘체포해 사법처리하자’고 실장님께 제기하니 남북관계를 고려해 사건을 좀 늦추자며 결재를 미뤘다”는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의 질의에 대해 “국정원이 공식적으로 사실이 전혀 아니라고 확인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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