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만에 다시 만난 할아버지와 ‘빵꾸똥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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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연극 ‘갈매기’로 12년 만에 만나 새 도전에 나선 배우 이순재(왼쪽)와 진지희. 이순재는 1999년생 토끼띠 진지희에게 “계묘년인 올해, 잘 뛰는 한해가 되겠다”고 덕담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연극 ‘갈매기’로 12년 만에 만나 새 도전에 나선 배우 이순재(왼쪽)와 진지희. 이순재는 1999년생 토끼띠 진지희에게 “계묘년인 올해, 잘 뛰는 한해가 되겠다”고 덕담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배우 이순재(88)와 진지희(23)가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이하 지붕킥, MBC)’ 이후 12년 만에 다시 만났다. 다음 달 5일까지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공연하는 연극 ‘갈매기’에서다. 진지희는 주인공 니나 역을 맡았고, 이순재는 연출을 하면서 니나의 연인이었던 트레블례프의 외삼촌이자 유명 배우 아르까지나의 오빠 쏘린 역도 겸한다.

지난 13일 한 무대에 선 두 사람을 만났다. 진지희가 “‘지붕킥’ 땐 어려서 기억이 많이 없어 아쉬웠는데 선생님(이순재)과 다시 작품을 하게 되어 신기하고 기쁘다”고 소감을 밝히자, 이순재가 손녀딸 보듯 흐뭇하게 웃으며 “배우로서 잘 성장했다”고 말했다.

‘지붕킥’에서 “빵꾸똥꾸”란 유행어를 만들어냈던 진지희에게 ‘갈매기’는 첫 연극이다. “왜 나는 아직 ‘지붕킥’ 시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고민에 빠져 연기 권태기가 왔었는데 연극 출연이 도움이 됐다”며 “연극을 계속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맡은 니나는 기성세대에 의해 배우의 꿈도, 순정도 짓밟히는 순진한 시골 소녀다. 자유롭게 호숫가를 노닐다 단발 총성에 죽는 갈매기와 겹쳐지는 존재다.

안톤 체호프의 4대 희곡 중 하나인 ‘갈매기’에 대해 이순재는 “연기의 진수를 요구하는 작품”이라고 평했다. “체호프는 천문·경제·지리·정치·문학·종교를 두루 터득한 작가인데 이 작품은 특히 여성 심리에 주목했다. 일상적인 대사 안에 진짜 의미가 숨겨져 있어 심층 분석한 후 연기해야 작품이 산다”면서다.

“대학(동국대 연극학부) 입시를 위해 처음 읽었을 땐 무슨 내용인지 잘 몰랐는데, 연기하며 다시 보니 공감 가는 대사가 많았다”는 진지희는 니나를 연기하기 위해 고심하는 과정을 자세히 털어놨다. “3막과 4막 사이 니나에겐 고통스러운 2년이 흐른다. 무대 위에서는 10~20분가량인데, 그 짧은 시간 안에 니나의 감정을 표현하는 몸의 상태를 만들어내야 한다. 잘못하면 연기하는 ‘척’밖에 안 될 것 같아서 대기실에서 홀로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치고 있다. 스스로 때려보기도 하고, 찬 바닥에 누워 감정에 집중하기도 한다. 선배님들과 선생님 조언에 맞춰가며 점점 완성형이 돼가는 느낌이다. ‘무대에서 연기하면 행복과 환희에 도취돼서 우월한 존재가 된 기분을 느껴요’라는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최근 연극판에는 ‘젊은 스타’들이 데뷔 무대가 잇따르고 있다. ‘셰익스피어 인 러브’의 김유정, ‘넓은 하늘의 무지개를 보면 내 마음은 춤춘다’의 아이돌 그룹 인피니트 출신 이성열 등이다.

이순재는 “광고로 돈 잘 버는 잘 생긴 모델 스타와 액팅 스타는 확연히 다르다. 연기를 예술 창조의 영역으로 만드는 바탕이 연극”이라며 자신의 청년 시절을 회고했다. 대학 3학년 때 첫 연극 출연작인 유진 오닐의 ‘지평선 너머’에서 웃음소리 하나 내기 어려워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부터 빈 강당에서 혼자 노래하고 소리치고 떠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반복해 봐도 새롭고, 시대와 국가를 초월한 메시지를 주는 게 고전 연극의 힘”이라며 “훼손된 원작의 의미를 되찾아야겠다 싶은 작품이 있으면 또다시 연출에 도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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