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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신동찬이 고발한다

"'UAE 적=이란'은 상식적 발언"…그런데도 이란 발끈한 이유

중앙일보

입력

신동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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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5일 UAE에 주둔한 아크 부대를 찾아 우리 장병을 만났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5일 UAE에 주둔한 아크 부대를 찾아 우리 장병을 만났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5일 아랍에미리트(United Arab Emirates, UAE) 순방 중 현지에 파병된 우리 아크 부대 장병들을 만나 “UAE의 적은 이란”이라고 말했다.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발언 다음 날 “오지랖(meddlesome)이자 이란이 UAE를 포함한 페르시아만 연안 국가들과 맺고 있는 역사적·우호적 관계, 그리고 빠르고 긍정적인 개선에 대해 무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18일에는 주한 이란 대사관을 통해 “한국의 설명을 기다린다”더니 윤강현 주이란 한국 대사를 초치했다. 이에 조현동 외교부 1차관은 주한 이란 대사를 불러“윤 대통령의 발언은 우리 장병에 대한 격려 차원이었고, 한·이란 관계 등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설명했지만 대외는 물론 국내 정치권에서도 여파가 계속되고 있다. 우선 몇 가지 사실 확인부터 해보자.

현지 주둔 부대서 "UAE의 적은 이란" #윤 대통령 발언 둘러싼 논란 지속 #이란 "양국 우호적 관계" 주장하며 반발 #실제론 독도 분쟁 속 한·일과 유사한 악연 #양국 앙금은 상식이지만 외교적으론 악수 #이란 의심받는 아크 부대선 더 조심했어야

UAE는 지난 2016년 주이란 자국 대사를 소환한 이후 무려 6년 만인 지난해 8월에야 테헤란에 다시 파견한 바 있다. 이런 관계에 비춰 페르시아만 국가들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며 빠르고 긍정적으로 관계가 개선되고 있다는 이란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1971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더더욱 그렇다. UAE가 영국의 협정국가 지위에서 완전한 독립을 쟁취한 해다. 당초 카타르와 바레인까지 합해 9개의 토후국이 UAE라는 연방 국가를 이루려다 지금처럼 두바이 등 7개 토후국만 참여하게 됐다. 이 논의 과정에서 빚어진 혼란을 틈타 이란의 팔레비 왕조는 그해 11월 7개 토후국 중 하나인 라스 알 카이마가 다스리던 호르무즈 해협 부근의 소툰브와 대툰브 섬을 점령했고, 이어 또 다른 토후국 샤르자 땅인 아부무사섬까지 점령했다.

UAE는 현재까지 이란이 실효 지배하고 있는 세 섬의 점령을 불법이라며 인정하지 않고 있다. 당사국인 UAE가 이란과 달리 윤 대통령 발언을 놓고 침묵하는 데는 이러한 영유권 분쟁과 관련한 앙금이 작용하고 있을 게다. 섬의 면적은 얼마 되지 않지만, 주변 대륙붕의 부존자원도 적지 않은 전략적 요충지다. 독도를 사이에 둔 한·일 간의 영토분쟁을 떠올리면 쉽다. 2012년 이란의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이 섬을 방문해 UAE의 반발을 불러일으킨 과정도 지난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유사하다.

지난 2012년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전격적으로 독도를 방문했다.      [ 사진공동취재단 ]

지난 2012년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전격적으로 독도를 방문했다. [ 사진공동취재단 ]

UAE와 이란의 관계는 1979년 이란의 이슬람 혁명 후 더욱 나빠졌다. 팔레비 왕정을 무너뜨리고 신정(神政) 독재국가 체제를 수립한 이란의 이슬람 성직자들이 혁명을 수출해 UAE를 포함한 왕정 국가들을 흔들려 했기 때문이다. 이에 1981년 사우디아라비아와 UAE·바레인·카타르·오만·쿠웨이트는 걸프협력기구(GCC)를 결성했다. 경제협력체를 표방했지만 이들 왕정 산유 국가들이 이란의 정치·군사적 위협에 함께 대처하려는 의도라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UAE 등 GCC 국가들은 이란과 경계가 되는 만(灣)의 명칭부터 아라비아만이나 그냥 만(Gulf)이라고만 쓰는 데 반해 이란은 이번 외무부 대변인 성명처럼 페르시아만이라고 쓴다. 이 역시 같은 바다를 놓고 한국은 동해, 일본은 일본해라고 주장하는 것과 비슷하다.

또 UAE를 비롯한 GCC는 중동의 대표적 친미 국가들인데 반해 이란은 이슬람 혁명 당시 테헤란 미 대사관 인질 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 가장 강경한 중동의 반미 국가다. 이스라엘과의 관계에서도 이란은 현재까지도 알 쿠즈(예루살렘을 지칭하는 이란어)의 날이라는 공공연한 연례 이스라엘 증오일까지 두고 있다. 반면 UAE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 시절 이스라엘과의 오랜 적대 관계를 청산하고 아브라함 협정을 맺어 외교 관계를 정상화하였다. 가장 결정적으로 지난 2016년 사우디가 자국 내 이슬람 시아파 성직자를 처형하자, 시아파 성직자가 주류인 이란이 강력히 반발하고 이란 군중은 주이란 사우디 대사관을 방화하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UAE는 당시 항의의 뜻으로 주이란 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했다.

심지어 UAE와 이란은 대리전 형태이기는 하지만 전쟁으로 맞서는 중이다. 내전 중인 예멘에 사우디와 UAE는 정부 측을 지원하고 있고, 이란은 후티 반군을 지원 중이라 양국이 간접적인 교전 상태다. 후티 반군의 습격으로 예멘에 파견된 UAE 장병이 전사하기도 했다. 지난해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UAE를 방문 중일 때 후티 반군이 UAE 국제공항과 석유 시설을 드론으로 공격해 아부다비 왕세제(현 UAE 대통령)와의 정상회담이 취소된 바도 있다. 이런 관계를 보면 이란이 말하는 “역사적·우호적 관계”나 “빠르고 긍정적인 개선”은 어불성설이다. 오히려 “UAE의 적은 이란”이라는 윤 대통령 발언은 양국 관계의 본질을 꿰뚫어 본 상식적 발언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렇게 넘길 사안이 아니다. 결국 하나로 이어지는 두 가지 문제를 짚어봐야 한다. 하나는 이란의 강경한 반응의 배경, 다른 하나는 윤 대통령의 외교적 실언 여부다. 우선, 이란은 왜 이렇게까지 격앙한 것일까. 알려진 대로 아크 부대는 이명박 정부가 UAE 원전 4기를 수주한 직후 당시 UAE 실권자이던 아부다비 왕세제(현 UAE 대통령) 요청으로 파병되어, 아랍어로 형제라는 부대 명칭처럼 현지에서 UAE 특수 부대와 합동 훈련 등을 해오고 있다. 한반도 못지않은 UAE와 이란 간의 긴장 관계를 고려할 때 양국의 직접적 군사 충돌이 벌어지면 아크 부대가 과연 어떤 역할을 할 것이냐는 불편한 질문이 늘 우리 앞에 던져져 있다. 이란이 아크 부대의 개입을 암묵적으로 의심하는 게 이번 사태의 배경에 있다는 얘기다. 물론 우리 정부는 아크 부대는 비전투원으로 이 이상의 확대 해석은 경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우리는 이란과의 관계를 고려해 아크 부대는 비전투원이라는 공식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한국과 UAE의 관계를 담보하는 중요한 버팀목 역할을 한다. 아크 부대 자체가 대한민국을 미묘한 상황에 놓는 존재라 하겠다. 문재인 정부 초기 철군 얘기에 발끈한 UAE를 달래려고 당시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이 날아간 것도 다 이런 배경이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 대통령이 아크 부대원 앞에서 "UAE의 적은 이란"이라고 한 건 분명 외교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부적절한 발언이었다.

지난 2017년 12월 임종석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은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UAE로 가 아부다비 모하메드 왕세제를 만났다. 아크 부대와 관련해 UAE 달래기 행보라는 얘기가 나왔다. [사진 청와대]

지난 2017년 12월 임종석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은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UAE로 가 아부다비 모하메드 왕세제를 만났다. 아크 부대와 관련해 UAE 달래기 행보라는 얘기가 나왔다. [사진 청와대]

UAE는 물론 이란도 알고 미국이나 이스라엘도 다 아는 그런 중동 정세를 굳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UAE 국빈 방문 중에 해야만 할 이유는 찾기 어렵다. 이란이 어떤 나라인가. 핵무기 개발 의혹으로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를 지금까지 받는 '빌런'이면서 우리 대통령의 말꼬리를 잡아 "NPT 위배" 운운하며 해명을 요구하는 것만 봐도 북한 못지않은 막무가내, 적반하장 전략을 구사한다. 그런 이란에 쓸데없는 빌미를 준 것 같아 안타깝다.

어디 이뿐인가. 이란은 지난 2021년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던 우리 선박 한국케미 호를 ‘해양오염’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억류한 일도 있고, 지금은 자국의 히잡 반대 시위를 무자비하게 탄압해 국제사회의 맹비난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 대통령의 실언 하나를 빌미 삼아 중동 평화의 사도인 양 구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속이 쓰리다. 지난 2012년 두바이 등에서 근무했던 일개 시민도 이러한데, 정부 입장에서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UAE에서 거둔 대규모 투자 유치의 성과가 실언 한 마디로 빛이 바래게 되는 건 윤 대통령 본인에게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상하게 외국 순방 중에 이런 실수가 자주 보인다. 부디 앞으로는 대통령이 국익을 생각해 신중하게 언행을 해줬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