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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나던 '갈매기' 연출 도전한 이순재, '빵꾸똥꾸' 손녀 부른 사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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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순재(왼쪽)와 진지희가 연극 '갈매기'로 '지붕 뚫고 하이킥!' 이후 12년만에 호흡 맞췄다. 이순재가 연출을 겸한 '갈매기'의 공연장인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13일 두 사람을 만났다. 1999년생 토끼띠인 진지희가 "올해 저의 해(계묘년)를 맞았다"고 기뻐하자, 이순재가 "잘 뛰는 해가 되겠다"고 덕담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배우 이순재(왼쪽)와 진지희가 연극 '갈매기'로 '지붕 뚫고 하이킥!' 이후 12년만에 호흡 맞췄다. 이순재가 연출을 겸한 '갈매기'의 공연장인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13일 두 사람을 만났다. 1999년생 토끼띠인 진지희가 "올해 저의 해(계묘년)를 맞았다"고 기뻐하자, 이순재가 "잘 뛰는 해가 되겠다"고 덕담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연극 ‘갈매기’ 배경이 제정 러시아가 망하기 직전이죠. 이런 독선적인 귀족 체제에선 젊은이들의 미래가 없다고, 바꿔야 한다고 안톤 체호프가 설파하는 작품입니다. 군사정권 시절엔 사상적으로 오해 받을까 봐 잘 못 다뤘던 작품이죠.”(이순재)

“대학(동국대 연극학부) 입시를 위해 처음 읽었을 땐 무슨 내용인지 잘 몰랐는데, 연기하며 다시 보니 공감 가는 대사가 많았어요. 꿈과 희망에 가득 찼던 ‘니나’가 변화하는 모습은 공연할 때마다 가슴 아프죠.”(진지희)

아흔을 앞둔 배우 이순재(88)가 러시아 문호 안톤 체호프(1860)~1904) 4대 희곡 ‘갈매기’로 다시 연극 연출에 나섰다. 다음 달 5일까지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공연하는 ‘갈매기’는 88년 상업 연극 ‘가을 소나타’를 비롯해 모교인 서울대 동문 극단 관악극회, 2012년부터 석좌교수로 있는 가천대 예술학과 등에서 틈틈이 연극 연출을 해온 이씨가 오랜만에 '상업 연극'에 연출로 복귀한 작품이다.

이순재 연출 도전 연극 ‘갈매기’ #‘지붕킥’ 손녀 호흡 진지희 주연 #“체제 좌절당한 젊은이 꿈 그려” #다음달 5일까지 유니버설아트센터

이순재 "이런 체제 젊은이 미래 없다, 원작 정신 살려"

이씨는 이번 연극에서 과거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이하 지붕킥)’(MBC)에서 손녀딸 역을 맡았던 진지희(23)와 12년 만에 다시 만났다. ‘지붕킥’에서 “빵꾸똥꾸”란 유행어를 유행시켰던 진지희는 드라마 ‘펜트하우스’(SBS, 2020~2021)의 연기로 다시 주목받았다. '갈매기’가 첫 연극이다. 그가 맡은 니나는 기성세대에 의해 배우의 꿈도, 순정도 짓밟히는 순진한 시골 소녀. 자유롭게 호숫가를 노닐다 단발 총성에 죽는 갈매기와 겹쳐지는 존재다. “동숭동(대학로)에서 러시아 유학파들의 공연도 많이 봤지만 원작을 훼손한 경우가 많았다. 직접 연출을 맡아 체호프 정신을 제대로 전하려 했다”는 이순재씨가 각별히 신경 쓴 인물이다.

배우 이순재(87)가 20일 서울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열린 연극 '갈매기' 프레스콜 및 기자간담회에서 배우들과 함께 갈매기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갈매기'는 러시아 대표 극작가 안톤 체홉의 희곡이 원작으로 이항나 ‧ 소유진 ‧ 오만석 ‧ 주호성 ‧ 김수로 ‧ 강성진 ‧ 이경실 ‧ 고수희 등 화려한 출연진이 참여했다. 뉴스1

배우 이순재(87)가 20일 서울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열린 연극 '갈매기' 프레스콜 및 기자간담회에서 배우들과 함께 갈매기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갈매기'는 러시아 대표 극작가 안톤 체홉의 희곡이 원작으로 이항나 ‧ 소유진 ‧ 오만석 ‧ 주호성 ‧ 김수로 ‧ 강성진 ‧ 이경실 ‧ 고수희 등 화려한 출연진이 참여했다. 뉴스1

이순재는 니나의 연인이었던 트레블례프의 외삼촌이자, 유명 배우 아르까지나의 오빠 쏘린(주호성과 더블캐스팅) 역도 겸한다. 13일 한 무대에 선 두 사람을 만났다. 진지희가 “‘지붕킥’ 땐 어려서 기억이 많이 없어 아쉬웠는데 선생님(이순재)과 다시 작품을 하게 되어 신기하고 기쁘다”고 소감을 밝히자, 이순재가 손녀딸 보듯 흐뭇하게 웃었다. “‘지붕킥’ 땐 지희하고 부딪히는 장면이 별로 없었는데, 방송을 보면 정말 영리하고 똑 부러지게 잘하더라. 배우로서 잘 성장해 출연을 제안했다. 어려운 역할인데 지희가 적극적으로 자기 연기를 펼쳐냈다”고 했다.

-왜 ‘갈매기’였나.  

이순재=체호프는 천문‧경제‧지리‧정치‧문학‧종교를 두루 터득한 작가인데 이 작품은 특히 여성 심리에 주목했다. 일상적인 대사 안에 진짜 의미가 숨겨져 있어 심층 분석한 후 연기해야 작품이 산다. 어휘가 쉽지 않은데, 배우가 그 의미를 정확히 표현해야만 정확히 전달된다. 연기의 진수를 요구하는 작품이다.

-진지희 등 젊은 배우를 많이 기용했는데.  

이순재=요즘 젊은이들이 똑똑하다. 우리 때는 세 발짝, 두 발짝, 구체적인 동선을 가르쳐야 겨우 따라갔을 텐데, 지금은 창의력, 표현력이 다르다. 용모부터 체격, 머리까지 한마디로 사람들이 개량됐다. 우리 땐 우유도 제대로 못 먹어 키도 작지 않았나.

-니나 역에서 고심한 장면은.

진지희=3막과 4막 사이 니나에겐 고통스러운 2년이 흐른다. 무대 위에서는 10~20분가량인데, 그 짧은 시간 안에 니나의 감정을 표현하는 몸의 상태를 만들어내야 한다. 잘못하면 연기하는 ‘척’밖에 안 될 것 같아서 대기실에서 홀로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치고 있다. 스스로 때려보기도 하고, 찬 바닥에 누워 감정에 집중하기도 한다. 선배님들과 선생님 조언에 맞춰가며 점점 완성형이 돼가는 느낌이다. ‘무대에서 연기하면 행복과 환희에 도취돼서 우월한 존재가 된 기분을 느껴요’라는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이순재=지희가 작품을 잘 해석했다. 관람평도 칭찬이 많다.

진지희 "왜 '지붕킥' 머물까…권태기 연극으로 극복"

이순재(왼쪽)가 연출을 겸한 '갈매기'는 러시아 문호 안톤 체홉의 4대 희곡 중 '사실주의 연극의 교과서'로 불리는 작품으로, 23 일까지 공연통합전산망 (kopis) 에서 공연중인 작품 중 연극부문 예매 1 위에 올랐다. 사진 아크컴퍼니·VAST엔터테인먼트

이순재(왼쪽)가 연출을 겸한 '갈매기'는 러시아 문호 안톤 체홉의 4대 희곡 중 '사실주의 연극의 교과서'로 불리는 작품으로, 23 일까지 공연통합전산망 (kopis) 에서 공연중인 작품 중 연극부문 예매 1 위에 올랐다. 사진 아크컴퍼니·VAST엔터테인먼트

최근 연극판에는 '젊은 스타'들이 데뷔 무대가 잇따르고 있다. ‘셰익스피어 인 러브’의 김유정, ‘넓은 하늘의 무지개를 보면 내 마음은 춤춘다’의 아이돌 그룹 인피니트 출신 이성열 등이다.
 이순재는 “광고로 돈 잘 버는 잘 생긴 모델 스타와 액팅 스타는 확연히 다르다. 연기를 예술 창조의 영역으로 만드는 바탕이 연극”이라며 청년 시절을 회고했다. 대학 3학년 때 첫 연극 출연작인 유진 오닐의 ‘지평선 너머’에서 웃음소리 하나 내기 어려워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부터 빈 강당에서 혼자 노래하고 소리치고 떠들었다는 것. "반복해 봐도 새롭고, 시대와 국가를 초월한 메시지를 주는 게 고전 연극의 힘”이라고 했다.
진지희는 “왜 나는 아직 ‘지붕킥’ 시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고민에 빠져 연기 권태기가 왔었는데 연극 출연이 도움 됐다. 어떤 관객분이 4막의 니나를 보더니 지희도 이제는 어엿한 성인 배우라고 말씀해주셨는데 그래선지 실제로 연기가 더 재밌어졌다”고 했다. 또 “카메라 앞에서는 주로 표정 연기만으로 인물을 전달했다면 무대 위에선 캐릭터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노출된다. 2층의 관객도 배우의 몸의 방향이나 형태로 감정을 알아채기 때문에 더 세심하게 신경 써야 한다”며 “연극을 계속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순재는 “훼손된 원작의 의미를 되찾아야겠다 싶은 작품이 있으면 또다시 연출에 도전하고 싶다”고 했다. “예술 창조에는 끝도 완성도 없죠. 항상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게 우리 직업이에요. 나하고 가령 신구씨하고 연기의 결이 다른데 우열을 따질 게 아니잖아요. 한 작품 떴다고 안주한 배우 수십 명, 수백 명이 사라졌어요. 항상 부족한 걸 보완하려 노력할 때 변할 수 있고,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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