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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 수사 무마 의혹 확산…서훈·박지원 3번째 수사선상 오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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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최근 국가정보원이 주도하는 간첩 사건이 속도를 내면서 전 정부 책임론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원 수뇌부들이 간첩단 사건에 대한 수사 보고를 뭉개고 사건을 덮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이를 바탕으로 당시  국정원 최고 책임자였던 서훈·박지원 전 국정원장에 대해 직권남용 혹은 직무유기 혐의로 수사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고의로 수사를 막거나 지연시킨 점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실제 수사 착수 여부는 내부 증언이나 간첩단 혐의 입증에 달릴 전망이다.

북한의 지령을 받아 미국산 스텔스 전투기 도입 반대 활동을 했다는 의혹을 받는 충북 청주 지역 활동가 4명이 2021년 8월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위해 법정에 출석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북한의 지령을 받아 미국산 스텔스 전투기 도입 반대 활동을 했다는 의혹을 받는 충북 청주 지역 활동가 4명이 2021년 8월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위해 법정에 출석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청주 간첩단·자주통일 민중전위, 文 정부서 묵혔나 

 24일 국정원 전·현직 관계자들에 따르면 국정원은 2018년 초 ‘청주 간첩단’으로 알려진 ‘자주통일 충북 동지회’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한 증거를 확보했다고 한다. 청주 간첩단 일당이 2017년 8월 중국 심양에서 북한 문화교류국 공작원을 만난 사실 등을 파악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보고해도 윗선에서 뭉개면서 강제 수사로 나아가지 못했다. 국정원 안팎에서는 2018년 서 전 원장이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해빙 무드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며 고의로 수사를 지연시켰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정원과 검·경은 2021년 9월에서야 북한의 공작금과 지령을 받아 이적단체를 결성,  F-35 스텔스기 도입 반대를 포함한 각종 반미·반보수 투쟁에 나서고 간첩활동을 한 혐의로 충북동지회 일당 4명을 기소했다.

최근 경남과 제주, 전북 전주 등을 중심으로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자주통일 민중전위’와 ‘ㅎㄱㅎ’ 사건은 박 전 원장이 국정원을 이끌던 2021년에 광범위한 조사가 이뤄졌다. 국정원 내부에서는 정식 내사·수사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는 보고가 올라갔지만 윗선에서 유야무야 된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와 경남 지역 등 진보 성향 정당과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2015~2017년 사이 베트남과 캄보디아 등 동남아에서 북한 공작원을 만나 지령을 받고 ‘ㅎㄱㅎ’, ‘자주통일 민중전위’ 등의·· 조직을 만들어 반정부 활동을 해온 혐의를 받고 있다.

박 전 원장, “재직 당시에 수사보고 이뤄진 사안, 공안수사 증거수집에 몇 년 걸리기도”…檢은 신중

박지원 전 국정원장이 지난달14일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 관련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에 도착, 취재진의 짊문에 답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박지원 전 국정원장이 지난달14일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 관련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에 도착, 취재진의 짊문에 답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간첩 사건 수사 무마 의혹이 공식 수사로 전환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전직 국정원 간부는 “대공 수사에서 직무 유기도 특가법상 특수직무유기에 해당할 수 있다”며 “(묵살 의혹)가능성이 다분히 높다”라고 말했다. 국정원 내부에서는 당시 주요 대공 수사 보고 과정은 물론 대공 수사권 경찰 이관 논의를 원점에서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실제 수사가 진행될 경우 두 전임 원장들은 되면 서해공무원 피살사건과 탈북어민 강제북송에 이어 세 번째로 검찰 수사 선상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박 전 원장과 서 전 원장은 간첩 수사 뭉개기 의혹에 대해 적극적으로 부인했다. 박 전 원장은 이에 대해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지금 공개수사로 전환된 창원, 제주 지역 및 민주노총 간첩단 사건은 내가 재직할 당시에도 수사 보고가 이뤄졌던 사안”이라며 “공안 사건 특성상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전 정부에서도 정상적으로 내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특이사항은 없었다”며 고의 지연 의혹을 일축했다.

서 전 원장은 2021년 8월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자격으로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해 “(청주 간첩단)‘체포해 사법처리 하자’고 실장님께 제기하니 남북관계 고려해 사건을 좀 늦추자며 결재를 미뤘다”라는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의 질의에 대해 “국정원이 공식적으로 사실이 전혀 아니라고 확인했다”고 답했다.

다만 법조계 내부에서는 아직 신중론이 앞선다. 사건의 본류인 간첩단 혐의가 입증돼야, 이를 방해했다는 직무유기나 직권남용 혐의가 성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주통일 민중전위’와 ‘ㅎㄱㅎ’ 사건의 경우 아직 압수수색을 벌이고 있는 단계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처럼 내부의 증언과 문건도 뒷받침돼야 한다. 공식적으로 간첩단 사건을 넘겨받지 않은 검찰에게도 전직 국정원장을 겨냥한 국정원 내부 수사는 부담스럽다. 검찰 관계자는 “간첩 수사는 접선 현장 등 증거 확보하려고 일부러 시간을 묵히기도 하고, 국정원도 몇 년씩 놔뒀다가 다시 보기도 하기 때문에 ‘고의 지연’을 밝히는 게 쉽지는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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