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빈정대는 명령도 받았다…푸틴 눈밖에 난 '푸틴 사병' 신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러시아 용병 기업 바그너(Wagner) 그룹을 이끄는 예브게니 프리고진(62)이 죄수를 동원해 부족한 병력을 메우고, 북한으로부터 무기를 공급받는 등 우크라이나 전쟁을 위해 앞장섰지만, 최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신뢰를 잃었다는 외신 보도가 등장했다.

바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지난해 12월 24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외곽 공동묘지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사망한 바그너 그룹 병사의 장례식에 참석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바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지난해 12월 24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외곽 공동묘지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사망한 바그너 그룹 병사의 장례식에 참석하고 있다. AP=연합뉴스

23일(현지시간) 영국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이달 초 우크라이나 전쟁의 총사령관에 새로 임명된 발레리 게라시모프 러시아 총참모장(합참의장)이 프리고진과의 파워게임에서 주도권을 잡았다. 이와 관련 영국 국방부에 따르면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은 최근 참전한 러시아 군인 모두에게 비공식 군복·민간 차량·휴대전화 등을 금지하고, 머리와 수염을 짧게 깎으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는 프리고진이 이끄는 바그너 부대를 겨냥한 조치라는 것이다. 바그너 부대는 러시아의 정규군 조직이 아니다.

프리고진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전선에 약 5만명의 병력을 배치했다. 그중 1만명이 용병이고, 나머지 4만명은 죄수라고 미국 등 서방의 정보 당국은 추정했다. 감옥에 수감돼 있다가 온 병사들은 두발 제한이 따로 없어 장발을 하고 수염도 기르고 있다. 또 이들은 정규 군인과 달린 표준화된 군복도 받지 않았다.

프리고진은 총참모장의 이발·면도 지시를 놓고 소셜미디어(SNS)에 “전쟁은 깨끗하게 면도를 한 사람들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용기 있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며 “우리 전사들은 우크라이나 군대와 싸우느라 너무 바빠서 면도할 수 없었다”고 반발했다. 텔레그래프는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은 바그너 부대를 약화하기 위해 빈정대는 명령까지 내렸다”고 전했다.

지난해 11월 4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내에 문을 연 바그너 그룹 국방기술센터를 방문한 사람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해 11월 4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내에 문을 연 바그너 그룹 국방기술센터를 방문한 사람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승승장구하던 프리고진의 입지가 좁아진 모양새다. 프리고진이 지난 몇 달간 동부 군사 요충지 바흐무트를 점령하지 못하면서 푸틴 대통령의 신뢰가 정규군을 이끄는 게라시모프 총참모장,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 등으로 다시 옮겨졌다고 미국 전쟁연구소(ISW)가 지난 22일 분석했다.

ISW는 “푸틴 대통령은 최근 TV 인터뷰에서도 (바흐무트 인근) 솔레다르 점령을 이야기할 때 프리고진이나 바그너 부대의 공은 인정하지 않았다”면서 “러시아 군대를 이끌던 최고 관리들을 넘어서려고 했던 프리고진의 희망은 망상이 됐다”고 꼬집었다.

요식업계의 재벌이자, 푸틴 대통령의 전속 요리사를 지낸 프리고진은 ‘푸틴의 요리사’로 불렸다. 주로 음지에서 푸틴 대통령이 필요로 하는 불법적인 일을 도맡았다. 지난 2014년에는 ‘푸틴 그림자 부대’로 알려진 악명 높은 용병 기업 바그너 그룹을 창설해 우크라이나·아랍·아프리카·중남미 등에서 내전·분쟁에 개입해 러시아의 영향력을 확장하려 했다. 이번 전쟁에서도 초기부터 참전해 돈바스 지역 일부를 점령하며 푸틴 대통령의 신임을 얻었다.

그간 러시아 정부와의 연계를 부인하며 노출을 꺼렸던 프리고진은 자신의 바그너 부대가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일부 성과를 보이자 지난해 9월부턴 공개 활동을 시작했다. SNS를 통해 바그너 그룹을 자신이 만들었다고 밝히고, 러시아군 고위 관계자를 신랄하게 비판하며 쇼이구 국방장관에게 반기를 들었다. 지난해 11월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국방기술센터를 열고 바그너 그룹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미국 백악관이 지난 20일 러시아와 북한의 철도를 찍은 위성 사진을 공개했다. 열차가 지난해 11월 18일 러시아를 출발(왼쪽)해 다음날 북한에 도착해 무기를 싣고 다시 러시아로 향하는(오른쪽) 모습이 담겼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백악관이 지난 20일 러시아와 북한의 철도를 찍은 위성 사진을 공개했다. 열차가 지난해 11월 18일 러시아를 출발(왼쪽)해 다음날 북한에 도착해 무기를 싣고 다시 러시아로 향하는(오른쪽) 모습이 담겼다. 로이터=연합뉴스

그러나 지난해 말부터 우크라이나 전황이 불리해지면서 푸틴 대통령의 눈 밖에 났다. 프리고진의 튀는 행보를 놓고 러시아 수뇌부도 불쾌해했다. 서방도 그의 행보에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미국은 지난해 말 북한의 무기가 바그너 그룹으로 들어갔다고 밝혔는데, 지난 20일에는 아예 해당 증거 사진을 공개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러시아와 북한에서 철도 차량을 찍은 두 장의 위성 사진을 보여주며 “기차 차량 5대가 지난해 11월 18일 러시아에서 북한으로 이동했고, 북한은 11월 19일 이 열차에 (로켓·미사일이 담긴) 컨테이너를 실어 러시아로 보냈다”며 “유엔 안보리에서 결의 위반 문제를 다루겠다”고 했다.

그러자 프리고진은 지난 21일 SNS에 “커비씨, 바그너 그룹이 저질렀다는 범죄가 도대체 무엇인지 명확히 해 달라”고 올리며 이의를 제기했다. 그러나 미국 재무부는 바그너 그룹을 초국가적 범죄 조직으로 지정하고 강도 높은 추가 제재에 돌입했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