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대머리" 놀림에 총도 쐈다…사기꾼의 타깃 '100만 탈모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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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은 동성에게는 힘을, 이성에게는 매력을 어필하는 수단이다. '탈모'가 개인에게 미치는 심리적 영향에 대한 인식이 커지면서 과거에는 모욕이나 명예훼손으로 인정받지도 못하던 '대머리'가 이제는 종종 모욕의 사례로 판결문에 등장하고, 탈모치료를 위한 시술과 수술로 인한 송사에서도 손해배상 판결이 나는 경우가 다수 생겼다. 중앙포토

머리카락은 동성에게는 힘을, 이성에게는 매력을 어필하는 수단이다. '탈모'가 개인에게 미치는 심리적 영향에 대한 인식이 커지면서 과거에는 모욕이나 명예훼손으로 인정받지도 못하던 '대머리'가 이제는 종종 모욕의 사례로 판결문에 등장하고, 탈모치료를 위한 시술과 수술로 인한 송사에서도 손해배상 판결이 나는 경우가 다수 생겼다. 중앙포토

탈모 극복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탈모를 둘러싼 법적 분쟁이 빈번해지고 있다. 최근엔 모발이식 관련 갈등이 대법원에서 판가름났다.

모발이식 직후 모발 가닥이 움직이지 않게 고정하기 위해 물체 접착용 스프레이를 사용한 것이 ‘비도덕적 진료행위’일까? 지난 2일 알려진 대법원의 판단은 ‘아니다’였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의사 A씨가 보건복지부 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보건복지부의 의사면허 정지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에서 원고 승소를 확정했다. 피부에 직접 뿌리려던 게 아니며, 의학 교과서에도 실린 적 있는 시술법이라는 등이 이유였다.

국내 탈모 치료인 약 100만명, 탈모 관련 시장은 4조원대로 추정된다. 관련 시술과 수술이 보편화되면서 법적 분쟁도 다양해지고 있다. 2014년에는 모발이식 절개를 너무 넓게 한 탓에 이어붙인 두피가 내내 땡기고 통증이 생긴 경우에 대해 2715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온 적도 있다. 탈모를 가리기 위한 두피문신, 펌 등의 후유증도 소송이 잦은 테마다.

90년대까진 ‘탈모’는 부상, ‘대머리’는 인상착의에 불과 

 탈모 치료에 대한 관심이 늘고, 특히 젊은 층의 탈모 치료가 늘면서 탈모 시장은 점점 커지는 중이다. 자료 식약품의약품안전처,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중앙포토

탈모 치료에 대한 관심이 늘고, 특히 젊은 층의 탈모 치료가 늘면서 탈모 시장은 점점 커지는 중이다. 자료 식약품의약품안전처,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중앙포토

‘탈모’ ‘대머리’가 법정 다툼의 키워드가 된 건 비교적 최근 현상이다. 법원도서관 판결문 검색 시스템을 통해 거슬러가보면 90년대까지도 판결문에서 ‘탈모’ ‘대머리’가 분쟁의 키워드로 등장한 적이 거의 없다.

각종 사고에서 비롯된 손해배상 소송에서 상해의 결과로 가끔 ‘탈모’가 언급되는 정도다. 교통사고로 인해 머리 부상을 입은 이에게 치료비를 지급하라는 1984년 판결문에서 ‘측두부 탈모성반흔 성형술’, 전기업무 담당자로 일하다 2만 2000볼트 고압전류에 감전된 사람의 1990년 손해배상 소송에서 부상의 형태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탈모’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오히려 ‘탈모(脫毛)’가 아닌 ‘탈모(脫帽·모자를 벗다)’가 판결문에 더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2000년대 초반까지도 ‘탈모’는 상해·스트레스의 결과로, ‘대머리’는 범인에 대한 인상착의 설명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010년 들어선 ‘대머리’ 욕하면 모욕·명예훼손 벌금 多

게임 철권 시리즈 캐릭터 '헤이아치', 잔망루피 캐릭터. '헤이아치'는 일부 머리카락이 없는 스타일이 '헤이아치 스타일'로 언급될 정도로 헤어스타일이 유명한 캐릭터다. MZ세대에서 인기가 높은 잔망루피 시리즈는 언어유희를 이용해 원래는 머리카락이 없는 루피 캐릭터에 머리카락을 더한 버전을 내놓아 웃음을 유도하기도 했다. 사진 반다이남코, 아이코닉스

게임 철권 시리즈 캐릭터 '헤이아치', 잔망루피 캐릭터. '헤이아치'는 일부 머리카락이 없는 스타일이 '헤이아치 스타일'로 언급될 정도로 헤어스타일이 유명한 캐릭터다. MZ세대에서 인기가 높은 잔망루피 시리즈는 언어유희를 이용해 원래는 머리카락이 없는 루피 캐릭터에 머리카락을 더한 버전을 내놓아 웃음을 유도하기도 했다. 사진 반다이남코, 아이코닉스

‘대머리’가 극히 모욕적인 표현으로 인식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판결문에도 반영되기 시작한 건 2010년 전후다. 2011년 대법원은 온라인 게임 댓글창에 대머리가 아닌 사람을 ‘대머리’‘뻐꺼’(머리가 벗겨진 사람을 일컫는 은어)라고 칭했다가 명예훼손죄로 기소된 경우를 무죄라고 판단했다.

1심은 “사회적 가치 내지 평가를 떨어뜨린다고 보기 어렵고, 무분별한 처벌 확장이 우려된다”며 무죄, 2심은 “외모에 대한 가치평가적 ·부정적 요소가 있고, 당사자는 심한 정신적 스트레스와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를 느끼게 하기도 한다”며 벌금 30만원형을 선고한 사건이었다. 대법원은 “경멸적 감정을 표현해 모욕을 주려는 것이었을 수는 있어도 그 표현 자체가 상대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를 훼손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봤다. 모욕일 순 있어도 명예훼손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 이후 무언가를 단속하는 경찰관에게 ‘대머리’라고 했다가 벌금형을 맞은 사례가 자주 발견된다. “많이 특이하게 생겼다. 야 대머리, 머리가 까져가지고 XX아”(2013년, 벌금 200만원), “XX, 머리도 없는 저 대머리새끼가 그랬어”(2014년, 벌금 70만원), “야 대머리 새끼, 너는 죽었어, 이 X같은 새끼, 저 대머리새끼 머리를 확 벗겨버린다”(2015년, 벌금 200만원) 등이다. ‘탈모’ ‘대머리’는 군대 내 괴롭힘 사건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다. 이같은 조롱이 총기사고를 부른 사례도 있다. 2019년엔 ‘대머리’라고 놀림을 받다 격분해 사람을 죽이는 비극도 벌어졌다.

“본능적으로 ‘머리카락=매력’, 현대 사회선 ‘외모 자본’ 인식”

의약품 오인 광고 적발 사례. 사진 식품의약품안전처

의약품 오인 광고 적발 사례. 사진 식품의약품안전처

최근엔 각종 사기 사건 판결문에서 ‘탈모 치료’를 언급하며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식품·화장품을 고가로 팔거나 금전 편취의 미끼로 활용하는 사례가 넘쳐나고 있다. 탈모 증상을 극복하고 싶은 욕망을 잇속을 챙기는 데 악용하는 사례들이다.

서울대학교병원 피부과 권오상 교수는 “머리카락은 진화론적으로 동성에게는 위세를, 이성에게는 매력을 보여주는 수단으로 각인돼 있다”며 “최근 ‘탈모’ 관련 고민이 늘어난 것처럼 보이는 건 사회가 점점 더 외모를 ‘경쟁력’으로 보는 탓도 있고, 우리 사회가 예전보단 풍족해져서 머리카락 고민에 신경을 더 쏟을 수 있는 환경이 된 영향도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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