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오후 찾은 서울 종로구 예지동 광장시장. 설 연휴를 하루 앞두고 어느 때보다도 활기가 넘치는 이곳에 색다른 공간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광장시장 남1문 초입에 자리한 카페 ‘어니언’이다.
서울 성수동에서는 금속 공장을, 미아동에서는 우체국을, 안국역에서는 한옥을 개조한 카페로 명성을 얻었던 어니언이 이번에는 전통시장에 둥지를 텄다. 다만 이전처럼 존재감을 드러내는 묵직한 공간은 아니다. 시장 안에 자리한 여느 점포처럼 자그마한 공간이다.
빈대떡과 떡볶이, 칼국수 등 먹을거리가 가득한 거리에서 커피를 파는 이곳은 이전에 60년 된 금은방이었다고 한다. 그 안에 남아있던 목재 소재를 활용해 테이블을 만들고, 시장에서 흔히 보는 붉은색 플라스틱 의자를 놓았다. 벽을 세워 안과 밖을 분리하지 않고, 탁 트이게 해 마치 시장에 커피 노점을 펼친 듯 시끌벅적한 정겨움이 있다.
어니언의 공간과 브랜딩을 담당하는 창작그룹 ‘패브리커’의 김성조 작가는 “공간에 지역의 특성을 반영하는 것을 중시하는 어니언에게 광장시장은 무척 매력적인 장소”라며 “외국인들이 주요 관광 코스로 삼을 만큼 한국적이면서도 인구 밀도가 높아 생동감이 넘치는 지역”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장에 위화감 없이 섞일 수 있도록 안팎을 트고, 테이프나 플라스틱 같은 시장 안에서 주로 쓰이는 재료를 주로 활용해 공간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 문을 연 시장 안 투박한 카페는 조용히 입소문을 타면서 늘 문전성시다. 이날도 인증샷을 찍으러 온 20·30세대와 광장시장을 찾은 외국인들, 인근 시장 상인들이 뒤섞여 추위를 막기 위해 설치한 투명 비닐막 안에서 뜨거운 커피 한 잔을 기다리는 풍경이 연출됐다.
지난달 16일 문을 연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의 ‘스타벅스 경동1960’도 화제다. 1960년대 지어진 이후 상인들의 창고로 사용됐던 오래된 폐극장을 개조한 공간이다. 약재상과 인삼 가게 등이 즐비한 경동시장 특유의 분위기와 복고 감성이 가득한 매장 공간이 어우러지면서 젊은 세대들 사이 ‘핫플레이스’로 자리했다.
스타벅스 관계자에 따르면 하루 1000명 이상, 주말에는 2000명 이상이 손님이 찾는다고 한다. 이날 오후 찾은 스타벅스 경동1960의 1200㎡(약 360평) 규모 실내 200여 석 좌석은 빈자리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북적였다. 이날 이곳서 만난 대학생 김수진(23) 씨는 “시장 안에 이런 탁 트인 공간이 있을 줄은 몰랐다”며 “시끌벅적한 시장을 지나 안으로 들어왔을 때, 반전의 느낌이 특히 멋있다”고 말했다.
고무적인 것은 기존 전통시장을 찾는 중장년층보다 20·30대 젊은 세대들이 몰리고 있다는 점이다. 주차 시설이 부족하고 접근성이 떨어지는 데다, 약재상이 주를 이루는 등 젊은이들이 찾기 쉽지 않은 지역임에도 이색 카페 자체가 즐길 거리가 돼 인기를 끌고 있다.
카페 하나가 생긴 정도지만, 낙수 효과도 은근히 큰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수혜를 본 것이 경동시장 내 위치한 청년 몰 ‘서울 훼미리’다. 약 20개의 음식 매장이 모여 있는 푸드코트 형태의 몰인데, 스타벅스가 생기면서 평균 매출이 50% 이상 늘었다. 전훈 청년몰 회장은 “이전에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인 점심시간 외에는 찾는 손님이 드물었다면, 지금은 오후 2~3시까지도 손님들이 유입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9일에는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가 충남 예산군과 공동으로 진행한 창업 프로젝트 ‘예산시장 살리기’가 유튜브를 통해 공개됐다. 백종원 대표가 시장 내 빈 점포를 리모델링해 칼국숫집·정육점·양조장 등으로 탈바꿈한 프로젝트다.
시장 골목 특유의 활기 넘치는 분위기를 살리면서도 최근 유행하는 복고 감성을 더한 공간으로 벌써 소셜미디어에 방문 후기가 이어지고 있다. 예산군에 따르면 프로젝트 시작 일주일 만에 누적 방문객만 1만 명을 돌파했다.
이런 사례들은 전통시장 살리기에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 그동안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많은 예산을 투입해 시장 현대화를 지원했지만, 더 중요한 것이 ‘놀 거리’ ‘즐길 거리’라는 사실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젊은 세대들 사이 시장은 이미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공간을 넘어 관광·문화·엔터테인먼트(여흥)가 결합한 공간이 되어가고 있다”며 “대형마트나 백화점과는 다른 시장 자체만이 갖는 고유의 생동감을 살리고 체험 요소를 더한다면 전통시장에 더 많은 가능성이 생길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