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계묘년…과학의 눈으로 본 토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토끼를 앞두고 설치한 용인 에버랜드의 토끼 조형물 [에버랜드 제공]

토끼를 앞두고 설치한 용인 에버랜드의 토끼 조형물 [에버랜드 제공]

2023년 계묘년(癸卯年)은 '검은 토끼의 해'다.

토끼는 고대 로마 시대부터 가축으로 널리 사육됐고, 이제는 반려동물로도 자리를 잡았다.

국내에서는 1900년대 초 일본에서 수입한 품종을 기르기 시작한 게 집토끼 사육의 시작인 것으로 알려졌다.

광복 이전부터 앙고라·친칠라 등 여러 품종을 길러왔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0년에만 해도 국내에서는 3만9000여 곳의 농가에서 45만7000여 마리의 토끼를 사육했는데, 2010년에는 5900여 농가의 17만9800여 마리로 줄었다.

2020년에는 농가 1483곳에서 4만7000여 마리를 기르고 있어 지난 20년 동안 10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동물 권리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털(모피)을 얻기 위한 사육이 크게 줄었고, 토끼 고기 수요 역시 예전보다 덜하다.

개·고양이와 비슷한 지능 

2023년 계묘년 (癸卯年)을 맞아 충남 논산의 한 카페에서 마련한 토끼 먹이주기 체험장에서 토끼들이 먹이를 먹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2023년 계묘년 (癸卯年)을 맞아 충남 논산의 한 카페에서 마련한 토끼 먹이주기 체험장에서 토끼들이 먹이를 먹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토끼는 토끼목(目, Lagomorpha), 토끼과(科, Leporidae)에 속하는 작은 포유류다.
고산지대에 사는 우는토끼(pika)까지 포함한 토끼목 전체로는 100종이 넘고, 토끼과에는 30여 종이 포함된다.

영어권에서는 집토끼(rabbit)와 산토끼(hare)가 별개의 단어로 구분하는데, 생물학적으로도 별개의 종이다.

대표적인 집토끼 종은 굴토끼(Oryctolagus cuniculus)인데, 여기에는 유럽토끼와 그 후손인 300품종이 포함된다. 유럽토끼는 남극 대륙을 제외한 모든 대륙에 퍼졌다.

산토끼는 땅 위 둥지에서 독립생활을 하며, 귀가 더 길고 뒷다리가 더 크고 길다.

종에 따라 크기도 매우 다양한데, 작은 것은 몸무게가 1~1.5㎏, 큰 것은 7~8㎏ 정도다. 기네스북에는 몸무게가 20㎏이 넘는 토끼도 기록돼 있다.

토끼의 지능은 개·고양이와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토끼도 사람의 얼굴을 인식하고 사람의 행동에 반응하기도 한다. 친근한 사람과 낯선 사람을 구별할 수 있다.

토끼도 무시당하면 슬픔·분노·질투·불안의 징후를 보이기도 한다.

토끼는 비교적 뛰어난 기억력을 가지고 있다.
장기 기억력이 뛰어나 오래전에 있었던 사건도 기억할 수 있다.

하지만 먼 곳에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능력은 없는 편이다.
방향 감각이 뛰어나지는 않고, 개처럼 추적 능력이 없기 때문에 길을 잃기가 쉽다.

포식자 피하는 생존 전략

2021년 9월 30일 미국 메인주 웰스 하구 보호구역에서 솜꼬리토끼가 야생으로 방사되고 있다. AP=연합뉴스

2021년 9월 30일 미국 메인주 웰스 하구 보호구역에서 솜꼬리토끼가 야생으로 방사되고 있다. AP=연합뉴스

자연계에서 많은 포식자가 토끼를 먹잇감으로 노리고 있지만, 토끼도 나름의 생존 전략을 갖고 있다.

우선 속도와 민첩성이다. 토끼는 큰 뒷다리 뼈와 잘 발달한 근육을 가지고 있는데, 뒷다리가 길수록 더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다.
하지만, 내리막길을 달릴 때는 뒷다리가 길어 속도를 내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토끼를 사냥할 때에는 내리막길로 몰아서 잡는다.

방어할 때는 이빨과 함께 강한 발톱을 사용한다. 앞발에는 4개의 발가락과 며느리발톱이 있고, 뒷발에는 4개의 발가락이 있지만, 며느리발톱은 없다.

야생 토끼의 부드러운 털은 위장에 도움이 되는 색상을 갖고 있다.
각 모발이 회색과 갈색 두 가지의 색을 갖고 있다. 드물게 검은색을 띠는 경우도 있다.

하얀 집토끼는 색소를 만들지 못하는 알비노(albino) 동물이다.

토끼의 눈은 콧등을 제외한 거의 360도를 볼 수 있는 시야를 갖고 있다.

매우 큰 귀 덕분에 매우 뛰어난 청력을 갖고 있다. 다양한 청각 신호를 이해할 수도 있다.

토끼의 귀는 270도 각도로 양쪽 귀가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있어 3㎞ 밖에서 나는 다양한 소리도 명확하게 들을 수 있다.

토끼는 대략 하루에 8시간 반 정도 잠을 자는데, 낮이건 밤이건 틈틈이 잠을 잔다.
대신 저녁이나 새벽에 가장 활동적이다.

이 또한 밤이나 낮에 주로 활동하는 포식자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전략이다.

토끼는 종종 눈을 뜨고 잠을 자므로 갑작스러운 위험에도 잘 대응한다.

1년에 수백 마리로 늘어날 수도

충남 논산의 한 카페 토끼 먹이주기 체험장을 찾은 어린이들이 다산과 행복의 상징 토끼들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충남 논산의 한 카페 토끼 먹이주기 체험장을 찾은 어린이들이 다산과 행복의 상징 토끼들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암컷 토끼는 두 개의 자궁을 갖고 있다.
보통 생후 3~8개월이면 성적으로 성숙해지고, 연중 언제든지 임신할 수 있다.

임신 기간은 28~36일 사이로 평균 31일이다.
한 배에 4~12마리를 낳고, 연간 최대 60마리까지 새끼를 낳을 수 있다.

암컷은 출산 바로 다음 날 다시 임신할 수도 있다.

짝짓기하는 동안 수컷은 암컷 뒤에서 음경을 삽입하고, 빠르게 엉덩이를 움직인다.
수컷은 짝짓기 행위를 20~40초 동안만 지속한 뒤 암컷으로부터 떨어진다.
하지만 잠시 후 수컷은 다시 짝짓기를 시도하는 경우도 많다.

암컷은 임신 중에도 짝짓기해서 새로 임신하는, '중복 임신'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새끼가 빨리 성숙해 다시 새끼를 낳는 과정 등을 모두 고려하면, 1년 사이에 토끼 한 쌍이 수백 마리로 불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100여 종의 토끼 모두가 번식력이 높은 것은 아니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의 '레드 리스트'에 따르면 멸종위기에 처한 토끼 종이 16종이나 된다.

생태계 파괴하는 외래종 토끼 

토끼 확산을 막기 위해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지역에 설치한 울타리. [위키피디아]

토끼 확산을 막기 위해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지역에 설치한 울타리. [위키피디아]

원래 호주에는 토끼가 살지 않았다. 1788년 호주에 처음 토끼가 도입됐다.

1859년에는 호주의 남동쪽 빅토리아 주의 한 농장 주인이 유럽에서 들여온 토끼를 농장에 풀어놓았다. 취미로 토끼를 사냥하기 위해서였다.

토끼는 엄청난 번식력을 자랑하며 호주 전역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토끼는 풀을 다 뜯어 먹었고, 땅에 굴을 파 나무를 죽이는 등 생태계에 심각한 영향을 끼쳤다.

1907년 호주 정부는 토끼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6년에 걸쳐 2000마일(3200㎞)이 넘는 긴 울타리를 설치하고, 폭약 등으로 굴속의 토끼를 사냥하기도 했다.

하지만 울타리도 폭약도 소용이 없었다.
1910년 무렵에는 빅토리아 주 반대편인 호주 서해안에서도 토끼가 발견될 정도로 호주 전체에 토끼가 퍼져나갔다.
1920년대에는 토끼가 100억 마리에 이르기도 했다.

호주에서 토끼가 야생으로 확산한 과정을 연도별로 나타낸 지도.[자료; Tooth and Nail, 1999]

호주에서 토끼가 야생으로 확산한 과정을 연도별로 나타낸 지도.[자료; Tooth and Nail, 1999]

호주 야생에서 토끼를 포획하는 장면. [자료; Tooth and Nail, 1999]

호주 야생에서 토끼를 포획하는 장면. [자료; Tooth and Nail, 1999]

호주 정부는 토끼를 죽이기 위해 1950년대에 믹소마 바이러스를 살포했고, 6억 마리에서 2년 만에 1억 마리 수준으로 줄일 수 있었다.

이후 바이러스에 대한 저항성이 생기면서 1991년에는 다시 2억~3억 마리로 늘었다.

호주 정부는 다시 캘리시 바이러스를 들여와 1996년 10월부터 살포했다. 바이러스를 살포한 지 약 3년 만에 토끼들은 거의 멸종되었지만, 다시 이 바이러스에 면역을 지닌 토끼가 나타났다.

현재도 2억 마리의 토끼가 호주 전역에서 살아가고 있다.

국내에서도 제주도 제주시 사라봉에 풀어놓은 토끼가 논란이 되고 있다.
토끼가 살지 않던 이곳에서 4~5년 전부터 집토끼의 일종인 굴토끼가 눈에 띄기 시작했는데, 지난해에는 40여 마리로 늘어났다.

집에서 기르던 것을 풀어놓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굴을 파는 과정에서 토양 침식 등 생태계 교란이 우려됐다.
제주시에서는 지난해 토끼 포획을 시작했고, 올해 안에 모두 잡아들일 계획이다.

잔혹한 동물 실험에 희생되기도

실험을 위해 좁은 우리에 갇힌 토끼. [PETA 제공]

실험을 위해 좁은 우리에 갇힌 토끼. [PETA 제공]

토끼는 성질이 온화하고 다루기 쉽고 사육하기 쉽기 때문에 동물실험에 널리 이용됐다.

토끼 실험 중에서 악명 높은 것이 '드레이즈 테스트(Draize Test)'라고 불리는 '눈 자극 테스트'다.
움직이지 못하도록 토끼를 고정하고, 실험하려는 화학 성분을 토끼 눈에 발라 그 영향을 파악하는 실험이다.

토끼는 눈에서 충혈·부기·궤양 증상이 나타나면서 고통을 겪게 되는데, 실험이 끝나면 죽임을 당하게 된다.

토끼 등의 털을 깎고 피부에 화학물질을 발라 독성을 테스트하는 경우도 있다.
화학물질로 피부가 손상돼 고통을 겪지만, 진통제를 투여하는 경우는 없다. 역시 실험이 끝나면 죽임을 당한다.

미국에서는 연간 16만 마리 정도가 실험실에서 희생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한 해 2만7000여 마리가 동물실험에 사용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동물 권리 보호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커지면서 과거보다는 많이 줄었다.
직접 동물을 대상으로 실험하기보다는 세포배양 실험이나 컴퓨터 모델 예측 등으로 대체하는 추세다.

기후변화로 벼랑 끝에 서다

여름철 짙은 털 색깔의 눈덧신토끼. [위키피디아]

여름철 짙은 털 색깔의 눈덧신토끼. [위키피디아]

겨울철 털색이 흰색으로 바뀐 눈덧신토끼. [위키피디아]

겨울철 털색이 흰색으로 바뀐 눈덧신토끼. [위키피디아]

산토끼 중에 북미 대륙에 사는 눈덧신토끼(snowshoe hare, 학명 Lepus americanus)는 짙은 털 색깔을 갖고 있지만, 겨울이 되면 하얀색 털로 갈아입는다.
겨울철 눈이 덮인 곳에서 사는 눈덧신토끼가 포식자의 눈을 피하기 위한 위장술이다.

문제는 기후변화로 눈으로 덮인 지역이 줄고, 눈이 쌓인 기간이 갈수록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주변 환경 색과 토끼 털 색깔이 일치하지 않는 날수가 늘어나고 있다.

토끼 털은 흰색으로 바뀌었지만, 눈이 아직 내려 쌓이지 않았거나 이미 녹아버린 경우가 많아진다.
이렇게 되면 포식자에게 잡아먹히는 토끼 수가 많아지고, 생존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과 몬태나대학의 연구팀이 서부 몬태나의 토끼 186마리에게 전파 발신 목걸이를 달고 매주 관찰했다.
그러자 털 색깔과 주변 환경이 일치하지 않는 토끼는 생존율이 최대 7% 감소했다 (Ecology Letters 2016년. 마틴 스티븐스 《은밀하고 거대한 감각의 세계》).

사족: 토끼는 간이 크다

정귀자 서울시 무형문화재 민화장이 그린 '쌍토도'. 경복궁 수문장 모자를 쓴 호랑이와 두 마리 토끼가 그려져 있다. 한국문화재재단은 설 연휴인 21일부터 24일까지 경복궁 광화문 수문장청에서 ‘2023년 수문장 세화 나눔’ 행사를 연다. [한국문화재단]

정귀자 서울시 무형문화재 민화장이 그린 '쌍토도'. 경복궁 수문장 모자를 쓴 호랑이와 두 마리 토끼가 그려져 있다. 한국문화재재단은 설 연휴인 21일부터 24일까지 경복궁 광화문 수문장청에서 ‘2023년 수문장 세화 나눔’ 행사를 연다. [한국문화재단]

조선 후기의 판소리계 소설인 《별주부전》에는 용왕과 자라, 토끼가 등장한다. 여기엔 토끼의 간이 중요한 소재로 언급된다.

토끼의 간은 4개의 주요 엽(葉)으로 나뉜다. 해부학에서 엽이란 폐·간 등의 기관에서 현미경 없이도 명백하게 구분할 수 있는 부분들을 말한다.
토끼의 간은 왼쪽 좌엽과 오른쪽 우엽으로 나뉘며, 이들은 다시 전엽과 후엽으로 나뉜다.

이 외에도 담낭 뒤에 있는 방형엽(方形葉, 사각형)이, 오른쪽 신장 옆에는 미상엽(尾狀葉, 가는 꼬리 모양)이 있다.

이에 비해 사람의 간은 우엽과 좌엽, 그 사이에 있는 방형엽과 미상엽으로 구분된다.

토끼의 상대적으로 큰 편이다. 사람의 간은 전체 몸무게의 2% 정도인데, 토끼는 4.5%를 차지한다.
토끼는 하루에 약 250mL의 담즙을 생산하는데, 이는 체중 1㎏ 기준으로 보면 개보다 7배나 많은 양이다.

실제 토끼의 간을 요리해 먹는 경우가 있는데, 닭고기와 비슷한 맛이 나지만 특유의 풍미를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토끼 간에는 철분 함유량이 많기 때문에 이를 요리해 먹으면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도 있다.

관련기사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