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없어지면 마을은 끝장" 노인회가 무덤처럼 지키는 폐교 [4500km 폐교로드③]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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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홍천군 영귀미면에 있던 속초초 좌운분교. 2021년 3월 폐교 후 마을 노인회가 관리한다. 김태윤 기자

강원도 홍천군 영귀미면에 있던 속초초 좌운분교. 2021년 3월 폐교 후 마을 노인회가 관리한다. 김태윤 기자

“우리 마을에서 아기가 태어난 게 5년도 더 됐어요. 이러니 학교가 없어질 수밖에….”

지난해 10월 말 강원도 홍천군 영귀미면 좌운리에서 만난 김성기 노인회장은 모교인 속초초등학교 좌운분교(옛 좌운초) 운동장에 세워진 폐교 안내판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안내판에 적힌 폐교 사유는 ‘학생 수 감소’였다.

이 학교는 개교 87년 만이 2021년 3월 문을 닫았다. 6학년 두 명이 졸업하고 홀로 남겨진 5학년 여학생은 속초초 본교로 전학했다. 폐교 건물과 운동장은 마을 노인회가 관리한다. 여름엔 운동장 뒤편에 콩을 심었다고 했다. 이날 3시간여 동안 좌운1‧2리에 머물렀지만, 어린아이들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폐교한 속초초 좌운분교에 있는 이승복 동상. 김태윤 기자

폐교한 속초초 좌운분교에 있는 이승복 동상. 김태윤 기자

“학교가 없어지면 마을은 끝장” 

학교가 없어질 수 있다는 소문은 10여 년 전부터 돌았다. 좌운초 22회 졸업생인 김 회장은 “2008년에 분교가 될 때부터 폐교 얘기가 나왔다”며 “당시 다니던 애들이 20명 남짓이었고, 폐교 직전엔 3명이 다녔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다닐 때만 해도 전교생이 550명 가까이 됐는데, 지금은 마을 전체에 어린아이가 세 명뿐”이라며 “지난 30년간 말릴 새도 없이 젊은이들이 마을을 떠났고 결국 학교도 사라졌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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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회장 옆에 있던 노인은 “지방 소멸이라면서 산부인과가 없다느니, 소아과가 없다느니 떠드는데, 지방에서 정말로 심각한 것은 폐교”라며 “산부인과가 없으면 도시에 가서 낳고 돌아오면 되지만, 학교가 없어지면 마을은 끝장”이라고 말했다.

강원도 홍천군에 있던 속초초 월운분교. 학생 수 감소로 지난해 폐교했다. 김태윤 기자

강원도 홍천군에 있던 속초초 월운분교. 학생 수 감소로 지난해 폐교했다. 김태윤 기자

40년 새 홍천군에서 56개 학교 문 닫아 

지난 40년 새 홍천에선 56개 학교가 문을 닫았다. 현재 홍천군 관내에 있는 초‧중‧고(46곳)보다 많다. 1990년대 중반부터 본격화한 ‘폐교 도미노’는 현재 진행형이다. 2021년엔 내촌초 동창분교가, 지난해에 속초초 월운분교가 폐교됐다. 같은 날 찾은 두 폐교 인근은 한적했다. 운동장은 수풀만 무성한 채 스산했다. 인적 없던 동창분교 앞 논길에서 만난 한 노인은 “산지 개발을 하든, 농토 개발을 하든 젊은이들이 올 수 있게 뭐라도 해야 했는데 손 놓고 있다가 이 꼴이 됐다”고 말했다. ‘뭐라도 해야 했다’는 시골 노인의 말이 깊고 무겁게 다가왔다.

강원도 홍천군 서면에 있는 모곡초. 지난해 신입생이 한 명도 없었고, 올해는 두 명이 입학 예정이다. 김태윤 기자

강원도 홍천군 서면에 있는 모곡초. 지난해 신입생이 한 명도 없었고, 올해는 두 명이 입학 예정이다. 김태윤 기자

홍천 소재 초교 15곳, 올해 신입생 5명 이하  

홍천엔 교문이 절반쯤 닫힌 학교도 적지 않다. 영귀미면에서 20여km 떨어진 서면에 있는 모곡초. 이 학교는 지난해 입학식과 졸업식이 없었다. 1학년과 6학년이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올해는 신입생 두 명이 입학 예정이지만 전교생은 10명에 불과하다. 모곡초 앞에서 만난 한 60대 여성은 “누군가 귀농‧귀촌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폐교될 것이란 얘기가 많다”고 말했다. 같은 서면에 있는 한서초 역시 지난해 입학생이 없었다가, 올해 병설 유치원에 다니던 아이들 4명이 입학한다. 올해 기준 전교생은 17명이다.

강원도 홍천군 서면에 있는 한서초. 지난해 신입생이 한 명도 없었다. 김태윤 기자

강원도 홍천군 서면에 있는 한서초. 지난해 신입생이 한 명도 없었다. 김태윤 기자

홍천교육지원청에 따르면, 홍천에 있는 초등학교 27곳 중 전교생이 30명 이하인 학교는 12곳이다. 이중 강원도교육청이 정한 통폐합 기준(본교 10명, 분교 5명 이하)에 해당하는 학교는 4곳이다. 중앙일보가 도 교육청에서 받은 ‘2023년 초등학교 신입생 예비소집 점검’ 자료에 따르면, 올해 홍천 소재 초등학교 중 절반이 넘는 15곳은 신입생이 5명 이하다. 삼생초(서석면)와 반곡초(서면)는 입학생이 한 명뿐이다. 이를 포함해 홍천군 전체의 올해 초등학교 진학 예정자는 375명. 서울 소재 초등학교 평균 학생 수(658명, 2021년 기준)의 절반을 조금 웃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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