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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 발자국따라 걸어볼까...1억년전 신비의 군산 '62㎝ 웅덩이' [르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17일 전북 군산시 산북동 '공룡·익룡 발자국 화석 산지'. 오는 31일 개방을 앞두고 군산시 문화예술과 소속 김영중 주무관이 보호각 내 공룡 발자국을 가리키고 있다. 군산=김준희 기자

지난 17일 전북 군산시 산북동 '공룡·익룡 발자국 화석 산지'. 오는 31일 개방을 앞두고 군산시 문화예술과 소속 김영중 주무관이 보호각 내 공룡 발자국을 가리키고 있다. 군산=김준희 기자

군산 산북동 공룡·익룡 발자국 화석 산지 31일 개방 

지난 17일 전북 군산시 산북동 '공룡·익룡 발자국 화석 산지'. 산업단지와 논밭으로 둘러싸인 건물(보호각) 안에 들어가자 바위로 된 언덕이 나타났다.

언덕에는 어른 발보다 두세 배 큰 동물 발자국이 일정한 방향으로 찍혀 있었다. 1억2000만~1억3000만 년 전 중생대 백악기 것으로 추정되는 공룡 발자국 화석이다. 화석은 동식물 유해나 발자국이 퇴적암 안에서 굳어진 것을 말한다.

최대 39m까지 이어진 발자국 행렬은 초식 공룡이 떼를 지어 호숫가를 걸어 다닌 흔적이다. 4109㎡ 규모의 산북동 화석 산지는 2013년 7월 인근 산업단지를 잇는 도로 공사 중 발견됐다.

발견 초기 군산 산북동 공룡·익룡 화석 산지 모습. 도로 공사 중 발견됐다. 오른쪽은 고압 세척기를 이용해 물청소하는 모습. 사진 군산시

발견 초기 군산 산북동 공룡·익룡 화석 산지 모습. 도로 공사 중 발견됐다. 오른쪽은 고압 세척기를 이용해 물청소하는 모습. 사진 군산시

산업단지 도로 공사 중 발견…천연기념물 지정

군산시와 학계에 따르면 산북동 화석 산지는 과거 작은 바위섬이었다. 주변은 바다를 메운 간척지(새만금)다. 육지로 바뀌면서 섬은 언덕(구릉)이 됐다. 도로를 만들면서 중간에 있던 언덕을 잘랐다.

당시 군산 지역 지질도를 만들고 있던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소속 지질학자 등이 도로 쪽 경사진 암반에 노출된 공룡 발자국 화석을 보고 문화재청에 신고하면서 대대적인 발굴 조사가 이뤄졌다. 이전까지 주민들은 웅덩이인 줄로만 알았다고 한다.

문화재청은 군산시와 함께 문화재 조사에 착수, 매몰돼 있던 공룡 발자국 화석을 추가로 발견했다. 이후 2014년 6월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지난 17일 군산 산북동 공룡·익룡 화석 산지 보호각 전경. 오른쪽은 보호각 뒤편. 과거엔 나무 등이 우거진 언덕(구릉)이었다고 한다. 군산=김준희 기자

지난 17일 군산 산북동 공룡·익룡 화석 산지 보호각 전경. 오른쪽은 보호각 뒤편. 과거엔 나무 등이 우거진 언덕(구릉)이었다고 한다. 군산=김준희 기자

45억 투입…토지 매입, 보호각 건립

군산시는 오는 31일 산북동 화석 산지를 일반에게 무료로 공개할 예정이다. 공룡 발자국이 무더기로 발견된 지 10년 만이다.

문화재청과 군산시는 지난해까지 국비·지방비 44억7900만원을 들여 ▶문화재 조사 ▶토지 매입 ▶학술 연구 용역 ▶보호각 건립 ▶화석 산지 보존 처리 등을 마무리했다. 보호각은 비바람·햇빛 등에 의한 풍화(風化) 작용으로부터 화석층 훼손을 막기 위해 지었다.

이날 보호각 안에선 군산시 문화예술과 김영중(50)·나병호(37) 주무관이 조명 각도를 조절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학예연구사인 나 주무관은 "공룡 발자국에 음영(그늘)을 만들어 관람객이 더 선명하게 볼 수 있게 하는 작업"이라고 했다. 또 "화석 보존 처리 후 쳐놓은 보행렬 표시선(줄)도 시각적으로 공룡이 걸어 다닌 흔적이 보이도록 남겨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보호각 안은 1년 내내 일정한 온도(영상 20도)와 습도(50%)를 유지해야 한다"며 실내에 설치한 항온·항습기 5대를 가리켰다. 그러면서 "국내 지질 특성상 공룡 발자국은 주로 남해와 동해에서 발견된다"며 "서해에서 공룡 발자국 화석이 발견된 곳은 군산이 유일하다"고 했다.

군산 산북동 공룡·익룡 화석 산지에 있는 공룡 발자국. 군산=김준희 기자

군산 산북동 공룡·익룡 화석 산지에 있는 공룡 발자국. 군산=김준희 기자

경남 고성·전남 해남 대표적…"군산은 서해 유일"

공룡 발자국 화석 산지는 경남 고성과 전남 해남이 대표적이다. 고성은 1982년 1월 국내 최초로 공룡 발자국이 발견된 곳이다. 1983년 12월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됐다가 1999년 9월 천연기념물로 승격됐다. 1996년 호남 최초로 공룡 발자국이 발견된 해남 황산면 우항리 공룡·익룡·새발자국 화석 산지는 1998년 10월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나 주무관은 "고성과 해남은 바닷가 단단한 돌에서 공룡 발자국이 발견돼 비가 와도 상관없지만, 산북동 화석 산지는 모래와 점토로 이뤄진 사암이라 잘 부서지고 연약해 보호각이 꼭 필요하다"고 했다.

2015년부터 산북동 화석 산지 현장을 지킨 김영중 주무관은 "일부 발자국 화석은 군산근대역사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며 "도로를 내면서 (화석을) 보관할 장소가 없어 임시로 박물관에 갖다 놨다"고 했다.

산북동 화석 산지는 전북 최초로 초식 공룡(조각류)·육식 공룡(수각류)·익룡 발자국 화석이 동시에 발견된 곳이다.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총 280여 점이 확인됐다. 초식 공룡은 두 발로 걷는 2족 보행과 네 발로 걷는 4족 보행 흔적 모두 나왔다. 육식 공룡 발자국은 40㎝가 넘는다.

군산 산북동 공룡·익룡 화석 산지 보호각 내부에 설치된 폐쇄회로TV(CCTV). 군산=김준희 기자

군산 산북동 공룡·익룡 화석 산지 보호각 내부에 설치된 폐쇄회로TV(CCTV). 군산=김준희 기자

62㎝…국내 최대 초식 공룡 발자국 발견  

국내에서 발견된 초식 공룡 발자국 중 가장 큰 화석(62㎝)도 발견됐다. '캐리리이크니움(Caririchnium)'이라 불리는 이구아노돈 발자국이다. 짧고 굵은 발가락 3개와 넓은 뒤꿈치를 가진 게 특징이다. 이구아노돈은 '이구아나 이빨'처럼 생긴 이빨을 가진 초식 공룡이다.

학계에서는 "좁은 면적에 다양한 화석과 퇴적 구조가 나타나 학술 가치가 높고, 백악기 시대 공룡 행동 특성과 고생태 환경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라는 평가가 나온다.

발자국 화석 전문가인 김경수(52) 진주교대 과학교육과 교수는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국내에선 중생대 백악기 지층이 주로 분포하는 경남·북 지역에서 공룡 발자국이 많이 발견됐다"며 "산북동 화석 산지는 서해안에도 초식 공룡·육식 공룡·익룡이 살았다는 증거"라고 했다. 경남 진주 정촌 공룡·익룡 발자국 화석 산지도 김 교수가 발굴했다.

김 교수는 "산북동 화석 산지는 잠재적 가치가 크다"고 했다. 그는 "현재 보이는 공룡 발자국 아래층에 발자국 크기가 15~30㎝인 중소형 육식 공룡 발자국 화석이 나온다"며 "더 발굴하면 보존 상태가 좋은 발자국 화석이 또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군산시 문화예술과 나병호 주무관(학예연구사)이 보호각 내부 안내판에 표시된 공룡 발자국 분포도를 가리키고 있다. 군산=김준희 기자

군산시 문화예술과 나병호 주무관(학예연구사)이 보호각 내부 안내판에 표시된 공룡 발자국 분포도를 가리키고 있다. 군산=김준희 기자

김경수 교수 "아래층서 발자국 화석 또 나올 것" 

1억2000만 년 전 산북동 화석 산지는 어떤 곳이었기에 까마득한 시간이 흘렀는데도 공룡 발자국이 남아 있는 걸까. 김 교수는 "공룡이 발자국을 남길 수 있는 조건은 진흙이 있는 물가"라며 "공룡이 살았을 때는 이곳이 조그마한 호수였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는 "공룡들이 호수 주변에 발자국을 남긴 다음 태풍·장마로 비가 많이 오면 상류 지역에서 물이 운반한 진흙과 모래로 호수는 흙탕물이 된다"며 "흙이 가라앉아 발자국을 덮고, 이런 과정이 수백만 년 반복되면 발자국 위에 두꺼운 흙이 쌓여 지하 깊은 곳에서 단단한 돌이 된다. 다시 육지가 되고 돌이 노출되면서 발자국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했다.

한편 고군산군도 국가지질공원 지정을 추진해 온 군산시는 산북동 화석 산지에 지질해설사를 배치하고, 야미도·신시도 등 고군산군도 지질 명소 10곳(산북동 화석 산지 포함)을 묶어 홍보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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