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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갑내기 부부의 ‘추앙’ 깃든 그곳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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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3호 21면

글로 지은 집

글로 지은 집

글로 지은 집
강인숙 지음
열림원

서울 평창동 영인문학관은 문학관이라는 ‘정신의 집’에 어울리는 품격을 갖춘 건축물이다. 이웃한 널찍한 ‘저택’들처럼 규모 있고 번듯한 모습이다. 하지만 문학관을 부동산으로 바라보는 사람에게라면 느낌이 다를 듯하다. 어쨌든 크고, 그래서 비싸 보이는 집이다.

이 책을, 삶에 필수적인 주거 공간을 가격으로 환산하는 세태에 던지는 통렬한 질문으로 봐도 좋겠다. 책 제목이 그런 점을 명백히 한다. 돈으로 사들인 집이 아니라 글로 지었다는 것이다. 무슨 뜻일까. 글로 지었다니. 부제가 궁금증을 손쉽게 해결해 준다. ‘구십 동갑내기 이어령 강인숙 부부의 주택 연대기’.

아시다시피 연대기는 중요한 사건들을 시간 순서대로 기록한 글이다. 서울대 국문과 동급생으로 만나 5년 연애하다 결혼한 부부가 일곱 차례 이사한 끝에 지금의 문학관 자리에 정착하기까지를 소상하게 소개했다. 문학관은 1974년 신축해 살던 주택을 허물고 2008년 새로 지은 집이다. 이어령 선생은 이미 베스트셀러 저자였고, 출판사 문학사상을 운영하며 수익이 나왔지만 문학관 건물을 짓기에는 자금이 모자랐다고 한다. 은행대출을 받아야 했다. 어쨌거나 신축 비용의 대부분은 이어령 선생의 원고료 수입과 월급에서 나왔다는 것. 글로 집을 지었다는 얘기는 그래서다. 이어령이라는 거대한 그늘에 가려 덜 알려져 있지만, 탁월한 문장가인 강인숙씨는 이렇게 쓴다.

“그러니 지금의 영인문학관 건물은 정말로 이어령 선생 한 사람이 ‘글로 지은 집’이다. 이십 년간의 그의 문학에 대한 대가가 거기 모두 들어가 있다. 그 건물은 그의 원고지 매수의 가시적인 형상이다. 그래서 나는 그 건물을 볼 때마다 눈물겹다.” (14쪽)

바로 이어지는 문장은 혹시라도 사이가 소원해진 부부들을 부끄럽게 할 법하다.

“세상에 나서 내가 가장 기뻤던 해는 그에게 원하는 서재를 만들어주던 1974년이었다. 가능하다면 그에게 희랍 신전 스타일의 기념관을 만들어주고 싶은 것이 나의 오랜 꿈이다. 이어령씨는 내게 좋은 것을 다 주고 싶은 그런 남편이다.”

아내에서 남편으로, 성(性)별 진행 방향이 바뀌었지만 지난해 방송된 드라마에 나와 유행어가 되다시피 한, “추앙”을 주고받는 관계와 다를 게 없다.

강인숙씨는 ‘나만의 방’에 다다르는 이야기를 쓰다 보니 남편 이야기를 쓰지 않을 수 없었고, 이웃과 친구 얘기도 쓰게 됐다고 했다. 친구에는 당대의 문인들도 포함된다. 책은 그래서 70년에 걸친 우리 문화사이자 생활사·사회사다. 남편을 먼저 떠나 보내고 혼자 남아 두려움과 외로움의 의미를 조용히 해독해나가는 한 어른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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