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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령 따른 계엄군, 그들도 죄책감·트라우마로 고통”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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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3호 03면

용서·화해의 손 내민 5·18 단체 회장들

황일봉(왼쪽) 5·18민주화운동 부상자회 회장과 정성국 5·18민주화운동 공로자회 회장. 최근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을 찾아 계엄군과 경찰 묘역을 참배한 이들은 “명령을 수행하다 목숨을 잃거나 고통받는 이들을 용서한 것”이라고 말했다. 장정필 객원기자

황일봉(왼쪽) 5·18민주화운동 부상자회 회장과 정성국 5·18민주화운동 공로자회 회장. 최근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을 찾아 계엄군과 경찰 묘역을 참배한 이들은 “명령을 수행하다 목숨을 잃거나 고통받는 이들을 용서한 것”이라고 말했다. 장정필 객원기자

“명령을 따르다가 어쩔 수 없이 가해자가 된 계엄군의 손을 잡은 것입니다. 그들도 죄책감과 트라우마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지난 17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투입됐다가 숨진 계엄군 묘역에 참배하고 광주광역시로 돌아온 5월 3단체(유족회·부상자회·공로자회) 임원들은 이렇게 말했다.

황일봉 5·18부상자회 회장(이하 황 회장), 정성국 공로자회 회장(이하 정 회장), 홍순백 유족회 상임부회장 등 임원단은 최익봉 대한민국특전사동지회 총재(이하 최 총재) 안내로 계엄군과 경찰 묘역을 참배했다. 현충원에는 계엄군 장교 3명(29묘역)과 사병 20명(28묘역), 경찰 4명(8묘역)이 안장돼 있다.

황 회장은 참배를 마친 뒤 최 총재에게 특전사동지회 중앙 차원에서 광주 국립5·18민주묘지 참배를 건의했다. 최 총재 등 특전사동지회 모두 흔쾌히 찬성했다고 한다. 특전사동지회 150여명은 다음 달 19일 5월 3단체 사무실을 찾을 예정이다. 이때 5월 단체 150여명과 함께 매년 5·18묘역에 참배하겠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화해와 감사- 새로운 도약 공동 선언식’을 하기로 했다. 이날 5·18묘역도 찾을 예정이다.

5월 단체 임원이 마음을 열기 시작한 건 지난해 12월 11일 옛 광주 국군통합병원 터에서 청소 봉사를 하던 계엄군 출신 시민을 만난 뒤부터다. 이 병원은 5·18 당시 고문과 폭행 피해자들이 치료를 받았던 곳으로 현재는 국가폭력 피해자를 위한 국립 트라우마센터 건립이 예정돼 있다. 청소하던 계엄군 출신 시민은 5·18 당시 대원 80명을 데리고 시민 진압 작전에 투입됐던 박성현 대위였다. 그는 5월 단체 임원들에게 사죄하며 자신의 용서를 구하면서 다른 계엄군도 트라우마로 고통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5월 단체는 조심스럽게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5월 항쟁 당시 군인들은 명령 복종에 어쩔 수 없이 부당한 지시를 따랐단 점, 그 기억과 죄책감으로 43년 동안 고통받아왔던 점 등을 고려하면 계엄군 또한 피해자일 수 있단 생각이 들어서다. 5월 단체와 특전사동지회 첫 공식적인 행사도 진행됐다. 지난 11일 특전사동지회 광주전남지부 관계자 3명은 군복을 입고 광주 서구 5·18기념문화센터에 있는 5월 단체 사무실을 방문해 감귤 20박스를 전달했다. 마음의 문을 연 5월 단체는 특전사 군복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음에도 이들의 방문을 환영했다.

이번 참배에 대해 일부 5·18 단체 회원들은 “시기와 절차가 적절치 않다”며 아쉬워하고 있다. 김형미 오월어머니집 관장은 “회원 대부분이 계엄군 묘역 참배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신문 기사를 보고 안 뒤 누구 마음대로 한 결정이냐며 카톡방(메신저 단체 대화방)에 난리가 났다”며 “계엄군 당사자가 먼저 손을 내밀었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황 회장은 “현충원 참배를 위해 상경하는 길에서 많은 비판이 있을 거라 예상했던 일이지만 용서와 화해는 더 늦출 수 없다”고 말했다. 다음은 황 회장과 정 회장의 1문 1답.

지난 17일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 장교 묘역을 찾은 황일봉 5·18 부상자회 회장. [연합뉴스]

지난 17일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 장교 묘역을 찾은 황일봉 5·18 부상자회 회장. [연합뉴스]

5월 3단체는 무슨 일을 하는가.
“5·18민주화운동 희생자는 세 부류로 크게 나뉜다. 계엄군 총·곤봉·대검 등에 사망한 분과 행방불명된 분 가족이 유족회다. 계엄군에게 폭행이나 총상을 당한 피해자와 구속된 분은 부상자회, 경찰 등에 연행·구금되거나 민주화 운동 활동을 한 분 등은 공로자회 회원이다. 3단체는 공식 단체로 회원 복지를 우선시하고 그다음에 5·18 정신을 선양·계승·발전시켜 나가는 일을 한다.”
계엄군 묘지에 참배하게 된 계기는.
“사연이 있었다.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이하 5·18 조사위) 조사에 임하던 계엄군이 한 시민을 총으로 쐈다고 진술하면서 사죄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쏜 총에 숨져 5·18민주묘역에 안장된 희생자를 찾아 사죄했다는 소식을 5·18 조사위로부터 들었다. 이 밖에도 트라우마를 겪는 계엄군 등의 사연을 계엄군 당사자와 5·18 조사위에게 직·간접적으로 들었다. 그들은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를 통해 조금이나마 마음의 짐을 덜어내고 싶어하지만 아무도 만나주지 않고 손을 내민 사람도 없는 상황을 알게 됐다. 숨어 지내야만 했던 계엄군에 손을 내밀고, 그들이 증언하면 진상규명에 더 힘을 보탤 수 있겠다는 마음에 참배했다.”
일부 회원은 아쉽다고 하는데.
“‘시기가 이르다’는 지적은 맞지 않는다. 25년 전쯤 특전사와 5월 단체가 용서하고 화해한 적이 있지만 일회성으로 끝나면서 지금까지 왔다. 43년이나 지나서 늦으면 늦었지 빠르지 않다. 5·18 조사위 활동이 곧 끝난다. 그 전에 숨어 있는 계엄군 당사자를 발굴해 더 많은 진술을 확보할 수도 있다. 지난해 12월 5월 송년회에 모인 단체 회원 700여명에게 계엄군의 참배 의사를 밝히고 동의를 구했다. 그 자리에서 열변을 토했고 박수를 얻었기 때문에 절차는 거쳤다고 봤다. 회원들께서 취지를 이해해주면 좋겠다. 명령을 수행하다 목숨을 잃거나 고통받는 이들을 용서한 것이지 신군부 수뇌부를 용서한 게 아니다.”
‘용서와 화해’를 이어갈 향후 계획은.
“25년 전 같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특전사동지회와 매년 5·18묘역을 참배하며 진정한 5·18 전국화를 이룩할 계획이다. 또 5월 단체와 특전사동지회가 함께 김치를 담그고 이웃에게 나누는 등 다양한 사업을 통해 대화합을 이룰 예정이다. 이제는 특전사동지회와 5·18 진상을 규명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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