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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수소경제 육성’ 로드맵, 용두사미 전철 우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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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3호 15면

김경식의 실전 ESG

‘수소 경제 이행 계획’에 따르면 수소충전소 2000기 이상을 설치한다 했지만 제자리 걸음이다. 사진은 서울 서소문청사 내 충전소. [뉴시스]

‘수소 경제 이행 계획’에 따르면 수소충전소 2000기 이상을 설치한다 했지만 제자리 걸음이다. 사진은 서울 서소문청사 내 충전소. [뉴시스]

지난해 11월 9일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의 제5차 수소경제위원회가 열렸다. 익히 전 정부의 에너지정책과의 차별화가 주목을 받았던 터라, 새정부 출범 후 수소경제위원회가 지속된 것에 이목이 쏠렸다. 물론 2020년 제정된 ‘수소경제 육성 및 수소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수소법)’에 따라 개최했지만, 새정부 나름 의욕을 내비치고자 ‘청정수소 공급망 구축 및 세계 1등 수소산업 육성’이라는 국정과제를 제시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한 정책 방향으로 규모·범위의 성장, 인프라·제도의 성장, 산업·기술의 성장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런 의욕적인 계획을 볼 때마다 정권 교체와 관계없이 떠오르는 건 에너지정책의 일관성이다. 기억은 늘 ‘용두사미의 정책’으로 새겨졌다. 정부는 2004년을 수소연료전지,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의 원년(元年)으로 선포했다. 2010년엔 5년 안에 세계 5대 신재생에너지 강국으로의 도약을 선포하고, 2030년까지 국가 단위의 스마트그리드 구축을 완료하겠다고 발표했다. 이같은 거창한 선포의 현주소는 초라하기만 하다. 전력 생산 중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7%(2021년 기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꼴찌 수준인데다, 스마트그리드는 아직 한 도시도 아닌 1만1000세대의 시범사업에 그치고 있다. (중앙SUNDAY 2022년10월8일자 참조)

스마트그리드 시장 없어 추진도 못해

지난해 11월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첫 수소경제위원회가 열렸다. 이날 정부는 ‘세계 1등 수소산업육성’이라는 국정과제를 내걸었지만 움직임은 더디기만 하다.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첫 수소경제위원회가 열렸다. 이날 정부는 ‘세계 1등 수소산업육성’이라는 국정과제를 내걸었지만 움직임은 더디기만 하다. [연합뉴스]

불행하게도 현 수소정책도 이같은 전철을 밟고 있다. 2003년 8월, 정부는 대통령 주재 ‘차세대 성장동력 보고회’를 통해 수소연료전지를 10대 차세대 성장동력산업으로 선정했다. 당시 정부는 2012년까지 2차전지 확보 세계 1위, 수소연료전지 분야 세계시장 점유율 15% 달성을 목표로 정하고 전체 전력생산량 중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8.4%까지 늘리기로 했다. 이어 2년 뒤엔 ‘친환경 수소경제 구현을 위한 마스터플랜’을 통해 2013년까지 스택(연료전지를 여러 장 겹쳐 쌓아 놓은 묶음으로 여기에 수소를 주입하면 전기와 물이 생성된다), 운전장치, 수소탱크 등 모든 기술 국산화를 목표로 세웠다. 여기엔 수소연료전지 자동차를 2020년까지 200만대, 2030년까지 500만대, 2040년까지 자동차의 절반(54%)인 1250만대를 보급하겠단 목표도 포함돼 있다.

이로부터 15년이 지난 2019년 1월, 정부는 또 다시 ‘세계 최고 수준의 수소경제 선도국가’로 도약하는 걸 목표로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을 발표했다. 수소차 누적 생산량을 2018년 2000대에서 2040년 620만대(내수 290만대, 수출 330만대)로 확대하고, 수소차·연료전지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목표치로 내걸었다. 수소차 충전소도 2018년 14개에서 2022년 310개, 2040년 1200개소 설치한다고 발표했다. 연간 수소공급량도 2018년에는 탄소연료에서 추출하는 그레이수소 13만톤이지만, 2022년에는 수전해를 활용한 그린수소 47만톤, 2040년에는 해외생산 포함 그린수소 526만톤 공급을 목표로 했다.

탄소경제에서 수소경제로의 전환을 위한 정부의 노력은 진행 중이다. 세계 최초로 수소법을 제정했고(2020년 2월), 수소경제위원회를 출범시켜(2020년 7월) 정기적으로 점검도 하고 있다. 2021년 11월엔 ‘제1차 수소경제 이행 기본계획’을 발표했는데, 구체적 내용으론 수소 공급량을 2020년 22만톤에서 2030년 390만톤(그린수소 25만톤, 블루수소 75만톤 포함), 2050년 2790만톤으로 늘린다. 국내에서 500만톤(그린수소 300만톤, 블루수소 200만톤)을 생산하고 나머지 2290만톤은 해외에서 수입한다는 계획이다. 동시에 그린수소 생산단가도 2030년에 1㎏당 3500원, 2050년엔 2500원을 목표치로 설정했다. 현재 국내 그린수소 생산원가는 1㎏당 1만1895원(2020년 기준), 2026년에 생산량은 1000톤을 목표로 준비 중이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수소경제는 인류가 에너지를 사용하는 데 있어 단연코 궁극적 목표가 돼야 한다. 산업혁명을 계기로 시작된 탄소경제가 물질문명 발달과 함께 기후위기를 초래했다면, 이제는 수소경제가 물질문명을 유지해가면서 기후위기를 치유할 유일한 수단이 됐다. 우주가 탄생할 때 태양, 바람, 물, 공기가 모든 생물체를 생장시켰듯, 수소가 병든 지구를 치유하고 생명체를 생장시킬 수 있다.

당장 우리에게 선결과제로 다가온 탄소중립과 이를 달성하기 위한 재생에너지도 궁극적으로는 수소경제로 가기 위한 중간 단계다. 그리고 수소경제 중에서도 그린수소 경제가 목표가 돼야 하는데, 화석연료에서 수소를 추출한 그레이수소나 여기서 발생하는 탄소를 포집해 만든 블루수소가 대안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재생에너지 활성화가 우선돼야 한다. 재생에너지가 있어야 전력 사용과 수전해를 이용한 그린수소 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론 산업경쟁력을 갖춘 수소경제를 달성해야 한다.

하지만 지난 20년간 추진된 정부의 재생에너지, 수소경제 정책은 믿기 어렵다. 재생에너지 정책은 제자리 걸음인데다, 수소경제 달성 목표는 늘 세계 최강을 외치면서도 실질적 기술 수준은 세계 평균에 한참 뒤쳐진 상태다. 그 결정적 이유는 그린수소를 생산할 재생에너지가 없기 때문이다. 재생에너지는 왜 없는가. 실질적으로 재생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시장이 없다. 당장 RE100(재생에너지로 전력 100% 생산)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시장이 형성되지 못하는 건(수요가 없는 건), 한국전력이 송배전망을 독점해 송배전 요금이 소비자 부담수준보다 비싸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현재 재생에너지를 PPA(전력시장 통하지 않고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거래)로 구매하면, 송배전 요금은 기존보다 거의 2배 가량 비싸진다. 다시 말해, 시장이 형성되려면 송배전 요금을 기존과 같게 해 전기 소비자의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시장 형성에 있어 미동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우선 그동안 비교적 성공적이었다고 자부하는 정부 관료들의 잘못된 믿음에서다. 그 믿음은 경제 성장시기, 전력 공급을 목말라하며 수요가 있던 시절에서 비롯된 것이다. 당시엔 늘 전기가 부족했다. 그런데 이 전기는 탄소에 관심없던 시절, 탄소를 배출하는 탄소전기였다. 그래서 가장 저렴한 에너지원으로 생산한 전기부터 공급하는 ‘경제급전’이 가능했다. 그런데 미세먼지가 이슈로 부상하면서, 환경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에너지원을 배제하자는 ‘환경급전’이 중요해졌다. 석탄발전을 줄이고 액화천연가스(LNG)발전을 늘렸다. 우리에겐 갑작스러웠을지라도, 선진국은 이미 재생에너지로 전력을 공급하는 ‘청정급전’으로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들은 탄소전기보다 청정전기가 더 싸지는 ‘그리드패리티’를 달성했다. 당연히 RE100을 주장하고,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도 앞장서 추진하고 있다. 자국 산업(기업)에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국제 투자자들이 삼성전자에게 한국형 RE100을 요구하지 않는 이유도 이와 같다. 자기들의 재생에너지 인증서(REC)를 구매하라는 것이다. REC 구매는 RE100 이행 수단 중 하나다. 이러한 제안이 오히려 삼성전자에겐 더 좋을 수 있다. 국내 REC보다 훨씬 저렴하기 때문이다. 이미 국내 대부분의 글로벌기업은 REC의 상당 부분을 해외 REC로 채우고 있다. 국내엔 REC가 거의 없는데다, 있다 해도 양도 적을 뿐더러 한국전력이 너무 비싸게 받고 있기 때문이다. 여건이 이렇게나 바뀌었는데도 정부는 과거의 전력 공급부족 시대의 정책을 마중물인마냥 부으면서, 여기에 펌프질을 하면 지하수가 콸콸 나올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가격 외에 어떠한 제품 차별화 요인도 없는데 ‘시장’도 없이 이 마중물로 ‘세계 최강’이 가능하다고 보는걸까.

신재생에너지 사용량 OECD 하위권

전력시장의 패러다임도 많이 바뀌었다. 재생에너지의 특징은 기상 조건으로 인한 변동성과 간헐성으로, 원료를 안정적으로 공급해 생산하는 그런 전기가 아니다. 그래서 재생에너지는 기후를 잘 예측해 전기 생산량을 잘 판단하고, 전기 소비자들의 소비 패턴을 분석해 들쭉날쭉한 전력 생산량과 소비 패턴을 연결하는 게 중요하다. 이같은 양방향의 정보(빅데이터)를 클라우드에 모아 인공지능(AI)을 통해 수급을 일치시켜주고, 그 사이 간극은 전기저장장치(ESS)로 조정하는 식이다. 소위, 4차산업과의 융합을 활용하는 것이다. 이를 가장 기본적으로 구현한 게 스마트그리드다. 하지만 시장이 없어 추진조차 못하고 있다.

이런 패러다임 변화에 적응하더라도, 산업융합을 통한 신성장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선 엄청난 투자가 필요하다. 이 투자를 누가 할지가 관건일텐데, 정부 예산이나 한전 자금으로는 불가능하다. 민간이 나서야 하는데, 그 방법이 결국 시장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모든 OECD 국가는 이렇게 해서 그리드패리티도 달성했고, 그린수소 기술도 앞서가고 있다.

마지막으로 정책의 일관성이 수반돼야 한다. 지금은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고 점검받는 제도(기구)가 없다. 2년마다 정책 담당자와 국회 상임위원회가 바뀐다. 독립된 관리 기관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이유다. 그런데 이번 정부에겐 희망을 접어야 할 것 같다. 새정부 인수위원회 보고서에 있던 ‘전력정책 독립규제기관 도입’ 약속이, 불과 9개월 만에 나온 제10차 전력산업기본계획에서 희미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만 이런 독립된 기관이 없다.

김경식 고철연구소장·ESG네트워크 대표 pentagram700@naver.com 한국 ESG학회 부회장(전 현대제철 기획실장). 오랜 기업 생활을 통해 ‘좋은 기업이 좋은 사회를 만든다’는 신념으로 ‘ESG경영’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사람 중심 ESG를 말한다(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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