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덩이 태어났다" 마을 전체 기뻐할때, 엄마는 못 웃은 사연 [4500km 폐교로드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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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경상남도 고성군 영현면사무소에 출생 신고가 접수됐다. 경기도에서 귀촌한 부부가 낳은 셋째 아이 나윤이였다. 860여 명이 사는 영현면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 것은 4년 만이다. 마을 사람들은 “복덩이가 태어났다”며 기뻐했다. 하지만 나윤이 엄마의 마음은 편치 않다. 면에서 유일한 초등학교가 사라질 처지여서다.

경남 고성군 영현면에 있는 영현초등학교. 김태윤 기자

경남 고성군 영현면에 있는 영현초등학교. 김태윤 기자

전교생 5명인 시골 학교…올해 분교장으로 격하 

지난해 11월 초 찾은 영현초 운동장에선 아이들 두 명이 트램펄린 위에서 놀고 있었다. 고즈넉한 마을에 있는 작고 예쁜 학교였다. 이 학교엔 나윤이의 첫째 오빠를 포함해 다섯 명이 다닌다. 지난해 기준으로 1학년 1명, 3학년 3명, 5학년 1명이다. 올해는 신입생 한 명이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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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현초는 수년 동안 폐교의 문턱에 서 있었다. 그나마 경상북도의 ‘1면(面) 1교(校) 원칙’은 폐교를 막아준 담장이었다. 하지만 버티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1928년 개교한 영현초는 올해 교명이 바뀐다. 인근 영오면에 있는 영오초 분교장으로 편입되기 때문이다.

경남 고성군 영현면에 있던 영현중학교. 2008년 폐교했다. 김태윤 기자

경남 고성군 영현면에 있던 영현중학교. 2008년 폐교했다. 김태윤 기자

고영정 영현초 교장은 “모두가 간절히 존속을 원했지만 더는 학생이 유입될 가능성이 작다는 교육지원청의 판단에 따라 결국 분교장으로 개편됐다”고 말했다. 그는 “마을 주민과 학부모, 동문회가 학교를 살리기 위해 장학회를 만드는 등 온갖 노력을 다했는데 안타깝다”고 했다. 영현초 앞에서 만난 한 주민 역시 “영현중학교(당시 영천중 영현분교)를 보면서 초등학교라도 유지해야 한다고 마을 사람들이 뜻을 모았는데 마음이 아프다”고 전했다.

폐교한 영현중 내부. 김태윤 기자

폐교한 영현중 내부. 김태윤 기자

“단 한 명이라도 다닌다면 학교 존속해야”

영현초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인 영현중은 2008년 폐교했다. 한때 곤충 체험장으로 운영됐지만, 지금은 폐가((廢家)나 다름없다. 운동장은 잡풀로 무성하고, 유리창은 깨어져 있고, 교실 안에는 버려진 집기가 가득했다. 대낮인데도 혼자 들어가기 꺼려질 정도였다. 고 교장은 “마을 주민들은 수년 내에 우리 학교도 영현중처럼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며 “지역 특성상 젊은 층 유입이 어렵지만, 단 한 명의 학생이라도 있다며 학교는 존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폐교는 지역 일자리와도 연관이 있다. 현재 영현초의 교직원은 17명이다. 교장을 포함한 교사 7명, 행정실 직원 5명, 그리고 통학버스 기사와 보호 탑승자, 조리사, 환경미화원, 배움터 지킴이 등이다. 한 주민은 “다행히 폐교는 막았지만, 나중에라도 문을 닫으면 전출 갈 수 있는 선생님들 외엔 모두 직업을 잃을 것”이라고 했다.

폐교한 영현중 내부 모습. 김태윤 기자

폐교한 영현중 내부 모습. 김태윤 기자

"학교 살리기도 중요하지만, 또래 친구 한 명 없어”

반면, 폐교를 원하는 주민도 만날 수 있었다. 영현면에서 만난 한 주민은 “학교가 살아남는 것도 중요하지만, 학교를 보내도 또래 친구 한 명이 없다”며 “위장 전입 없이는 인근 학교에 갈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도 중요한 교육인데 비슷한 처지에 있는 소규모 학교를 통합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토로했다. 학교를 살려야 한다는 명분과 더 좋은 교육 환경을 바라는 바람은 그렇게 작은 마을에서 위태롭게 공존하고 있었다.

한편, 고성교육지원청에 따르면 지금까지 고성군에서만 초‧중‧고 35곳이 폐교됐다. 현재 있는 학교 32곳(초 19, 중 8, 고 5)보다 많다. 또한 32곳 중 학생 수가 60명 이하인 곳은 14곳, 이 중 20명 이하는 4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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