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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론의 치명적 유혹...'합리성' 대신 '합리화' 좇는 사람들[BOOK]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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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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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의 망상

윌리엄 번스타인 지음
노윤기 옮김
포레스트북스

중세 이탈리아 남부에 ‘피오레의 요아킴’이란 수도원장이 있었다. 삼위일체 교리를 변형해 3단계 종말론을 주장한 것으로 유명하다. 오늘날에도 기독교 영향을 받은 종말론자들이 주장하는 천년왕국설의 원조 격이다. 가톨릭 교회는 요아킴의 종말론을 이단으로 낙인찍었지만 그 후예들은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신경과 의사이자 연구자인 저자는 비합리적 종말론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군중의 망상과 결합해 왔는지 소개한다. 저자는 “모든 서사 가운데 가장 매혹적인 것은 종말론”이라며 “그 이야기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치명적인 유혹을 던져준다”고 말한다.

군중의 망상은 시대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종말론은 종교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고 현대 정치와 경제에도 끊임없이 영향을 미친다. 세계 1위 경제대국이자 기독교인이 다수인 미국에서도,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 IS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보인다. 종말론에 대한 잘못된 신념은 살인이나 집단 자살 같은 극단적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왜 그럴까. 저자는 인간이 객관적 ‘합리성’보다 주관적 믿음이나 주장을 ‘합리화’하는 데 치중해온 때문이라고 본다. 그는 “인간은 자신의 믿음과 배치되면 자료와 수치를 제시해도 믿으려 하지 않고 기존의 신념을 버리려 하지도 않는다”고, "대개는 제시된 자료와 수치를 외면하고 그것이 여의치 않을 때도 자신의 신념을 더욱 강화하는 쪽으로 나아가며 심지어 대상을 자의적으로 왜곡하기까지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17세기 네덜란드 튤립 투기 같은 경제 분야의 투자 열풍도 종교적 광기와 통한다고 본다. 양쪽 모두 더 나은 삶을 열망하는 사람의 심리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 “그 삶을 누리는 곳이 현생(투자 열풍)이냐 다음 생(종교적 광기)이냐에 차이가 있을 뿐”이란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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