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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보다 양이 승부를 가른다” 미 해군이 중국을 두려워할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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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침몰한 미국의 전함 애리조나. 사진 셔터스톡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침몰한 미국의 전함 애리조나. 사진 셔터스톡

1941년 발발한 태평양 전쟁은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시작됐다. 이 공격으로 일본 해군은 전함 19척 침몰·손상, 항공기 347대 손실·손상, 사상자 3477명이라는 피해를 미국 해군에 입혔고, 여세를 몰아 한동안 승세를 탔다. 개전 초기 미군을 충격에 빠뜨렸던 전투기 제로센과 정밀한 자이로스코프(gyroscope)를 장착해 2차 대전 최고의 어뢰로 평가받는 93형(型) 어뢰는 군사 기술력에서조차 일본의 우위를 상징했다.

하지만 제대로 전쟁을 해보겠다고 마음먹은 미국은 비교불가 수준의 산업 생산력으로 엄청난 대규모 함대를 순식간에 구축했다. 전쟁 기간 동안 144척의 항모급 전함을 만들었다. 일본은 같은 기간 18척을 건조하는 데 그쳤고 이 규모의 차이가 결국 전쟁의 판도를 뒤집었다.

세계 해전사(史)가 주는 교훈은, 중국의 수적 우세가 미 해군의 패배를 초래할 것이라는 점이다.

미 해군전쟁대학의 미래전쟁학 교수 샘 탠그레디가 미 해군 〈인슈티튜트〉 저널 1월호에 게재된 논문 ‘전함이 많은 쪽이 이긴다(Bigger Fleets Win)’에서 한 말이다. 중국이 경제력을 바탕으로 꾸준히 군사력 증강을 이뤄왔지만 미국엔, 특히 전 세계 바다에서 전력을 투사하고 있는 미 해군엔 범접할 수 없다는 것이 그간의 ‘상식’이었다. 2013년 러시아의 군사 전문지 〈국방산업지(Military-Industrial Courier)〉는 ‘미국 항모전단 하나를 완전히 격멸하는데 중국 해군 전력의 40%가 희생될 것’이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미·중 해군의 양적 전력은 역전을 이뤘다고 미 정부는 평가한다. 지난해 11월 미 국방부의 ‘2022년 중국 군사력 보고서(China Military Power Report)’에 따르면, 중국 해군은 전함 수에서 2020년쯤 미 해군을 앞질렀고 현재 340척을 보유하고 있다. 2025년에는 400척, 2030년에는 440척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반면 지난해 7월 ‘미 해군 계획(Navigation Plan)’에서 공개된 미 해군 전함 수는 280여 척이었다. 2045년엔 350여 척을 보유할 예정이다. 현재도 미래에도 미국은 수적으로 중국을 따라잡지 못한다는 것이다.

미 해군은 양적 열세를 기술력으로 뒤집는다는 계획이다. 

150척 규모의 무인 전함과 수중 플랫폼(무인 잠수함 등)으로 첨단 하이브리드 함대를 운용하겠다고 ‘해군 계획’은 밝혔다. “세계는 단지 전함 수만이 아니라 테크놀로지, 작전 개념, 동맹국, 시스템의 통합이 승리를 결정짓는 새로운 전쟁 형태의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것이 미 해군의 생각이다.

탠그레디 교수의 논문은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그는 논문에서 고대 그리스·페르시아 전쟁부터 최근까지 28번의 해전을 검토했는데 3건을 제외한 25건의 해전에서 수적 우세를 가진 쪽이 승리했다. 수적으로 동등할 땐 전략·전술의 우월함과 지휘관의 통솔력 등이 승부를 갈랐다.

군사 기술력의 압도적 우세로 수적 열세를 딛고 승리한 세 경우는 ▶비잔틴 제국이 서기 1000년경까지 인화성 물질인 ‘그리스 화약(Greek fire)’을 독점해 바이킹·슬라브족·투르크·아랍을 물리쳤을 때 ▶포르투갈 해군이 인도양에서 오스만 제국과 인도의 동맹국들을 이긴 전쟁(1500~1580) ▶영국 등 서양 제국주의 국가들과 중국의 전쟁(1840~1900)이었다.

이런 결과에 대해 탠그레디는 “육전과 해전은 다르다. 바다에선 방어하거나 돌파하거나 우회해야 할 고정된 전선이 없다”며 “해군 전쟁에선 효과적으로 선제공격해 상대 전력을 소모하는 것이 유일한 목표”라고 말했다. 상대보다 2배 많은 전함을 가진 쪽이, 상대보다 2배 빨리 함포를 쏠 수 있지만 전함 수는 절반인 해군력을 이긴다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이 국지전 수준의 해전을 벌인다면 무대는 대만 근해를 비롯한 남중국해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사진 셔터스톡

미국과 중국이 국지전 수준의 해전을 벌인다면 무대는 대만 근해를 비롯한 남중국해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사진 셔터스톡

탠그레디는 “지난 30년간 미 해군에선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무기 정밀도, 정보통신 기술, 사이버 능력, 무기 기술 플랫폼 디자인 등에서 뛰어나 적은 수의 전함으로도 기술적으로 덜 발달한 상대를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팽배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5척으로 500척의 적 함대를 무력화할 수 있는 최첨단 무기는 없다”면서 “보다 두려운 것은 미국에 거의 버금가는 군사 기술력을 가진 500척 함대를 상대하게 되는 것이며, 중국은 인공지능의 군사적 응용에서는 리더”라고 말했다. 최첨단 무기체계가 실전에서 얼마나 제대로 작동할지 모른다는 점에서도 우려를 표했다. 얼마 전 중국이 실전 배치한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JL-3은 사거리 1만㎞ 이상으로 중국 앞바다에서 미국 본토를 직접 겨냥하는 위력을 가졌다.

미국과 중국이 국지전 수준의 해전을 벌인다면 무대는 대만 근해를 비롯한 남중국해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게 되면 중국은 해군 전력의 거의 전부를 전장에 투입시킬 수 있는 반면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미 해군은 그러기 어렵다. 각종 지대함 미사일도 중국 해안지역에 배치돼 미국 전함들을 기다리고 있다. 미 해군참모총장 마이클 길데이는 지난 13일 “미국은 중국 해군의 미사일을 미사일로 다 맞서지 못할 것”이라며 “한국·일본과의 군사협력은 필수”라고 말했다.

대양해군을 표방한 중국 해군이 미국의 우려대로 양적 해군력 증강과, 그에 더해 미국에 견줄 정도의 질적 성장을 이룩한다면 중국을 봉쇄하려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실패할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미국은 어떤 대전략을 세울까. 바이든처럼 한국과 일본, 호주, 나토 등과 안보 동맹 강화를 통해 중국에 맞설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트럼프처럼 중국 견제를 일본과 한국에 맡기고 영향력을 거둬들이려 할지도 모른다. 어떤 경우든 한국과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져야 할 군사적 부담은 커질 것이다.

차이나랩 이충형 특임기자(중국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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