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간 태어난 아이 없다"…봉화 '시한부 학교' 교장의 한숨 [4500km 폐교로드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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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소멸의 쓰나미가 학교를 덮쳤다. 다닐 학생이 없어 폐교되고, 학교가 문을 닫자 부모들은 남은 아이의 손을 잡고 마을을 떠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폐교는 지방 소멸의 결과이자 원인이고 상징이다. 중앙일보는 약 두 달간 4500km에 이르는 ‘폐교 로드(Road)’를 통해 인구 감소로 소멸 위기에 처한 전국 24개 지역의 폐교 실태를 직접 보고 들었다. 현장의 이야기를 10회에 걸쳐 전한다.

☞폐교 로드: 강원 홍천→영월→삼척→경북 봉화→영덕→의성→군위→경남 합천→산청→고성→남해→전남 여수→고흥→신안→함평→전북 고창→정읍→임실→진안→충남 논산→부여→청양→충북 보은→괴산

경북 봉화군 소천면에 있는 소천초등학교 [김태윤 기자]

경북 봉화군 소천면에 있는 소천초등학교 [김태윤 기자]

“앞으로 3~4년은 더 버틸 수 있겠지만, 그 후엔 어찌할지…. 그저 하늘만 바라볼 뿐입니다.”

지난해 11월 중순 경상북도 봉화군 소천면 현동리 소천초등학교에서 만난 김성욱 교장의 한숨은 깊었다. 그는 “지난 몇 년간 이 마을에서 태어난 아이가 한 명도 없다”며 “지방 소멸과 함께 학교도 소멸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천초 교장실에 붙은 아이들의 밝은 표정과 달리 학교의 앞날은 어둡다. 지난해 말 기준 소천초 전교생은 10명. 4학년 3명, 5학년 4명, 6학년 3명이다. 지난 3년간 입학생은 없었다. 다행히 올해는 1학년 신입생 한 명이 들어오지만, 졸업생 세 명이 떠나고 여덟 명만 남는다. 경상북도교육청의 학교 통폐합 기준(10명)에 못 미친다.

경북 봉화군에 있는 소천초 임기분교. 올해 신입생이 한 명도 없다. [김태윤 기자]

경북 봉화군에 있는 소천초 임기분교. 올해 신입생이 한 명도 없다. [김태윤 기자]

“이미 많은 학교가 폐교의 임계치 넘어” 

이 학교에 속한 세 곳의 분교 사정도 다를 게 없다. 소천초 임기분교 재학생은 3명, 두음분교는 4명이다. 올해 입학생은 임기분교 0명, 두음분교 2명이다. 백두대간 협곡열차(V-트레인) 분천역 인근에 있는 분천분교는 2021년 폐교됐다. 찾아가 보니 숙박시설로 바꾸는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김 교장은 “농사 외엔 변변한 일자리가 없는데 누가 아이들을 데리고 이 마을로 오겠느냐”며 “봉화의 많은 학교가 이미 폐교의 임계치를 넘었다”고 말했다.

2021년 폐교된 경북 봉화군 소천초 분천분교. 현재 숙박시설로 바꾸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김태윤 기자]

2021년 폐교된 경북 봉화군 소천초 분천분교. 현재 숙박시설로 바꾸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김태윤 기자]

봉화군에서만 47개 학교 문 닫아  

소천초가 속한 봉화군은 폐교가 왜 지방 소멸의 결과이자 원인인지를 잘 보여준다. 1960년대 말 봉화 인구는 12만 명을 넘으며 정점을 찍었다. 하지만 1970~80년대 산업화‧도시화에 따른 ‘이촌향도(移村向都)’와 저출산 현상에 따라 1980년 10만 명이 붕괴했고, 1990년대 중반에 5만 명 선이 무너졌다. 현재 봉화 인구는 3만 명을 갓 넘는다.

봉화에 폐교의 그림자가 드리운 것은 인구 감소가 본격화한 1990년대 초반이다. 석포면 작은 분교(1991년 석포초 광평분교)에서 시작된 폐교 도미노는 10개 읍‧면으로 퍼져나갔다. 90년대에만 봉화에서 20개 학교가 사라졌다.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는 21개 초등학교가 문을 닫았다. 고등학교 2곳, 중학교 4곳도 사라졌다. 봉화에서 만난 50대 초등학교 교사는 “학교가 하나둘씩 문을 닫으면 부모들은 자녀 교육과 일자리를 위해 산골에서 면 소재지로, 면에서 읍으로, 읍에서 인근 영주‧안동시로 이사했다”고 말했다.

봉화군 소천면에 있는 소천중학교은 전교생이 12명이다. 운동장을 함께 쓰던 소천고는 2018년 폐교했다. 김태윤 기자

봉화군 소천면에 있는 소천중학교은 전교생이 12명이다. 운동장을 함께 쓰던 소천고는 2018년 폐교했다. 김태윤 기자

이게 끝이 아니다. 현재 봉화엔 분교를 포함해 초등학교 16곳, 중학교 7곳, 고등학교 3곳이 있다. 이중 교육부가 정한 학교 통폐합 권고 기준(전교생 60명 이하)에 미치지 못하는 학교는 17곳이다. 특히 9곳은 전교생이 20명 이하다. 이들 학교는 수년 내에 학생 수가 10명 이하인 ‘시한부 학교’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대부분 지방에선 전교생이 10명 이하고 학부모 50~60% 이상이 동의하면 폐교 또는 통폐합을 추진한다. 더욱이 예비 초등학생이 다니는 봉화 내 유치원 16곳 중 13곳은 원아가 10명 이하다. 6곳은 원아가 5명도 채 되지 않는다.

리에서 면으로, 분교에서 본교로…폐교의 공식  

 ‘도미노 폐교’와 ‘시한부 학교’는 봉화만의 문제가 아니다. 봉화를 비롯해 인구 감소로 소멸 위험에 처한 지역 대부분이 비슷한 길을 걸어왔다. 지방엔 이른바 ‘폐교의 공식’이 있다. 학생이 모자라 복식학급(두 학년 이상을 한 교실에서 운용하는 학급)이 생기면 이미 폐교의 전조다. 이후 수년간 폐교냐, 통폐합이냐를 놓고 지방 교육청과 학교‧학부모가 갈등하다 결국 문을 닫는다. 일부 학교는 인근 학교의 분교장으로 편입되지만 오래 버티지 못한다. 분교가 문을 닫으면 시차를 두고 본교 역시 폐교의 압박을 받는다. 리에서 면으로, 면에서 읍으로, 분교에서 본교로, 초교에서 중‧고등학교로 폐교 도미노가 이어진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전교생 60명 이하 초·중·고, 전체 학교의 18.4%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폐교 학교는 3896곳이다. 전남이 839곳(21.5%)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은 경북(735곳‧18.9%), 경남(582곳‧14.9%), 강원(469곳‧12%), 전북(326곳‧8.4%), 충남(268곳‧6.9%), 충북(258곳‧6.6%) 순이다. 이 중 193곳은 최근 5년 새 사라졌는데, 88.6%(171곳)가 비수도권이었다. 반면, 서울에서 폐교됐거나 폐교 예정(2024년, 도봉고)인 학교는 단 4곳이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폐교의 문턱에 선 학교도 적지 않다. 중앙일보가 학교 알리미와 지방교육재정 알리미 등을 통해 분석한 결과 지난해 말 기준 전교생이 60명 이하인 초‧중‧고는 전국에 2173곳이다. 전체(1만1794곳) 학교의 18.4%에 해당한다. 전남이 369곳으로 가장 많고 경북이 351곳으로 뒤를 이었다. 다음은 전북(308곳), 강원(274곳), 경남(239곳), 충남(225곳), 충북(146곳) 순이다. 서울은 1곳에 불과했다.

지난 30년 동안 전국에서 4000곳에 가까운 학교가 문을 닫았다. 사진은 25년 전 폐교한 전북 진안군 주천면 구봉초 부지에 있는 녹슨 이승복 동상. 김태윤 기자.

지난 30년 동안 전국에서 4000곳에 가까운 학교가 문을 닫았다. 사진은 25년 전 폐교한 전북 진안군 주천면 구봉초 부지에 있는 녹슨 이승복 동상. 김태윤 기자.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시‧군‧구별로 보면, 전북 김제시와 익산시가 각각 34곳으로 가장 많았다. 다음은 경북 상주시(33곳), 전북 정읍시(34곳), 강원 홍천군(31곳), 전남 신안군(31곳), 전남 여수시(31곳), 전남 고흥군(28곳), 전북 고창군(28곳), 충남 보령시(28곳) 순이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전교생 10명 이하 학교 188곳 달해…5명 이하 87곳  

당장 폐교되거나 통폐합을 해도 이상할 게 없는 학생 수 5명 이하 학교는 87곳, 10명 이하 학교는 188곳에 달했다. 또한 전교생이 수도권의 과밀학급 기준(28명)에도 미치지 못하는 학교는 885곳이다. 학생 수가 10명 이하인 학교는 경북(42곳)과 전남(34곳), 강원(32곳), 전북(31곳)에 몰려 있었다. 기초단체 중에선 전북 군산시와 전남 여수시가 각각 7곳으로 가장 많았다.

김성욱 소천초 교장은 “소규모 학교의 개별 노력으론 폐교를 막을 길이 없다”며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움직여 지방과 작은 학교를 살릴 수 있는 정책과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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