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승진했으니 금리 깎아주세요” 대답 없는 메아리…이제 달라질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2면

인터넷 블로거 A씨는 최근 금리인하 요구권을 썼다가 거절당한 사연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다. 시중은행에서 받은 전세대출의 금리가 지난해 말 연 4% 수준이었는데 올해 들어 연 6%대로 오르자 A씨는 조금이라도 이자 부담을 덜고자 금리 인하를 은행에 요구했다. 하지만 은행은 “내부신용 평가 결과가 금리 인하로 이어질 만큼 개선되지 않았다”라며 수용할 수 없다는 답을 했다. 그는 “속상하다, 월급쟁이들은 (금리 인하권) 승인 나기 어렵단다”라고 썼는데, 한 누리꾼은 댓글에 “인하권 되는 사람 한 번도 못 본 것 같다”라고 적었다.

이르면 다음 달부터 은행이 고객의 대출금리 인하 요구를 수용해 얼마나 금리를 내렸는지를 보여주는 평균 금리 인하 폭을 공시해야 한다.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다. 금융 소비자의 부담을 낮추기 위해 도입됐지만, 수용률이 높지 않아 ‘무용지물’이란 평가를 받는 데 따른 것이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19일 금융감독원은 이런 내용으로 ‘은행업 감독업무 시행세칙’을 고치기로 했다고 밝혔다. 현재는 신청·수용 건수, 이자감면액, 수용률만 공개하고 있다. 이에 건수 위주의 ‘생색내기 공시’라는 지적이 나왔다. 또 은행들은 신용·담보·주택담보대출별로 수용률을 따로 공시해 정보 제공을 확대한다. 현재는 가계·기업 대출만 분류해 놓았다. 이외에 비대면 신청률도 추가로 공시된다.

금리인하 요구권은 신용 상태나 상환 능력이 개선된 대출 고객이 금융사에 대출금리를 내려 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다. 금리인하 요구가 가능한 구체적인 사유로는 직장의 변동, 연 소득의 변동, 직위 변동, 전문자격증 취득, 자산증가 또는 부채감소 등이 있다. 고객의 금리인하 요구권은 지난 2019년 6월 법제화했다. 특히 최근 대출 금리 급등으로 이자 부담이 커진 금융 소비자 입장에선 금리인하 요구권이 요긴한 제도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이 제도는 실효성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기대만큼 높지 않은 수용률 때문이다. 금리 인하를 신청해도 실제 이자율 조정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뜻이다.

현재 은행연합회에 공시된 지난해 1~6월 가계대출 기준 시중은행과 지방은행, 인터넷은행의 금리인하 요구권 수용률은 5.6~57.9%다. 신한은행(31.3%), 하나은행(32.3%) 등 9개 은행이 30%대 수용률을 보였다. 카카오뱅크(19%), 토스뱅크(17.8%)와 같은 인터넷은행의 수용률은 낮았다. “다른 은행에 비해 비대면 신청 비중이 높아 중복 신청이 많다”는 게 인터넷은행 업계의 설명이다.

은행이 왜 금리인하 신청을 거부했는지 소비자 입장에서 알기 어려운 것도 문제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지적한 부분이기도 하다. 이 원장은 지난 18일 국내 은행장들과 간담회를 갖고 “은행의 금리인하 수용 여부가 보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에 따라 투명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업무 프로세스를 적극적으로 개선해 주시길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금리인하 요구권이 여전히 여러 소비자에겐 낯선 제도라는 것도 개선해야 할 점으로 꼽힌다. 소비자리서치 전문기관 컨슈머인사이트가 지난해 8월 말~9월 초에 한 ‘금융 플랫폼 기획조사’에 따르면, 금리인하 요구권에 대해 20~69세 금융소비자 27.7%만 ‘알고 있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공시 강화 등과 같은 조치도 필요하지만, 결국 실제로 은행 등 금융기관이 행동에 나서도록 해야 금리인하 요구권 제도의 취지를 살릴 수 있다고 조언한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사무국장은 “금리인하 요구권은 결국 소비자가 먼저 요구하지 않으면 작동이 되지 않는 데, 은행 입장에서는 금리를 내리면 수익이 줄기 때문에 고객에게 이 제도를 적극적으로 홍보할 필요가 없다”라며 “소비자의 신용 평가가 상승할 경우 은행이 소비자에게 이를 안내하는 방안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