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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 연장’에 뿔난 佛 '검은 목요일' 시위…교통·교육 올스톱

중앙일보

입력

프랑스 8대 노조는 정부의 연금 개혁안 재추진에 반대하는 의미에서 19일(현지시간) 총파업에 돌입한다고 발표했다. 사진은 지난 2020년 초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정부의 연금 개혁에 반대하는 시위가 남부 마르세유에서 열린 모습. AP=연합뉴스

프랑스 8대 노조는 정부의 연금 개혁안 재추진에 반대하는 의미에서 19일(현지시간) 총파업에 돌입한다고 발표했다. 사진은 지난 2020년 초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정부의 연금 개혁에 반대하는 시위가 남부 마르세유에서 열린 모습. AP=연합뉴스

프랑스에서 ‘62세→64세 정년 연장’을 담은 정부 연금 개혁안에 반대하는 이른바 ‘검은 목요일’ 시위가 19일(현지시간) 수도 파리를 비롯한 프랑스 전역에서 예정돼 프랑스 정부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지난 2018년에 일어났던 대규모 반정부 시위인 ‘노란조끼 시위’가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가디언에 따르면 프랑스의 강성 좌파 노동총연맹(CGT)과 온건 성향 민주노동총연맹(CFDT) 등 8대 노조 단체는 12년 만에 연합 전선을 구축해 19일 총파업에 돌입한다. 필리페 마르티네스 CGT 위원장은 “정부의 연금 계획은 불공정하고 불필요하다”며 “오늘은 우리 집단 행동의 첫째 날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프랑스 고속철도 TGV는 노선 운행을 최대 3분의 1로 줄이고, 파리 근교 통근 열차 TER은 10개 노선 가운데 1개만 운행한다. 파리교통공사(RATP)도 파리의 16개 지하철 노선 가운데 2곳의 무인 노선만 운행할 계획이다. 국제 열차인 유로스타와 탈리스는 정상 운행하지만, 스위스 노선인 리리아는 운행이 제한된다. 수도권 제2공항인 파리 오를리 국제공항도 파업에 동참해 항공편 5대 중 1대가 취소됐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프랑스 수도 파리의 몽파르나스역에서 19일 오전(현지시간) 한 남성이 텅 빈 플랫폼을 걸어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프랑스 수도 파리의 몽파르나스역에서 19일 오전(현지시간) 한 남성이 텅 빈 플랫폼을 걸어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교통뿐 아니라 교육도 파행이 불가피해 보인다. 프랑스 교원노조는 파리의 초등학교 3곳 중 1곳, 프랑스 전체로는 70%의 초등 교사들이 파업에 동참할 것이라고 밝혔다. 버스·트럭·택배기사들과 은행·병원·정유 업계 노조도 파업 의사를 밝히는 등 프랑스 전체가 19일 하루 ‘올 스톱’ 하는 모양새다.

프랑스 경찰은 파리에선 5만~8만명, 전국적으로는 200여 곳에서 55만~75만명이 시위에 참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제럴드 다르마냉 프랑스 내무부 장관은 “1만명의 경찰ㆍ군사경찰이 파리에서 경계 태세를 취할 것"이라며 "현장의 경찰 중 3분의 1은 폭력 사태에 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클레망 본 프랑스 교통부 장관도 “지옥 같은 목요일”을 예고하며 “시민들에게 사무실 출근을 자제하고 재택근무를 권한다”고 발표했다. 앞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정부 1기 때인 지난 2018년에는 유류세 인상으로 촉발된 공공부문의 ‘노란조끼 시위’가 이듬해 연금 개혁 반대 시위로 이어지며, 개혁안 추진에 제동이 걸렸다.

지난해 집권 2기에 접어든 마크롱 대통령은 대선 주요 공약인 연금 개혁안을 강력히 밀어붙이고 있다. 엘리자베스 보른 총리는 지난 10일 연금 개혁안을 공개하며 노조의 반발 등을 의식해 “세대 간 연대를 살려야 한다”고 호소했다. “우리가 더 많이 일하면 미래의 퇴직자들이 더 나은 연금 혜택을 받을 수 있다”면서다.

엘리자베스 보른 프랑스 총리가 지난 10일(현지시간) 파리에서 열린 연금 개혁안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엘리자베스 보른 프랑스 총리가 지난 10일(현지시간) 파리에서 열린 연금 개혁안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프랑스의 연금 개혁안은 현재 62세인 정년을 올해 9월 1일부터 매년 3개월씩 연장해 2027년에는 63세, 2030년까지 64세로 늘린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연금을 삭감하지 않고 받을 수 있는 총 근무 기간(43년) 연장 시기도 2035년에서 2027년으로 앞당긴다. 대신 최소 연금 수령액을 최저임금의 75% 선(월 1015유로ㆍ약 135만원)에서 85%인 월 1200유로(약 160만원)로 올린다.

프랑스 정부는 오는 23일 국무회의에서 개혁안을 의결한 뒤, 이달 30일 하원 상임위원회를 거쳐 내달 6일 본회의에 상정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악화된 여론은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프랑스 여론 조사기관 이포프가 정부의 개혁안 발표 직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8%는 “정부 개편안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찬성한다는 응답은 32%에 그쳤다.

의회 상황도 유리하지만은 않다. 집권 르네상스당은 지난해 총선에서 과반(577석 중 289석)에 못 미치는 250석을 확보했다. 법안을 통과시키려면 중도 보수 성향 공화당(62석)이 대거 찬성해야 가능하다. 좌파 정당인 녹색당, 공산당, 불복하는 프랑스 등은 일제히 반대 의사를 나타냈다. 프랑스는 정부 입법안이 의회에서 막히더라도 일종의 ‘프리패스’ 조항을 헌법에 두고 있지만, 이 경우 정부 불신임 투표에 직면할 수 있다.

프랑스에서 연금 개혁 이슈는 매번 뜨거운 감자였다. 지난 1995년 자크 시라크 대통령 재임 시기 알랭 쥐페 총리가 공무원 연금 현실화를 위한 개혁을 시도했으나, 200만 명이 몇 주간 거리에서 반정부 시위를 벌인 끝에 개혁안은 철회됐다. 급기야 쥐페 총리는 사태의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지난 2010년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 때는 전국적인 반정부 집회가 한 달 간 벌어지는 홍역 끝에 간신히 정년을 60세에서 62세로 올리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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