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최대 명절, 춘제(春節, 음력 설)가 다가온다. 코로나 19 방역 완화로 움직임이 자유로워진 중국의 올해 설은 지난 3년과는 차원이 다른 ‘민족대이동’이 예상된다.
중국 명절에 빠질 수 없는 건 ‘음식’이다. 육·해·공을 동원해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상을 차린다. 그러나 한가득 차려진 음식을 싹싹 비워낼 순 없다. 음식을 조금은 남기는 게 중국 식사 예절 중 하나이기 때문. 이로써 이번 명절에도 대규모 음식물 쓰레기 배출이 예상되는 중국이다.
중국 일부 성(省)과 시(市)는 명절을 대비해 쓰레기 배출 가이드를 배포하는 등 관리 감독을 강화하는 모습이다. 중국 경제매체 신랑차이징(新浪財經)에 따르면 베이징은 설 연휴 기간 쓰레기 투기를 철저히 관리하고 수거 및 청소 빈도를 늘리는 등 쓰레기를 종합적으로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작 ‘낭비’를 방지하는 국가 차원의 관리는 없다. 쓰레기 분류 배출 방법만 공유할 뿐, 그 이상의 제한은 없었다. ‘먹방(먹는 방송)’까지 금지해가며 음식물 낭비 근절에 앞장서던 2020년의 중국은 어디 갔을까.
음식물 쓰레기는 연간 약 1조 달러(약 1250조 원)의 경제적 손실을 일으키는 것으로 추산된다. 유엔환경계획(UNEP)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중국은 가정에서만 약 9165만t의 음식물 쓰레기를 배출했다. 2위인 인도(6876만t)보다 33% 많은 양이다.
2020년 회의에서 중국과학원의 전문가 천샤오펑(陳劭鋒)은 중국의 연간 순 식량 손실이 세계 총량의 약 3분의 1을 차지한다고 밝혔다. 중국과학원(中國科學院)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의 식품 서비스 산업(레스토랑, 구내식당 등)의 폐기물은 연간 1700만~1800만t에 이르며, 이는 수천만 명의 사람을 먹일 수 있는 양이다.
‘세계 1위 음식물 쓰레기 배출국’ 오명을 쓴 중국은 지난 2020년 8월 ‘음식물 쓰레기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시진핑 국가 주석은 “음식 낭비를 단호히 막아야 한다”고 직접 언급하며 2025년까지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28가지 방안을 포함한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치솟는 식재료 가격, 코로나 19 재확산으로 인한 공급망 불안이 식량 위기로 번질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해당 캠페인이 중국의 국가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데 실질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증거는 없다. 이 캠페인은 사람들에게 음식 낭비를 중단하라고 독려했을 뿐, 구체적인 통제나 규제가 부족했다. 따라서 정부는 이듬해 4월, ‘반식품낭비법’이라는 새로운 정책을 꺼내며 본격적으로 규제에 들어갔다.
음식점에서 필요한 양을 초과 주문하는 것을 금지하는가 하면 음식을 낭비하는 식당을 신고하도록 하는 내용도 담았다. ‘먹방’ 등 음식 낭비 프로그램을 제작·유포할 경우 최고 10만 위안(약 1천890만 원)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기업들이 회의를 명목으로 호화로운 연회를 여는 것을 금지했고, 음식물 쓰레기를 남긴 학생에게 불이익을 주는 학교도 있었다.
중국프랜차이즈경영협회(CCFA)는 음식물 기부 행동을 통해 낭비 근절에 앞장섰다. 지난해 4월 CCFA는 소매기업의 유통기한 임박 식품 등 남은 음식물을 기부하는 것을 장려하겠다며, 이와 관련된 가이드와 표준화 경로를 구축하는 등 다양한 실무적 지원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올해도 음식물 낭비 방지를 위해 나섰지만 그 강도가 확실히 줄었다. 음식물 배출량을 줄이면 적립 쿠폰을 주고 추후 사은품으로 교체하도록 하는 등 지난해 벌금과 같은 ‘엄중한 조치’는 사라졌다.
지난 1월 17일 신화통신이 보도한 〈적립쿠폰에 사은품 교환도...'잔반 제로' 앞장서는 중국〉을 종합해보면, 현재 중국의 반식품낭비법은 다시 과거의 ‘캠페인’ 수준에 그치고 있다.
신화통신은 적립 쿠폰이나 포장 권장 등의 방식이 중국에선 ‘신선한 아이디어’로 통한다고 보도했다. 저장(浙江)성 사오싱(紹興)시는 2021년 '음식물 낭비 방지를 위한 행동 방안'을 제정해 전 시민이 음식 낭비를 줄이고 절약하는 습관을 기르도록 지도하고 있다. 사오싱시 요리협회의 한 관계자는 “현재 많은 식당이 고객을 상대로 음식 절약 의식을 높이기 위한 여러 조처를 하고 있긴 하지만 시민 모두가 음식 절약에 대한 인식을 가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밝혔다. 여전히 중국은 절약 습관을 만들고 의식을 높이는 ‘인식 제고’ 수준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먹방’ 영상도 일파만파 퍼지고 있다. 중국 검색 포털 바이두(百度)에 ‘吃播’(먹는 방송)를 검색하면 엄청난 양의 영상이 노출된다. 이는 지난 2021년, 먹방 영상을 유통하는 이들에 벌금형이라는 엄벌을 뒀던 모습과 대비되는 상황이다.
한편 네이처(Nature) 연구에 따르면 중국에서 발생하는 음식물 쓰레기의 절반은 수확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처음 처리되고 저장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소비자뿐만 아니라 공급업체 간의 관행을 개선하려는 노력도 그만큼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여전히 소비자에만 책임을 전가하는 식의 규제만 행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식품 손실 방지를 위한 범국민 캠페인도 옳지만, 각 성 및 시의 지자체별 맞춤형 시책 마련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또 현재 시행 중인 규제는 식품 폐기물 발생 자체를 억제하기보다는 사후 처리에 무게를 두고 있어 식품 생산과 유통, 소비 등 전 단계에서 식품 손실을 예방하는 방향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의 식량안보 위기설은 매년 대두한다. 최근 몇 년간 아프리카돼지열병, 코로나바이러스, 홍수, 가뭄 등으로 인한 자연재해는 식량 안보에 대한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켰다. 연구에 따르면 중국은 콩, 옥수수, 식용유와 같은 작물의 경우 20년 동안 현지 생산만을 통해선 국내 수요를 맞출 수 없다. 급속한 도시화와 기후변화로 인해 중국의 경작지는 과거에 비해 제한됐다. 중국이 비좁은 경작지에서 자급자족을 이뤄내는 건 기적 수준이라고 분석한다 (S&P Glocal).
지난해 12월 열린 중앙농촌작업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주석은 다시 한번 식량 안보를 보호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자기 힘에 의지해 밥그릇을 든든히 받쳐 들어야 한다”며 식량 안보 및 자급 역량 강화의 중요성에 주목했다. 그러나 음식물 배출에 대해선 별다른 언급이 없었다. ‘음식물 낭비 금지법’도 식량 안보 강화의 연장선이다. 14억 인민들의 밥그릇을 하나하나 감시하기엔 아직 역부족인 모양새다.
김은수 차이나랩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