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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감정싸움' 쉼없는데..."회계사, 권리금 감정 가능" 첫 판결

중앙일보

입력

호프집의 권리금을 감정했다 감정평가사법 위반으로 기소된 공인회계사에 대해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사진. 연합뉴스

호프집의 권리금을 감정했다 감정평가사법 위반으로 기소된 공인회계사에 대해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사진. 연합뉴스

감정평가사뿐 아니라 공인회계사도 권리금 감정을 할 수 있다는 첫 판결이 나왔다. 법원이 공인회계사인 감정인 A씨에게 권리금 감정을 맡기자 감정평가사협회가 A씨를 고발한 사건에서다. 서울서부지법 형사10단독 윤양지 판사는 감정평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12일 무죄를 선고했다.

2018년 말 인천지법 감정인으로 선정된 A씨는 법원이 의뢰하는 영업손실 감정, 비상장주식 가치평가 등의 감정 업무를 했다. 2019년에는 명도소송이 진행 중인 건물에 있는 호프집의 권리금 감정을 하라는 의뢰를 받았고, 평소 권리금 감정 업무에 익숙했던 A씨는 감정서를 만들어 올렸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감정평가사협회는 A씨가 감정평가사법을 위반했다고 보고 고발했다. 감정평가사가 아닌데 감정평가를 했다는 것이다. 2020년 12월 검찰이 불기소 처분을 내리자 협회는 항고해 기소를 끌어냈고, 결국 2021년 9월 A씨에게 벌금 100만원의 약식명령이 내려졌다.

A씨는 이에 불복해 정식 재판을 청구했고, 1심 재판부는 A씨가 감정평가법을 어긴 점이 없다고 봤다. “권리금 감정 행위가 감정평가법에서 정한 감정평가업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감정평가법 2조 3호는 감정평가업에 대해 ‘타인의 의뢰에 따라 일정한 보수를 받고 토지 등의 감정평가를 업으로 행하는 것’으로 정하고 있다. 이때 ‘토지 등’이란 ‘토지 및 그 정착물, 동산,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재산과 이들에 관한 소유권 외의 권리’다.

재판부는 임대차보호법상 권리금을 ‘토지 등’으로는 해석할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권리금은 영업 ‘노하우’나 거래처 등 유·무형의 재산적 가치를 이용하는 대가로 지급되기 때문에 감정평가 대상이 되는 ‘토지 등’과는 성격이 다르다고 판단했다. 국토교통부 고시로 마련된 감정평가 실무기준에 권리금 감정 관련 내용이 등장하긴 하지만, 처벌 규정이 마련된 감정평가법에 바로 적용하기는 무리가 있다고 봤다. 형벌법규의 해석은 엄격해야 할 뿐 아니라, 대법원 판례에 따라 문언의 의미를 피고인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해석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법원 촉탁으로 권리금 감정을 했으니 정당행위”라는 A씨 측 주장도 받아들였다. 2021년 대법원은 “감정인이나 감정 촉탁을 받은 사람의 자격을 감정평가사로 제한하지 않더라도 감정 결과에 대해 당사자에게 의견을 진술할 기회를 주는 등의 절차를 거쳐 감정의 전문성과 공정성,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를 근거로 “설령 권리금 감정이 감정평가사에게만 허락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법령에 근거해 법원의 감정 촉탁을 받은 사람이 감정했다면 형법상 정당행위에 해당해 위법성이 없어진다”고 했다.

서울 마포구 공덕동 서울서부지방법원. 뉴스1

서울 마포구 공덕동 서울서부지방법원. 뉴스1

공인회계사협회는“고발당한 회계사 입장에서는 법원 감정인으로서 영원히 활동할 수 없게 되는지, 그리고 회계사 전체적으로는 회계사도 권리금 감정을 할 수 있는지를 사법부가 최초로 판결한 사건”이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A씨를 대리한 조상규 변호사(법무법인 주원)는 “권리금 감정은 감평사만 하라고 법에 적어놓지 않는 이상 절대 처벌할 수 없다고 본 판결”이라며 “권리금 관련 분쟁이 많아진 만큼 앞으로 법인 회계 처리 업무와 권리금 감정 업무가 결합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A씨 사건 외에도 공인회계사와 감정평가사 사이 업무영역을 두고 법정에서 다투는 일은 끊이지 않고 있다. 기업의 부동산 자산 감정 평가를 두고 두 직역 사이 갈등이 불거지자, 2015년 대법원은 “공인회계사는 회계 처리 목적이라도 토지 자산 감정 평가를 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당시 대법원은 “타인의 의뢰를 받아 토지에 대한 감정평가를 행하는 것은 회계서류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나 경험과는 관계가 없다”며 감정평가사 손을 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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