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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시장 존중, 약자 보호하는 부동산 정책 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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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손재영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

손재영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

지난해 뉴욕타임스(NYT) 보도에서 유난히 많이 나온 단어가 ‘업엔드(upend)’였다. ‘뒤집어엎다’ ‘판을 깨다’라는 의미다. 코로나19 팬데믹과 우크라이나전쟁으로 혼란스러웠던 국제 금융시장에다 기후위기까지 떠올리면 이 단어가 언론에 거의 매일 나온 것도 이상할 게 없어 보인다.

한국 주택시장과 정부 정책을 영어로 표현한다면 ‘upend’란 단어를 여러 번 쓰게 될 것 같다. 2020~2021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주택 가격이 지난해 중반부터 하락하기 시작했다. 짓기만 하면 팔리고 사기만 하면 오르던 시장이 갑자기 뒤집어지면서 여러 경제 주체들의 고민이 깊어진다.

문 정부 과도한 규제로 집값 폭등
서민엔 ‘빌라왕 전세사기’ 후폭풍
‘시장 존중이 국민 존중’ 명심해야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이른바 ‘영끌’ 해서라도 ‘벼락 거지’ 신세를 피해 보려던 젊은이들이 고금리 시대에 이자 부담으로 힘들어한다. 사업장 몇 곳만 미분양이 생겨도 ‘흑자 도산’ 위험이 있는 건설업체나 자산운용사·금융기관들에 관한 흉흉한 소문이 나돈다. ‘빌라왕’들과 전세계약 했던 세입자 수천 명이 낭패를 당하는 현실이다.

뒤집어진 시장에서 정부의 행보도 빨라지고 있다. 정부는 서울 강남 3구와 용산구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 대해 규제지역을 해제하기로 했다. 조정대상지역이 풀리면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 등 세금 부담이 줄고,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이 완화되며, 재당첨 제한 등 청약 규제도 풀린다. 12억원으로 설정된 중도금 대출 보증 상한도 폐지되니 서울 둔촌주공아파트 등의 중도금 대출이 가능해진다.

분양주택 실거주 의무 기간도 없애고, 전매 제한 기간도 크게 줄인다. 재건축 안전진단에서 구조 안전성 비중을 크게 낮추고 주거환경 및 설비 노후도 가중치는 높인다. 당장 집이 무너질 상태가 아니더라도 층간소음, 주차공간 부족, 노후 설비 등으로 불편이 큰 경우 재건축이 가능해진다.

속속 발표되는 규제 완화의 범위와 숫자를 보면서도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지난 5년 문재인 정부에서 정말로 많은 규제를 첩첩 쌓았구나 싶어 새삼스레 놀란다. 그렇게 하고도 잡지 못했던 주택가격이 뭉텅이로 규제가 완화되는 와중에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다.

시장은 호황과 침체를 오가는 경기변동을 따라 움직인다. 이 사이클을 역전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현재 상황을 정확히 진단하기 어렵고, 적절한 정책수단을 찾기도 쉽지 않으며, 정책효과가 나타나기까지 시차도 있다. 문 정부 시절 부동산 경기를 역전시키려고 온갖 시도를 다 했지만 결국 실패한 원인은 이 때문이다.

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효과가 없는 데 그치지 않고 경기 진폭을 더 키웠다. 요즘 문제가 되는 소위 빌라왕들의 경우 누가 애초부터 전세 사기를 의도했고, 누가 무리한 갭투자를 했을 뿐인지 가려낼 필요가 있다. 후자의 경우라면 ‘임대차 3법’의 교란 효과로 전세가 많이 올랐던 것, 임대사업자 제도를 갑자기 바꿔 세제 혜택을 배제한 것, 종부세를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늘린 것 등이 문제를 낳은 요인 중 일부다. 주택가격을 잡으려던 온갖 규제와 세제들이 결과적으로 서민 주거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국민을 상대로 한 거대한 ‘사회 실험’이었다고 본다면,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여러 교훈을 얻었다. 무엇보다 정부가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갖고 주택시장에 개입해도 단기적으로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는 매우 어렵다는 사실이다. 주택 2000만 가구와 그만한 숫자의 소비자가 참여하는 거대한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세부적으로 보면 세금으로 주택가격을 안정시키는 것도 불가능하며, 복잡하게 연결된 시장의 일부만 ‘핀셋 규제’한다는 것도 어불성설이고, 소수의 투기를 억제해도 시장은 안정되지 않는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정책 효과가 한정적일 수밖에 없음을 인식한다면 정책 담당자들은 좀 더 겸허해질 것이다. 개개인의 희망·계획·능력은 모두 시장의 움직임에 반영된다. 시장을 존중하는 것이 곧 국민을 존중하는 것이다. 시장에 대한 불필요한 간섭을 자제하면서 경제적 약자를 위한 주거 안전망을 갖추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윤석렬 정부가 이런 마음가짐이라면 성공적인 부동산 정책을 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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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재영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