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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기자 통신조회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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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김방현 기자 중앙일보 내셔널부장
김방현 내셔널부장

김방현 내셔널부장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난 2일 경남 양산 사저에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만나 “어렵게 이룬 민주주의가 절대 후퇴해서는 안 된다”는 데 공감했다고 한다. 여기서 ‘어렵게 이룬 민주주의’란 문구에 눈길이 확 쏠렸다. 문재인 정권 5년간 “민주주의가 후퇴해 어려웠다”는 국민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간 수많은 ‘후퇴’ 사례 가운데는 직접 체험한 것도 있다.

문 정권 말기인 2021년 12월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언론인 통신 조회를 한게 드러나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중앙일보 취재에 따르면 공수처는 그해 5월부터 11월까지 적어도 111명의 기자를 상대로 통신자료 210건을 조회했다. 이는 사찰 논란으로 비화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공수처 통신조회에 대해 피켓을 들고 규탄하고 있다. [뉴스1]

국민의힘 의원들이 공수처 통신조회에 대해 피켓을 들고 규탄하고 있다. [뉴스1]

당시 “혹시 나 같은 시골(로컬) 기자까지 조회했겠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대전을 근거지로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확인을 해봐야겠다”며 ‘통신자료 제공 사실’ 열람을 요청했다. 해당 통신사가 며칠 뒤 e메일로 전한 결과는 뜻밖이었다. 2021년 3월부터 11월까지 3개 기관이 4차례 통신 조회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전지방검찰청이 두 차례, 세종특별자치시경찰청과 경찰청(본청)이 각각 한 차례씩이었다. ‘다행히’ 공수처는 없었다. 이들 기관이 통신 조회 사실을 미리 알려준 적은 없었다. 제공 자료는 고객명·주민등록번호·이동전화번호·주소·가입일·해지일 등이었다. 조회요청 사유는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 제3항에 따른 법원/수사기관 등의 재판, 수사( 「조세범 처벌법」 제10조 제1항·제3항·제10항의 범죄 중 전화, 인터넷 등을 이용한 범칙사건의 조사를 포함), 형의 집행 또는 국가 안전보장에 대한 위해를 방지하기 위한 정보 수집’이었다.

이것만 봐서는 왜 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해당 기관에 전화를 걸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다”고 했다. 통화한 대전지방검찰청 한 부장검사는 “정보공개 청구를 해보면 어떠냐”고 안내했다. 대전지검에 정보공개 청구를 했지만, 답변은 마찬가지였다. “수사 중인 사건과 관련해 사건 관련 통화 상대방 인적사항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통신자료 정보를 확인한 것이며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지금까지 더는 밝혀진 건 없다. 어렵게 이룬 민주주의 국가에서 몰래 뒷조사를 당한 기분만 남았다.

기자들은 통신 조회로 그쳤지만, 대학에 대자보를 붙였다가 기소된 청년도 있었다. 2019년 11월 20대 청년이 단국대 천안캠퍼스에 문재인 전 대통령 정책을 비판하는 대자보를 붙였다가 건조물 침입죄로 기소됐다. 이 청년은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 무죄 판결을 받았다. 문재인 정권 내내 집권 세력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민주주의’였다. 하지만 그 민주주의가 뭔지 말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 실체가 궁금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