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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문의 검은 돌 흰 돌] 일본·대만팀 가세, 판 커진 한국 바둑리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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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박치문 칼럼

박치문 칼럼

수담(手談)은 손으로 나누는 대화. 바둑의 별칭 중에선 가장 유명하다. 난가(爛柯)는 썩은 도끼자루. 역시 바둑의 별칭이다. 신선들의 바둑을 구경하다 도끼자루 썩는지 몰랐다는 나무꾼의 설화에서 나왔다.

KB국민은행 바둑리그가 8개 팀에서 12개 팀으로 대폭 늘어나며 난가리그와 수담리그의 양대리그 체제가 됐다. 신생팀은 울산고려아연, 원익, 일본기원, 보물섬정예, 4개 팀이다.

일본기원이란 이름이 한국 바둑리그의 한 팀으로 등장했다는 게 놀랍다. 최고의 선수들이 참가한 것은 아니고 신예 중심으로 꾸려졌다. 만만히 볼 상대는 아니다. 8명의 선수 중 주장 세키 고타로(22) 9단은 천원전 2년 연속 우승자, 히라타 도모야 7단(29)은 아함동산배 우승자, 사카이 유키(19) 3단은 신인왕.

현재 성적은 2전 2패다. 역시 일본바둑은 약하다는 소리가 나온다. 일본바둑의 화려했던 과거를 떠올리면 격세지감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바둑리그 해설자 유창혁 9단은 “일본 팀이 아주 약체는 아니다. 세키 고타로 등 주력이 다 출전한다면 꽤 위협적일 것이다”라고  말한다.

일본기원은 주력이 출전한 첫 대결에서 정관장천녹과 2대2대로 맞섰고 마지막 결승 재대결에서 졌다. 지난 일요일 셀트리온과의 대결에선 중하위권이 출전해 내리 3판을 졌으나 마지막 나선 막내 후쿠오카 고타로(18) 3단이 간신히 1승을 건져 영패를 면했다. 온라인 대국이지만 나이어린 후쿠오카의 표정이 하도 절절해서 방송해설자까지 일본 선수를 응원하는 기현상을 보이기도 했다.

보물섬정예라는 팀 명으로 출전한 대만 팀은 그야말로 대만 국가대표팀이라 할 만하다. 주장 쉬아오홍(22) 9단은 대만의 8관왕이고 국제무대에서도 인정받는 대만의 일인자. 라이쥔푸(21) 7단도 타이틀 한 개를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왕위안쥔(27), 린쥔옌(26) 9단, 그리고 천치루이(23) 7단까지 8명의 강자를 다 모았다. 대만의 유일한 세계대회 우승자 저우준쉰 9단은 감독을 맡았다.

보물섬정예는 현재 1승 2패. 첫 대결에서 승리해 기세를 올렸으나 다른 팀들이 경계심을 높이면서 2연패를 당했다. 쉬아오홍은 개인성적 2승 1패를 기록 중이다. 유창혁 9단은 “대만팀은 리그 중위권 실력”이라고 평가한다. 과거 잉창치 선생은 대만 바둑을 위해 잉창치배를 만드는 등 돈과 시간을 쏟아부었다. 한국 기사들이 친선대국을 위해 방문하면 그야말로 칙사 대접을 했다. 강자와의 실전에 굶주린 대만 기사들에겐 이번 바둑리그 참가가 좋은 기회가 될 것이고 성적도 나아질 가능성이 높다.

바둑리그는 각 팀 4명이 출전한다. 4판의 대국은 장고 바둑, 속기, 초속기가 있다. 제한시간 40분의 장고 바둑은 보통 2시간 반 걸린다. 속기는 1시간 반 정도, 단 1분이 주어지는 초속기도 1시간은 걸린다. 2대2가 되면 양 팀 에이스가 나서 결승전을 벌인다.

현재 치러진 15경기 중 6경기가 재대결을 벌였다. 지난 토요일(14일) Kixx와 바둑메카의정부의 대결도 2대2로 끝났다. 밤 11시가 넘은 시간, Kixx의 주장 신진서와 의정부팀의 주장 김지석이 재대결을 위해 마주 앉았고 이 대결은 결국 자정을 넘겼다.

승자는 신진서. 이 승리로 그는 ‘바둑리그 33연승’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이어갔다. 지난해 신진서는 85%의 기록으로 승률 1위에 올랐다. 무적의 상승 장군 신진서조차 10판 중 2판은 진다는 얘기다. 그런 점을 고려하면 33연승은 어마어마한 기록이다. 이 기록이 어디까지 갈지 지켜보는 것도 바둑리그의 재미다.

바둑리그 관전의 또 다른 재미는 역시 일본과 대만팀에 있다. 바둑리그는 매주 수·일요일 5일간 저녁 7시부터 바둑tv에서 펼쳐진다. 수많은 실전이 동시에 열린다. 일본과 중국의 젊은 기사들이 한국바둑리그를 통해 좀 더 실력이 향상된다면 세계바둑 무대도 좀 더 흥미진진해질 것이다.

박치문 바둑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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