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1860~1920)처럼 유해를 찾지 못한 순국선열의 위패를 배우자의 유골과 함께 묘에 안장할 수 있도록 국립묘지법 개정이 된다.
17일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이날 정부는 국무회의에서 유골이나 시신이 없는 순국선열의 위패를 배우자의 유골과 함께 국립묘지에 합장할 수 있는 근거를 담은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의결했다.
현재는 유골이나 시신이 없는 국립묘지 안장 대상자는 이름을 석판에 기록해 보관하거나(위패 봉안), 영정·위패를 배우자 유골과 함께 봉안시설에만 안치할 수 있다.
그러나 일제의 침탈에 항거하다가 순국한 애국지사 중엔 해외에서 눈을 감거나 일제의 방해·은폐로 유골·시신을 찾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유골·시신을 찾지 못한 독립유공자도 묘에 안장할 수 있게 유족의 선택권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국회에서 개정안이 통과하면 최재형 선생 같은 유골·시신이 찾지 못한 독립유공자도 배우자의 유골과 함께 국립묘지에 조성한 묘에 안장될 수 있다.
최재형 선생은 연해주로 건너가 러시아 군대의 군납 상인으로 쌓은 재산을 조국 독립과 시베리아 이주 동포를 위해 쓴 독립운동가다. 그는 의병단체 동의회를 조직했고,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처단을 지원했으며 한인 마을에 민족학교를 설립했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재무총장(장관)으로 선출됐고 같은 해 11월 블라디보스토크에 독립단을 조직해 무력 항쟁을 주도했다.
최 선생을 가장 위험한 항일 지도자로 분류해 제거하려고 혈안이던 일제는 1920년 4월 연해주를 침략해 최 선생을 총살하고 안중근 의사의 경우처럼 유해를 은닉했다.
1962년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고 1970년 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선생의 묘를 조성했다.
그러나 한국과 구 소련의 수교 이후 러시아에 생존한 최 선생의 후손의 문제제기로 안장된 시신이 최 선생이 아닌 다른 사람이고 후손을 자처한 '가짜 유족'이 보상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이런 우여곡절 때문에 최 선생의 묘지 자리는 지금도 현충원에 빈터로 남아 있다.
박민식 보훈처장은 "앞으로도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몸 바친 순국선열을 한 분도 소홀함 없이 예우하는 일류 보훈을 실현하고, 이를 통해 우리 국민이 순국선열의 뜻과 정신을 언제나 기억하고 계승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