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전북지사 관사, 전시관 변신...울산시장 관사터엔 행복주택 [공관 대수술, 그 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공관 대수술, 그 후

과거 대통령 숙소로 쓰던 공관이 2017년 ‘제주꿈바당어린이도서관’으로 변신했다. 최충일 기자

과거 대통령 숙소로 쓰던 공관이 2017년 ‘제주꿈바당어린이도서관’으로 변신했다. 최충일 기자

지난달 28일 오전 제주시 연동 ‘제주꿈바당어린이도서관’. 하늘색 큰 철문을 지나자 탁 트인 잔디밭이 펼쳐졌다. 지붕이 현무암 빛깔인 본관에 들어서자 ‘꿈자람책방’이 나왔다. 천장에 샹들리에가 달려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벽에는 대통령을 상징하는 봉황 장식이 붙어 있다. 2017년 10월 문을 연 이 도서관은 책 4만 권을 보유하고 있다. 이곳은 9년 전만 해도 굳게 닫혀 있었다.

도서관을 찾은 김보영씨가 딸 이서아 양과 함께 그림책을 보고 있다. 최충일 기자

도서관을 찾은 김보영씨가 딸 이서아 양과 함께 그림책을 보고 있다. 최충일 기자

1984년 12월 준공 당시 1만5025㎡ 부지에 본관·별관·관리실 등 3개 동(棟)이 들어섰다. 전두환·노태우·김영삼 대통령이 모두 11차례 사용해 ‘지방 청와대’로 불렸다. 1996년 8월 대통령 경호 시설에서 해제된 이후 2014년까지 제주지사 관사로 사용됐다. 이후 2014년 당선된 원희룡 지사는 이곳을 대통령 행정박물 전시실, 세미나실, 그림책방, 자기주도학습센터, 북카페 등을 갖춘 도서관으로 꾸몄다.

김진태 강원 지사가 쓰고 있는 단독주택형 관사. 박진호 기자

김진태 강원 지사가 쓰고 있는 단독주택형 관사. 박진호 기자

관사가 문화 공간으로 거듭나자 도민들이 몰렸다. 코로나19 사태 전인 2019년에만 17만3638명이 찾았다. 이날 딸 이서아(7)양과 함께 도서관을 찾은 김보영(41·제주시 연동)씨는 “관사를 도서관으로 바꾼 건 잘한 일”이라며 “딸아이가 그림책을 좋아해 자주 찾는다”고 했다.

전북지사 관사, 전시관 변신…울산시장 관사터엔 행복주택 

최근 종영한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속 재벌 집으로 등장하면서 관광 명소가 된 옛 부산시장 관사. 송봉근 기자

최근 종영한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속 재벌 집으로 등장하면서 관광 명소가 된 옛 부산시장 관사. 송봉근 기자

‘권위주의 시대 산물’이라는 지적을 받아온 광역자치단체장 관사가 속속 개방되고 있다. 지난해 7월 취임한 김관영 전북지사도 전주 한옥마을 내 관사를 전시·체험 공간으로 리모델링한 후 올해 하반기 개방하기로 했다. 전북지사 관사는 2층 단독주택(연면적 402㎡)이다. 김 지사 부부는 전북도청 인근 전세 아파트에 살고 있다.

옛 울산시장 관사는 2020년 울산시가 허물고 ‘행복주택’을 지었다. 관사가 있던 자리에 원룸·투룸 형태 행복주택 100가구, 공공어린이집, 도서관, 공영주차장을 만들었다.

옛 울산시장 관사를 허물고 지은 울산신정 행복주택. [사진 울산시]

옛 울산시장 관사를 허물고 지은 울산신정 행복주택. [사진 울산시]

부산시 수영구 남천동 옛 부산시장 관사(현 부산시 열린 행사장)는 관광 명소가 됐다. 최근 종영한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속 재벌 집으로 등장하면서다. 극 중에서 순양그룹 진양철(이성민 역) 회장이 사는 ‘정심재’는 부산시장 관사가 모델이다. 부산영상위원회에 따르면 부산시장 관사에서 촬영한 영화·드라마는 2021~2022년 4개다.

‘남쪽 청와대’로 불리던 부산시장 관사는 애초 대통령 별장이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 지시로 41억5700만원을 들여 1985년 2월 지었다. 부지(1만8015㎡)만 축구장 2.5개에 해당할 정도로 넓고, 나무 2만3000여 그루를 심었다. 부산시장 관사는 1995년 민선 시대 이후 당선된 시장이 줄곧 사용했다. 관사 유지·보수 비용만 연간 2억원가량 들어갔다. 지난해 7월 취임한 박형준 시장은 이 관사에 입주하지 않고 부산 집에서 출퇴근하고 있다. 박 시장은 67억9400만원을 들여 올해 말까지 관사 리모델링을 끝낸 뒤 내년 1월 강연·전시·공연 장소 등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으로 개방할 예정이다.

‘구시대 유물’이라는 지적을 받아온 관사를 상당수 지자체가 시민에게 돌려준 가운데 17개 시·도 중 대구·경북·강원 등 3곳은 여전히 사용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5월까지 게스트룸으로 운영한 옛 경남지사 관사 내부 전경. 안대훈 기자

지난해 5월까지 게스트룸으로 운영한 옛 경남지사 관사 내부 전경. 안대훈 기자

이들 3곳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공공요금 등 사용료까지 모두 지자체 예산으로 지원하던 관행과 달리 자치단체장이 관리비와 임대료 등을 부담하고 있어 과거 전통적 방식의 관사 운영과는 달라졌다는 평도 있다.

4일 대구시에 따르면 홍준표 대구시장은 대구시 남구 한 아파트를 지난해 6월 매입해 관사로 사용하고 있다. 전용면적 137.1㎡다. 대구시는 관사 매입비로 8억9600만원, 집수리 비용과 가구·집기 매입에 8900여만원을 사용했다. 다만 전기세 등 관리비는 홍 시장이 내고 있다. 대구시 관계자는 “호화 관사 개념이 아닌 숙소”라고 했다. 홍 시장은 지난해 7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공직자가 지방 근무 때 숙소를 제공해 주는 것은 호화 관사 문화와는 다른 것이다”며 “근무지를 옮길 때마다 집을 사고팔아야 한다면 누가 공직을 맡아 지방에 내려가려고 하겠냐”고 했다.

김진태 강원지사도 관사를 쓰고 있다. 김 지사가 쓰고 있는 관사는 춘천시 봉의동 단독주택형으로 건물 연면적은 414.8㎡다. 광역단체장 관사 중 규모가 가장 크다. 2021년 전기·가스·상하수도 요금 등 관리비로 470만원을 썼고, 지난해 6월까지 350만원 상당의 관리비를 도 예산으로 지원했다.

김 지사는 전기와 가스·상하수도 요금을 내고 있다. 테이블·의자 등 집기류 구매 비용 등 297만원은 도에서 지출했다. 김 지사는 “관사는 내 개인 것이 아니라 후임자에게 인수·인계를 해줘야 한다. 원래 취지에 맞게 사용할 생각이다”고 말했다.

관사 현황

관사 현황

이철우 경북지사는 지난해 6월 당선 직후 주택을 지어 나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집을 지을 땅을 구하지 못하자 대신 월세를 내고 관사에 거주하고 있다. 이 지사가 사는 곳은 경북도청 내 대외통상교류관이다. 당초 외빈이 사용하던 곳인데 비어 있어 이 지사가 혼자 살고 있다. 임차료 120만원과 관리비 등은 이 지사가 부담한다. 경북도 관계자는 “사실상 쓰지 않는 게스트하우스를 사용하고, 본인이 대부분의 금액을 부담하고 있어 관사 운영에 들어가는 비용이 없다”고 말했다.

관사 사용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요구도 나온다. 지난해 8월 대구 지역 언론·시민단체가 ‘1급 관사의 시설비 및 운영비 지출 상세내용’ 정보공개를 청구했지만, 대구시 측은 “관사 정보는 사생활 침해로 공개 거부 처분을 내렸다”고 했다.

전영평 대구대 도시행정학과 교수는 “자치단체장이 되려면 선거 때 해당 지역에 이사를 와서 주민등록을 하는데, 그럼 본인 집이 (최소 60일간) 그 지역에 있었다는 얘기다. 당선 이후에도 그 집에 계속 살면 되지 관사를 세금으로 새로 얻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육동일 충남대 자치행정학과 명예교수는 “관사 폐지는 추세”라며 “다만 중앙정부가 일률적으로 폐지하기보다 지방정부가 주민이 원하는 방식으로 새롭게 활용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공관·관사

국유재산법 시행령은 공무원 주거용 시설을 구분해 놓았다. 대통령은 관저, 국회의장·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국무총리 등 4부 요인과 행정 각부 장관 등 중앙행정기관장은 공관이다. 행정안전부의 ‘지방자치단체 공유재산 운영기준’에는 지방자치단체장 주거 시설이 관사라고 나온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