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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tlook] “한·미-한·일 따로 못가…민주주의 우방으로 일본 수용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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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박진 외교부 장관이 지난해 9월 22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에 참석해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왼쪽부터)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날 회담에서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에 대한 3국의 공조 방안이 논의됐다. [사진 외교부]

박진 외교부 장관이 지난해 9월 22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에 참석해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왼쪽부터)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날 회담에서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에 대한 3국의 공조 방안이 논의됐다. [사진 외교부]

일본 기시다 후미오 정부가 지난해 12월 안보전략서 개정을 통해 향후 5년 내에 방위비를 국내총생산(GDP)의 2%까지 올리고 적의 기지를 반격할 수 있는 군사 능력을 확보할 것임을 밝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13일 미·일 정상회담에서 일본의 군사 대국화를 환영했다.

미국은 오래전부터 일본이 세계 경제력 2~3위에 걸맞게 군사력을 증강하고 동북아 안보에 더 적극적인 역할을 맡아주기를 원했다. 미국은 아직 세계 최강의 경제·군사 대국이지만 미국에 도전하는 중국과의 상대적 권력 격차는 줄어들었다. 2000년 중국의 명목 GDP는 미국의 12%였는데 2020년에는 70%까지 추격했다. 대외적 도전은 거세어지는데 미국의 경제적 부담 능력은 줄자 미국은 동맹들에 부담을 나눠 지자고 요구해 왔다. 나토 동맹국 중 독일이 이에 따랐고, 이제 일본도 방위비를 배가하기로 했다.

일본은 그동안 평화헌법 개정과 군사적 정상국가화에 소극적이었다. 아베 신조 전 총리가 개헌과 군사국가화를 추진했지만 여론은 크게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 정계와 여론 동향이 지난해 일어난 세 가지 사건으로 크게 변하고 있다.

첫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다. 이는 중국도 비슷한 방식으로 대만을 불시에 공격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일본인은 중국이 대만을 무력 통일하면 대만에 근접한 동중국해의 일본 영토가 위협받고, 일본의 무역 수송로와 반도체 공급원이 중국 통제에 들어가게 될까 우려한다. 이 때문에 일본은 요즈음 미국·대만과의 3자 연대를 강화하고 있다.

둘째, 대만해협에서의 안보 위기 고조 국면이다. 낸시 펠로시 전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직후 중국은 지난해 8월 대만 주위 6개 해역에서 군사훈련을 했다. 그 훈련 중 중국의 미사일 다섯 발이 일본의 배타적경제수역에 떨어졌다. 군사 전문가들은 대만에서 군사적 상황이 전개될 때 일본이 개입하면 중국의 군사적 타깃이 될 수 있다는 걸 경고하는 메시지로 해석한다.

셋째, 일본에 더 다급한 위협은 북한이다. 북한은 지난해 수십 차례 미사일 발사를 감행했다. 지난해 10월에는 북한 미사일이 일본 영공을 통과했고 11월에 발사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은 홋카이도 서쪽 일본의 배타적경제수역에 떨어졌다. 일본의 안보전략서는 “(북한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심각하고 급박한 일본 국가안보에의 위협”을 야기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은 이러한 상황 변화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중국의 상대적 권력 상승, 중·러의 미국 주도 자유주의 질서에 대한 도전, 대만 위기, 북한 위협, 이에 대응한 미·일 동맹 강화와 일본의 군사력 증강이 꼬리를 무는, 거대한 국제 권력 정치 다이내믹이 전개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일본의 ‘군국주의화’ 가능성이라는 한국인의 우려는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미·일 정책 결정자들은 일본의 방향 전환이 한국에 득이라고 말한다. 한국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원하고, 북한 위협에 직면하고 있으며, 대만해협의 평화·안정이 중요하지 않냐는 것이다. 한국은 어떤 전략적 입장을 설정해야 할까?

첫째, 이러한 상황 변화를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것이다. 일본을 19세기 제국주의 국가나 1930년대 군국주의 국가가 아니라, 21세기 자유주의 질서 수호를 위해 노력하는 민주주의 우방 국가로 받아들이고 협력하는 것이다. 국민 감정상 쉽지 않은 용기가 필요한 선택이다. 그러한 선택을 할 경우 한·미 동맹과 한·미·일 3자 협력을 강화해 북한 위협에 대처하고, 미국·유럽·일본이 주도하는 자유주의 국제질서 속에서 우리의 경제적 이익, 특히 공급망 문제 해소와 기술력 강화를 얻어낼 수 있다.

둘째, 일본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정책을 견지하는 것이다. 일본이 과거사 문제에 대해 충분히 사과하지 않고 있기에 군국주의화가 우려돼 일본과 협력할 수 없고 군사력 증강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국민 정서에 부합하는 선택일지 모른다. 그 경우 한·미 동맹은 삐걱거리고 북한의 안보 위협에 대한 한·미·일 공조 시스템도 약화하며, 한국은 국제 외교 무대에서 애매모호한 위치로 밀려날 것이다. 이전 정부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폐기를 거론했을 때 보았듯 한·일 관계와 한·미 관계는 따로 놀지 않는다.

셋째, 한·미 동맹이나 한·일 관계에 등을 돌리고 친중국으로 돌아서는 것이다. 그 경우 한국은 서방 세계와 함께함으로써 거둬왔던 혜택들을 서서히 포기해야 할 것이다. 미·중 대결 속 한국은 안보·경제 모두에서 미·중 간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중국을 선택하면 중국 주도의 위계적, 권위주의적 동아시아 국제질서에 편입하게 된다. 그 경우 한국은 서방과 멀어지고, 외교적 고립 속에서 핵을 가진 북한을 한반도의 대표 주자로 모셔야 할 것이다.

국제 정세를 정파적으로 해석하고 감성적으로 대응할 경우 감당하지 못할 후과가 따른다. 세상이 난세에 접어들고 있을 때는 특히 그렇다. 냉철한 분석과 현명한 판단이 절실한 때다.

윤영관

윤영관

☞윤영관=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 외교통상부 장관 역임. 미래전략연구원과 한반도평화연구원을 설립·운영했다. 저서는 『전환기 국제정치경제와 한국』 『북핵문제와 한반도 평화정착』 『통일한국의 정치제도』 『외교의 시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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