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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간소음에 갇힌 청춘들, 그래도 웃어야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동덕여대공연예술센터에서 뮤지컬 ‘청춘소음’ 프레스콜이 열렸다. [연합뉴스]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동덕여대공연예술센터에서 뮤지컬 ‘청춘소음’ 프레스콜이 열렸다. [연합뉴스]

여행 작가 오영원은 가보지도 않은 베네치아 여행기를 온라인에 연재하며 현지 민박집을 홍보해 생계를 꾸리는 ‘랜선 작가’다. 나날이 늘어나는 구독자 수에 거짓말하고 있다는 양심의 가책이 무뎌질 때쯤 오씨가 사는 오래된 빌라 덕용맨션 3층에 편의점·복권방·카페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취준생 한아름이 이사 온다.

“호캉스 가자”는 친구들의 제안에 월세·전기세·수도세·통신비를 떠올리며 “자격증 공부 때문에 어렵다”고 짐짓 지어낸 말로 거절하는 그는 오영원의 애독자다.

지난 1일 서울 대학로 동덕여대 공연예술센터에서 개막한 뮤지컬 ‘청춘소음’은 청년 취업난과 주거난 등 사회 문제를 유머러스하게 풀어낸 작품이다. 덕용맨션에는 가짜 여행작가, 취준생, 공장 노동자가 15㎝ 두께의 얇은 벽을 맞대고 살아간다. 처음엔 서로를 ‘소음 유발자’로만 여기고 미워하지만 거짓 여행기에 민박집을 끼워 팔아야 하고(영원), 하루 종일 아르바이트를 하며 진상 고객을 상대해야 하는(아름) 서로의 삶을 엿본 뒤 조금씩 마음을 열어간다.

표면적으로는 윗집 취준생과 아랫집 여행작가가 층간 소음으로 겪는 갈등을 이야기하지만, 극본을 쓴 변효진 작가는 “청춘들이 겪어내야 하는 마음 속의 소음을 표현하고 싶었다”며 중의적인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가보지도 않은 여행지 후기를 거짓으로 지어내 돈을 벌고, 아르바이트를 3개나 하면서 전세 대출 승인이 떨어지지 않아 전전긍긍하는 청춘의 우울한 자화상을 그리고 싶었다는 뜻일 터다.

다소 무겁게 느껴질 수 있는 주제임에도 극은 시종일관 명랑한 분위기로 흘러간다. MR 위주인 대학로 뮤지컬 중에서 드물게 라이브밴드가 음악을 실연하고, 다양한 소품을 활용해 만들어내는 생활 소음은 섬세한 연출을 돋보이게 한다. 공장 노동자, 한아름의 전 남자친구, 정신과 의사, 가짜 여행리뷰를 주문하는 PD 등 일인 다역을 소화하는 ‘멀티맨’의 재기발랄한 활약도 웃음을 더한다.

우진하 연출은 개막에 앞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작품에 대해 “황당하고 갑작스러운 상황들이 벌어지면서 웃음을 유발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는 소극”이라며 “상황마다 웃음을 자아내며 함께 살아가는 것의 중요성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실을 살아가는 소시민이자 청춘들이 이 과정을 어떻게 알아가고, 또 어떻게 관계를 맺어가는지를 중점적으로 봐달라”고 강조했다.

여행 한 번 가본 적 없는 ‘랜선 작가’ 역에는 김이담·정욱진·이휘종·김민성, ‘알바 만렙’ 취준생 역에는 랑연·김청아·임소윤 등 젊은 배우들이 포진했다. 랜선 작가 역의 김민성은 첫 주연 데뷔작임에도 안정적으로 극을 이끌어나가며 호연 중이다. 일인다역의 멀티맨, 김중길 역에는 김승용·이기현이 더블 캐스팅됐다.

16일 기준 관람 평점 9.4점(만점 10점)을 기록한 인터파크 관객 평 중엔 “공감할 수 있고 위로받을 수 있다” “유쾌하면서도 감동적이다” 등 호평이 주를 이룬다. 다만 청년 주거난·취업난을 다루는 극에 로맨스를 끼워 넣은 점이 아쉽다는 지적도 있다.

‘청춘소음’은 지난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신작 지원 사업인 공연예술창작산실 2022 올해의 신작 뮤지컬 부문에 선정됐다. 공연은 다음 달 2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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