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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세컷칼럼

무기를 갖지 않은 예언자는 자멸한다

중앙일보

입력

이하경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

힘든 개혁을 한꺼번에 추진하는 건 위험하다. 천지사방에서 화살이 날아온다. 그런데도 윤석열 대통령은 노동·교육·연금 개혁을 동시에 시동 걸었다. 일제 강제징용 배상 문제 해결에도 승부수를 던졌다. 전임자들이 눈치만 보고 미뤄 둔 고난도 숙제다. 정권의 명운을 건 전방위 개혁에 성공하면 이 나라는 진정한 선진국이 될 것이다. 개혁이 ‘혁명’으로 명명(命名)될 수 있다.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처단을 다룬 소설 『하얼빈』을 쓴 김훈 작가와 마주했다. 그는 “몸이 가벼워야 혁명을 한다”고 했다. 과연 그럴까. 실제로 안중근은 “이토가 하얼빈에 오는데, 함께 가서 죽이자”고만 했다. 우덕순은 바로 동의했다. 어떤 대의명분도 토론하지 않았지만 거사는 오차 없는 현실이 됐다. 윤석열도 기득권 세력에 포획되지 않았기에 가벼운 몸으로 ‘혁명’을 향해 질주하는 것이 아닐까.

용감한 대통령의 제1 과제는 노동개혁이다. 일자리와 경제, 인간 존엄의 문제가 걸렸다. “똑같은 일을 하면서 월급을 차별하는 것은 현대 문명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이런 착취 구조를 바로잡는 것이 노동개혁”이라고 딱부러지게 정리했다. ‘연대를 통한 약자 보호’라는 존재 이유를  잊은 지 오래인 타락한 노동귀족과의 전쟁이 시작됐다.

윤 대통령 기득권 무관…개혁 올인
통합·입법이 무기, 야당 손잡아야
개혁 성공, 보복 악순환 단절 가능
실패한 예언자의 길 가면 안 된다

윤 대통령은 광주지검 검사 시절 기아차 노조 비리를 수사했다. “노조사무실이 검찰청보다 더 좋았다. 정규직은 편안하게 버튼만 누르고 어려운 일은 하청 노동자 차지였다. 지검장은 (인권·노동 변호사 출신인) 노무현 대통령을 의식해 벌벌 떨었다. 그런데  대통령이 ‘소신대로 하라’고 격려했다. 수사가 끝난 뒤에는 ‘너무 잘했다. 수사 검사 전원을 희망하는 근무지로 보내줘라’라며 격려했다.” 윤 대통령이 최근 몇몇 사람에게 털어놓은 일화다. 대우조선 노조를 돕다가 구속까지 됐던 노 전 대통령의 입장 전환은 국정 최종 책임자다웠다. 윤 대통령이 노동개혁을 결단하는 데 힘이 됐을 것이다. 대통령이 앞장서면서 노조 불법행위에 대한 경찰의 대응도 단호해졌다.

교육개혁에도 발동이 걸렸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6월 국무회의 도중 “교육부에서 지방 국립대에 사무국장을 보내서 총장이 눈치 보게 만드는 교육부가 정상입니까”라며 “사무국장 파견제도를 없애지 않으면 교육부를 없애겠다”고 호통쳤다. 교육부 고위직의 ‘꿀보직’ 27개가 사라졌다. 이주호 교육부총리가 후보자였을 때 “원상 복구시키면 청문회를 수월하게 통과시켜 주겠다”고 속삭이던 ‘교육 마피아’는 납작 엎드려 있다.

한·일 관계를 악화시킨 일제 강제징용 배상 문제도 정치적 리스크까지 감수하면서 현실적인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한덕수 총리는 “람 이매뉴얼 주일 미국대사가 찾아와서 기시다 총리를 포함한 일본 관계자 전원을 설득하겠다고 약속했다”고 필자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 어떤 개혁도 야당과의 협력이 필수다. 흩어진 여론을 모으고 입법으로 마무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는 “무기를 갖지 않은 예언자는 자멸한다”(시오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고 했다. 민주주의 국가 지도자의 무기는 통합과 입법이다. 싫더라도 절반의 국민을 대표하는 야당의 의견을 경청하고 타협해야 한다.

철학자인 한병철 베를린예술대 교수는 저서 『타자의 추방』에서 “같은 것의 창궐은 악성종양이 아니라 혼수상태처럼 작동한다”며 “동일자(同一者)는 타자(他者)에 대한 차이 때문에 형태와 내적 밀도, 내면성을 지닌다”고 했다. 타자의 공간을 허용하는 관용의 원칙을 포기할 때 민주주의는 몰락한다.

권력의 시간은 유한하다. 힘이 빠지는 순간 입안의 혀처럼 굴던 아첨꾼들은 뒤도 보지 않고 떠날 것이다. 어차피 그들은 어떤 가치도 공유한 적이 없다. 오직 한 줌 이익을 향해 불나방처럼 날아들었던 군상(群像)이었을 뿐이다. 베드로처럼 첫닭이 울기 전에 예수를 세 번, 아니 삼백 번이라도 부인할 것이다. 두 전직 대통령을 감옥에 보낸 김영삼 전 대통령도 임기 말에는 검찰 조사를 받으러 가는 아들에게 “미안하다. 내가 힘이 없다”고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아직도 유골이 자택에 머물고 있다. 제왕적 대통령 권력의 황혼은 무상하고, 허망하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단칼에 끊어버린 알렉산더의 결단력이 부러운가. 하지만 황제는 먼저 숙고하는 인간이었다.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플라톤을 스승으로 모셨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였고, 베개 밑에 둔 호메로스의 『일리어드』를 반복해서 읽었다. 이민족을 포용하고 헬레니즘 대제국을 건설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윤 대통령도 특유의 결단력에 더해 숙고하는 지도자가 되기 바란다.

나의 눈과 귀를 가리는 인(人)의 장막을 찢고 나와야 한다. 결사적으로 타자를 만나고, 야당과 반대자를 환대해야 한다. 내게 결핍된 다른 세계의 관점과 에너지를 수용해야 한다. 무풍(無風)은 죽음을 의미한다. 역풍(逆風)이라도 바람이 불어야 배가 전진할 수 있다. 카산드라처럼 자멸한 예언자가 되는 가혹한 운명을 피할 수 있다. ‘혁명’에 성공하고 퇴임 후 보복의 악순환도 끝내는 유일한 길이다.

글=이하경 대기자·부사장  그림=김아영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