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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건물 네 카페가 제살 깎아먹는다…대한민국은 '커피 지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6일 오전 서울 중구 다동의 한 건물. 이 건물 1층 앞면에만 ‘J주스’ ‘H커피’ ‘K커피’ ‘M커피’ 등 커피를 판매하는 점포 4곳이 나란히 영업 중이었다. 이 중 한 커피숍 점주는 “옆집에서 싸게 팔면 가격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 원래 2500원이던 아메리카노 한 잔 값이 3년여 사이에 1300원으로 낮췄다”며 “내 가게니까 (임차료를 안 내서) 버티지 거의 남는 게 없다”고 말했다.

서울 중구 다동의 한 빌딩 1층에는 커피를 판매하는 커피 및 음료점 4개가 나란히 자리한다. 유지연 기자

서울 중구 다동의 한 빌딩 1층에는 커피를 판매하는 커피 및 음료점 4개가 나란히 자리한다. 유지연 기자

골목 돌아 커피 또 커피…10만 개 육박

커피숍 4~5개가 나란히 자리한 이런 ‘커피 지옥’은 요즘 곳곳에서 흔한 풍경이 됐다. 스타벅스·투썸플레이스 같은 대형 브랜드와 메가커피·빽다방·이디야 등 중저가 프랜차이즈가 골목마다 서너 개가 자리하고, 그 사이엔 개인 카페가 가세하면서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커피·음료점업 점포 수는 9만9000여 개로 역대 최다였다.〈그래픽 참조〉 특히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카페 증가율은 21%(2020년)→17.4%(2021년)를 기록하며, 2021년 말 ‘창업 대명사’로 통하던 치킨집(8만1000개)을 뛰어넘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카페 창업이 늘어난 배경으로 업계 관계자들은 커피 대중화와 소자본 창업 증가를 꼽는다. 누구나 하루 한 잔 이상 마시는 카페 문화에 익숙한 데다, 창업에 필요한 환경도 비교적 잘 갖춰져 있다. 부동산 비용을 제외하면 적게는 5000만~7000만원으로 ‘내 가게’를 차릴 수 있다. 한마디로 ‘진입 장벽’이 낮다는 것이다.

서울 중구 황학동에 있는 커피숍 컨설팅 업체 프롱 커피디자인은 월평균 10개팀을 대상으로 창업 교육을 한다. 이 회사 최선욱 실장은 “젊은 세대들은 카페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는 경우도 많고, 자본이 비교적 적게 들어 ‘나도 할 수 있겠다’며 뛰어드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최근엔 커피머신 등 카페 집기를 할부 구매해 소자본으로 창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한 잔 900원부터 1500원까지, 저가 경쟁 치열

커피숍이 늘면서 저가 경쟁이 치열해졌다. 최근에는 ‘900원 아메리카노’ 프랜차이즈도 생겨났다. 편의점 커피 가격보다 싼 수준이다. 이러면 자연히 수익성이 나빠지고, 폐업도 늘어난다.

최근 저가 커피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아메리카노 한잔이 1300~1500원대까지 내려갔다. 16일 서울 시내 한 커피숍. 유지연 기자

최근 저가 커피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아메리카노 한잔이 1300~1500원대까지 내려갔다. 16일 서울 시내 한 커피숍. 유지연 기자

경기도 김포에서 ‘카페마’를 운영했던 진상헌(40)씨는 지난해 4월 창업 후 6개월 만에 문을 닫았다. 오픈한 지 한 달 뒤 맞은편에 M프랜차이즈 점포가 생기면서부터 고전했다. 아메리카노 한 잔을 2500원에 팔았던 진씨는 오전 8~10시 1500원으로 가격을 낮췄지만 적자를 피할 수 없었다. 그러다 곧이어 또 다른 저가 커피 브랜드가 맞은편에 생기면서 폐업을 결정했다.

진씨는 “하루 10만원 매출도 힘들었다”며 “이러면서 월평균 150만원 이상 적자가 쌓였다”고 푸념했다. 그는 하루 12시간 일했으나 불과 6개월 새 인건비는커녕 창업비용 7000만원을 허공에 날렸다. 카페 280여 곳과 거래한다는 원두 유통회사 브로든커피의 현혁 대표는 “요즘은 한 집 생기면 두 집이 망할 정도로 제살깎아먹기 경쟁이 나타나고 있다”며 준비 없이 뛰어들지 말 것을 당부했다.

지난해 4월 15일 창업 당시의 카페마. 인근에 저가 커피 브랜드 두 곳이 들어오면서 가게를 접었다. 사진 진상헌

지난해 4월 15일 창업 당시의 카페마. 인근에 저가 커피 브랜드 두 곳이 들어오면서 가게를 접었다. 사진 진상헌

업계에서는 통상 4일치 매출로 임차료를 감당할 수 있어야 ‘생존’이 가능하다고 본다. 월세가 100만원이라면 하루 30만원 이상의 매출이 나와야 한다는 얘기다. 한 잔에 1500원인 아메리카노만 판다고 가정하면 하루 200잔을 팔아야 가능하다.

물론 아메리카노 대신 다른 메뉴를 팔아 수익을 내지만, 유제품 등 재료 가격이 올라가면서 이 역시 수월치 않은 상황이다. 서울 선정릉역 인근에서 10년째 커피숍을 운영하는 한 점주는 “최근 크림 1팩(1L)이 6000원에서 9000원으로, 우유 1팩(1L)은 1800원대에서 2000원으로 올랐다”면서 “경기는 나쁘고 물가는 오르니 지금이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최근 늘어나는 커피숍 만큼 폐업도 느는 추세다. 사진은 서울 시내 한 커피 음료점의 폐업 현장. 사진 미엔느

최근 늘어나는 커피숍 만큼 폐업도 느는 추세다. 사진은 서울 시내 한 커피 음료점의 폐업 현장. 사진 미엔느

서울서만 지난해 2100여 곳 폐업…하루 6개꼴  

중앙일보가 서울시 휴게음식점 인허가 데이터에서 ‘커피숍’을 분류·추출해 분석했더니 지난 한 해 동안 서울시에서 폐업한 카페는 2187곳이었다. 하루 6개꼴이다. 이는 전년 1970곳보다 많은 역대 최고치다.

올해에만 지난 13일까지 커피숍 63곳이 폐업했다. 수도권 일대에서 카페 폐업 정리 및 커피머신 매입을 전문으로 하는 한 업체 관계자는 “지난 추석 이후로 하루 평균 50~60건의 폐업 문의가 들어온다”며 “최근엔 금리가 오르면서 대출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문을 닫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커피머신 매입을 전문으로 하는 미엔느의 정상수 주임은 “최근엔 창업 문의가 급감했다”며 “통상 중고 커피머신의 80%가 국내에서 다시 소화되는데 최근에는 태국이나 두바이로 수출되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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