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리셋코리아 포커스

“이튼 꺾은 영국식 ‘아카데미’ 도입, 교육개혁 속도 낼 것”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5면

윤석만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 묻다

지난 11일 열린 리셋코리아 포커스. 리셋코리아 교육분과 위원 5명이 질의하고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답했다. 전민규 기자

지난 11일 열린 리셋코리아 포커스. 리셋코리아 교육분과 위원 5명이 질의하고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답했다. 전민규 기자

“이튼보다 ‘옥스브리지(옥스퍼드+캠브리지)’에 더 많은 학생을 보냈다. 아이들의 잠재력을 깨워준 브램턴 매너 아카데미다.” 2021년 10월 보리스 존슨 전 영국 총리가 언급한 이 학교는 런던 동부에 위치한 공립고다. 당시 옥스브리지 합격자 55명을 배출해 연간 학비만 7000만원가량인 이튼(48명)을 제쳤다.

런던 빈민가에서 꽃핀 교육혁명

학교가 있는 뉴엄은 런던에서 두 번째로 빈곤율이 높은 지역이다. 전교생의 90%가 흑인·아시아인 등 소수 인종이고, 영어를 모국어로 쓰지 않는 학생이 3분의 2가량 된다. 가난한 동네의 공립학교가 유수의 사립학교들을 제치고 명문고로 도약한 비결은 뭘까.

브램턴 매너로 대표되는 영국의 자율형 공립학교 ‘아카데미’는 교육과정 수립과 예산 편성·지출, 교원 선발 등의 폭넓은 자율성을 바탕으로 학력수준을 끌어올렸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11일 리셋코리아 포커스 인터뷰에서 “10년간 기초학력이 크게 떨어졌는데 아카데미처럼 학교에 자율권을 주고 공교육을 개혁하겠다”고 밝혔다.

국어·수학 기초미달자 매년 증가
교육과정·예산 등 학교에 넘겨야
영국 공교육 살린 ‘브램턴’ 참고
‘문과침공’  수능 보완책 찾을 것

한국의 학력저하 현상은 매우 심각하다. 코로나19 이전부터 학생들의 학력수준은 이미 크게 떨어진 상태였다. 기초학력미달 고교생은 2011년 각각 2%(국어), 4.4%(수학)에서 2019년 4%, 9%로 급증했다. 코로나19 이후인 2021년엔 각각 7.1%, 14.2%로 다시 뛰었다.

각 부처 장관 등과 정책 현안을 논의하는 리셋코리아 포커스는 올해 첫 회로 교육에 대해 논의했다. 김성열(경남대 명예교수), 김진형(전 인천재능대 총장), 박상욱(서울대 교수), 정제영(이화여대 교수), 조훈(서정대 교수) 등 교육분과 위원 5명이 묻고 이 부총리가 답했다. 이 부총리는 “좋은 학교를 많이 만들어 학력을 높이고 지역을 살리는 게 교육개혁의 핵심”이라고 밝혔다.

지역기업과 연계한 협약형 공립고

영국 교육개혁 모델로 꼽히는 브램턴 매너 아카데미의 학생들. 공립이지만 사립처럼 자유롭게 운영된다. 교육부는 공교육 혁신 모델로 영국식 아카데미를 도입키로 했다. [사진 브램턴 매너]

영국 교육개혁 모델로 꼽히는 브램턴 매너 아카데미의 학생들. 공립이지만 사립처럼 자유롭게 운영된다. 교육부는 공교육 혁신 모델로 영국식 아카데미를 도입키로 했다. [사진 브램턴 매너]

김성열: 코로나19 영향도 있지만, 그 이전에도 이미 학생들의 학력수준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잘 가르치는 학교가 좋은 학교인데 경쟁교육으로 매도됐다. 좋은 학교를 많이 만들어 공교육 전반을 끌어올리겠다. 대표적인 게 협약형 공립고다. 혁신도시에 대규모 투자를 했지만 교육 때문에 실패했다는 지적이 많다. 기업과 연계해 민간의 자율성을 부여하면 명문고들이 생겨날 것이다. 아울러 전국 226개 시군구에 선도고 1곳씩 지정해 특별교부금을 지원하고, AI 튜터나 소프트웨어 교육 등 자율적으로 특화하도록 하겠다.”
김진형: 선도고가 지역 명문으로 자리 잡게 한다는 뜻인가.
“롤 모델을 만들어 공교육 전반의 교육력을 높일 수 있는 물결을 만들겠다는 뜻이다. (문재인 정부와 진보 교육감 중심으로) 지난 10년 동안 교육에서 평등만 이야기하다 보니 교육의 본질이 훼손됐다. 모두가 평등하게 지내자는 건 아무 노력도 하지 말자는 거다.”
정제영: 학교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높이겠다는 의미로 들린다.
“그렇다. 국립 초·중·고교 45곳도 영국의 아카데미(Academy)처럼 자율성이 높은 학교로 개편한다. 정부가 예산 지원은 많이 하되, 최소한의 규제만 하고 실제 운영권은 학교에 넘기는 거다. 필수이수 단위의 50% 정도는 학교가 자유롭게 편성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조훈: 외국어고, 자사고, 마이스터고 등은 어떻게 할 생각인가.
“학생의 다양한 재능을 살리기 위해 만들었는데 없앨 필요가 있나. 가고 싶은 학생들은 여전히 많다. 모두 유지할 것이다. 마이스터고는 정부 지원을 늘리고 윤석열 정부 임기 동안 10곳 정도 추가 신설할 예정이다. 졸업생이 학교로 돌아와 강의할 수 있게 교원을 다양화하는 방법도 검토 중이다.”

통합수능은 난이도 조정해야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김성열: 2022·2023학년도 통합수능에서 소위 ‘문과침공’ 현상이 심각했다. 2025년 고교학점제까지 실시되면 수능도 바뀌어야 할 것 같다.
“입시 문제는 정파를 떠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국가교육위원회가 중심을 잡고 논의해야 한다. 다만 (‘문과침공’ 같은 문제는) 난이도 조정 등이 필요할 것 같은데 중요한 건 데이터를 갖고 과학적으로 보는 것이다. 대학들과 이런 부분을 협의하고 있다.”
정제영: 2025년부터는 고교학점제 실시로 내신에 절대평가가 도입된다. 성적 인플레이션으로 입시 변별력과 신뢰도가 떨어지지 않을까.
“준비 안 된 상태에서 스케줄만 발표돼 여러 우려가 나온다. 객관성을 높이기 위해 교체평가를 검토 중이다. 샘플링을 통해 대구에서 평가한 것을 서울에서 검토할 수 있다. 지역별로 차이가 나지 않게 교체평가를 하며 질을 높여가겠다. 일상적으로는 인근 학교끼리 바꿔 채점하는 걸 검토 중이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김진형: 교육전문대학원을 도입하기로 했는데, 꼭 교대·사범대를 나와야 갈 수 있나.
“교대·사범대 출신이 아니어도 들어올 수 있다. 노량진에서 필기시험만 공부해 교사가 되는 일괄적인 임용고사 형태는 적절하지 않다. 교사로서 연구와 실천 역량을 갖춘 이들이 대학원을 졸업하면 수습교사 형태로 일하고, 2년 정도 후 평가를 통해 정교사가 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연내에 2곳을 우선 지정한다.”
정제영: 유치원·어린이집 교사의 자격과 처우 문제가 유보통합의 핵심이다. 30년간 풀지 못한 난제인데,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교육부 중심의 통합에 공감대가 이뤄져 출발은 순조롭다. 다양한 수요를 각자의 시스템으로 충족해 와서 한꺼번에 물리적으로 똑같이 만들긴 어렵다. 2025년 1월까지 보건복지부와 교육부로 나뉜 거버넌스를 하나로 통합한 뒤, 순차적으로 해나갈 예정이다.”

부실대 퇴출해 지방대 살려야

박상욱: 학령인구가 급감해 대학의 미래가 뻔한데, 구조조정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역 살리기의 핵심은 지역 대학을 키우는 거다. 경쟁력 있는 대학에 갈 예산까지 부실 대학에 N분의 1식으로 들어가고 있다. 문 닫을 대학은 하루빨리 퇴출해야 한다. 폐교시 사회·복지 법인 등으로 전환하고, 괜찮은 단과대가 있다면 인근 대학과 통합할 수 있게 길을 열어 주려고 한다.”
박상욱: 지자체에 대학 정책을 이양키로 했다. 정치적 득실에 따라 대학 운명이 결정될 우려는 없나.
“최근 만난 지방대 총장의 이야기다. 지역에 중소기업 200개가 있는데, 공대 교수도 그쯤 되더란다. 교수·기업이 매칭해 연구개발을 함께 하면 200개 연구소가 생긴다. 이런 사정을 제일 잘 아는 건 지자체다. 초·중·고처럼 대학도 지방자치로 가는 게 선진국 모델이다. 2조원이 넘는 대학예산이 지자체로 이관되고 계속 늘어날 거다.”
김진형: 강남 학원가에선 이미 국·수·영 다음으로 코딩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공교육에선 매우 열악하다.
“2025년부터 정보 과목 수업시수를 두 배 늘리고 교사 확보도 미리 하고 있다. 각종 캠프나 늘봄학교를 통해 AI, 코딩, 소프트웨어 교육 등의 프로그램을 활성화하려고 한다. 이번 겨울방학 때 AI 소프트웨어 캠프를 하는데, 여러 대학과 네이버가 함께하고 있다. 방과후학교 등에 민간 기업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미국 교육의 희망’으로 불리는 차터스쿨

미국에선 차터스쿨이 아카데미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미국 공립학교의 7.5%(7821개교)가 차터스쿨이며, 370만 명이 재학 중이다. 기업이나 비영리단체가 주정부와 협약을 맺고 학교운영의 자율성을 보장받는다. 지역과 학생 맞춤형 교육과정으로 인기가 높아 꾸준히 숫자가 늘고 있다.

김성열 경남대 명예교수는 “‘미국 교육의 희망’이라고 불리며 공립학교 개혁 모델로 꼽히는 차터스쿨은 개별 학생들에게 수준 높은 교육과 학습기회를 제공하는 대신 높은 책무성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그는 “교육 내용과 방법 결정, 학사·재정 운영 등에 있어 관료적 규제와 간섭을 최소화하는 게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정제영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도 “차터스쿨과 아카데미 모두 개별 학교의 자율성을 대폭 보장하는 게 핵심”이라며 “두 학교 모두 학업성취 수준이 낮은 공립학교를 대상으로 한 교육개혁이었다”고 했다. 이어 “국공립학교에 민간의 자율성을 불어넣으면 학교 교육력이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