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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재훈의 음식과 약

가스레인지 왜 문제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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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정재훈 약사·푸드라이터

정재훈 약사·푸드라이터

마리 앙투안 카렘은 현대 최초의 스타 요리사이다. 그는 프랑스 요리를 중세에서 현대로 끌어낸 인물이다. 불행히도 천재 요리사 카렘의 삶은 너무 짧았다. 그는 1834년 겨우 4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은 주방에서 너무 오래 일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주방에서는 요리에 석탄불을 사용했다. 연소 과정에서 발생하는 유해물질을 들이마셔서 폐병에 걸리거나 단명하는 요리사가 많았다.

1940년대가 되어서야 가스레인지가 식당 조리실에서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카렘의 뒤를 잇는 전설적 요리사 중 한 사람인 알렉시스 소여는 1941년 런던 리폼 클럽 주방에 가스레인지 조리시설을 도입하여 화제에 올랐다. 소여는 가스불의 안전성을 칭송했다. 석탄불과 동일한 화력에 유해물질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가스레인지를 쓸 때도 환기는 필수적이다. [로이터=연합뉴스]

가스레인지를 쓸 때도 환기는 필수적이다. [로이터=연합뉴스]

하지만 요리는 과학이다. 과학은 진보한다. 1940년대 기준에는 안전하게만 보였던 가스레인지의 위험성이 최근 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해 밝혀지고 있다. 2022년 12월 발표된 연구결과에 따르면 미국 소아 천식의 12.7%가 집에서 요리에 가스레인지를 사용하기 때문에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성인도 천식을 앓고 있는 사람이라면 증상 악화를 경험할 수 있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영향이 덜하겠지만 그래도 요리할 때는 환기를 충분히 하는 게 좋다. 추운 겨울이라고 창문을 모두 닫고 요리하면 집안 유해물질 농도가 높아진다. 불을 켤 때는 반드시 후드도 함께 켜는 게 안전하다. 가스레인지는 꼭 써야 할 때만 쓰자. 물은 전기주전자로 끓여도 된다는 얘기다. 부득이 가스레인지로 물을 끓일 때는 역시 환기가 필요하다. 튀기거나 구울 때 음식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니라 가스 자체가 연소하면서 만들어지는 유해물질에도 노출을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10일 미국 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의 리처드 트럼카 주니어 위원이 가스레인지 사용도 규제할 수 있다는 견해를 밝히면서 논란이 일었다. 사용 중인 가스레인지를 버릴 수는 없다며 반발하는 목소리도 컸다. 하지만 가스레인지에 대한 우려는 건강에 더해 환경에 미치는 영향 때문이기도 하다. 가스불은 깨끗하다는 알렉시스 소여의 생각과 달리 가스레인지를 사용하면 다양한 공해물질이 생겨난다.

2022년 스탠포드대 연구에 따르면 미국 가정의 가스레인지에서 새어나가는 메탄가스는 1년에 50만 대의 자동차에서 내뿜는 가스배출량과 맞먹는다. 가스불을 쓸 때도 자동차 엔진에서 휘발유, 경유가 탈 때처럼 질소산화물이 발생한다. 환기를 시키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줄일 수 있겠지만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가능하다면, 노후한 가스레인지를 교체할 때 전열 조리기구 같은 대안을 생각해봐야 할 이유다.

정재훈 약사·푸드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