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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복 소비는 먼 나라 이야기… ‘저축’이 더 급한 中 청년들

중앙일보

입력

차이나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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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세계은행은 중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이 4.3%에 이를 것이라고 예측했다. 사진 셔터스톡

지난 10일, 세계은행은 중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이 4.3%에 이를 것이라고 예측했다. 사진 셔터스톡

지난 3년간, 사람들을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든 제로 코로나 정책이 폐지되면서 중국의 경기 회복을 낙관하는 시각이 많다. 지난 10일, 세계은행은 중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이 4.3%에 이를 것이라고 예측했다. 중국사회과학원 역시 올해 중국 경제 성장률을 5.1%로 전망했다.

그러나, 블룸버그는 '중국이 경제 성장 목표치를 달성하려면 내수 시장이 살아나야 한다'고 전제했다. 쉽게 말해 중국인들의 지갑이 열려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현재 중국 시중에 돈이 돌고 있지 않다는 지표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경제매체 차이신(財新)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중국 내 신규 예금은 14조 9497억 위안(약 2752조 8377억 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평균적인 수준의 저축에 비해 더 많은 돈을 은행에 예치하고 있다는 뜻인데, 현재 중국 부동산 경기가 1998년 이후 최악인 데다 주가 하락, 고물가·고금리 등 인플레이션 현상이 장기화하자 중국인들이 투자나 소비 대신 저축을 택한 것으로 해석된다.

중국 인민은행이 최근 발표한 2022년 4분기 도시 거주민 설문조사를 살펴보면, 저축을 선호하는 가구가 61.8%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초과 저축이 증가하면 소비 잠재력도 향상된다고 예측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경기 침체가 이어지고 있어 은행에 묶여 있던 돈이 소비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욜로’는 옛말, 젊은 세대도 소비 대신 저축

중국 내 40세 미만 청년 2200명 중 93.1%는 저축하는 습관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 셔터스톡

중국 내 40세 미만 청년 2200명 중 93.1%는 저축하는 습관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 셔터스톡

중국 RET 루이더(睿意德) 중국상업부동산연구센터에서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젊은 세대 사이에서 더는 ‘웨광(月光)족’을 찾기 어려워졌다. 웨광족은 ‘월(月)급을 모두 써버리는(光) 이들’을 뜻한다. 한 번 사는 인생, 미래가 아닌 현재의 행복을 위해 소비하겠다는 욜로(YOLO·You Only Live Once)족도 예전만큼 눈에 띄지 않는다.

장기화된팬데믹으로침체한 경기, 불안정한 일자리 등은 청년 세대에게 안정적인 소득을 지속해서 벌 수 없다는 두려움을 갖게 했다. 중앙은행이 지난 4분기 대중 설문조사를 한 결과, 4분기 소득체감지수는 43.8%로 전 분기보다 3.2%포인트 하락했으며 소득신뢰지수는 44.4%로 전 분기보다 2.1%포인트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인들의 소득 기대치가 낮다는 지표다.

실제 도시 노동자 임금은 지난해 1~9월까지 평균 2.2% 증가하는 데 그쳤고, 청년 실업률은 20%에 달했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25~35세의 청년 세대는 지난 몇 년 동안 사치품, 엔터테인먼트 분야의 소비를 줄였으며, 3분의 1이 불필요한 지출을 줄인 것으로 조사됐다.

경제학자 판샹둥(潘向东)은 "보복성 저축은 단기적인 현상일 수 있다. 젊은 세대가 저축하려는 건 돈이 아니라,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보험"이라며, "젊은 세대의 소비 욕구가 환경의 영향을 받으며 합리적인 측면을 형성하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중국 청년들은 품위 있는 삶을 유지하기 위해 최소한의 돈을 쓴다는 새로운 소비 철학을 형성했다.

중국 테크 전문 매체 36크립톤(36氪) 산하 허우랑연구소(后浪研究所)의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내 40세 미만 청년 2200명 중 93.1%는 저축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비율을 연령별로 보면 경제활동 인구의 주축인 지우링허우(90後·90년대 이후 출생자)가 41.7%로 가장 많았고, 지우우허우(95後·95년 이후 출생자)가 40.6%로 그 뒤를 이었다.

실제로 중국 청년 세대가 주로 사용하는 중국판 인스타그램 샤오훙슈(小红书)에는 할인과 관련된 메모가 약 334만 개 올라와 있다. 이들 다수는 여러 개의 전자상거래 앱을 깔아, 동일한 제품을 가장 합리적인 가격에 살 수 있는 플랫폼을 비교해 소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북경사범대학 연구팀이 실시한 '신청년 패션 소비 트렌드 발전 보고서'에 따르면 신청년 소비자의 70%가 비용 효율성, 즉 가성비를 고려한다고 응답했다.

韓·中 청년들 모두 저축하며 '관망'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칭화대학교 사회학과 부교수 옌페이(严飛)는 이런 현상에 대해 "젊은이들의 저축 욕구는 단기적인 사회 현상이 아니라 장기적인 추세"라고 주장했다. 옌 교수는 "60~70년대생에 비해 90~95년대생들은 펀드·주식, 부동산 등의 투자를 통해 목돈을 벌기가 훨씬 어려워졌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길어지는 팬데믹과 경기 둔화를 겪으며 한정된 돈을 계획 없이 펑펑 쓰다가는 노후를 책임질 수 없음을 체감하게 된 것이다.

또 이들이 저축에 열을 올리는 이유 중 하나로 추후 경기가 회복돼 부동산 혹은 투자 기회가 왔을 때를 대비한 종잣돈(시드머니)을 확보해두기 위한 목적도 있다. 예금은 부동산 구매자들의 계약금이나 다름없다. 추후 부동산 시장이 살아나거나 증시가 반등할 때를 기다리며 '관망'하겠다는 자세가 청년 세대에 퍼지고 있다.

한국 청년들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지난해만 해도 '오픈런' 진풍경이 펼쳐졌던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 매장 앞의 대기줄은 반 토막으로 줄었다. 실제로 백화점 명품 부문 매출 신장률은 지난해 8월 26.4%, 9월 14.2%, 10월 8.1%로 점점 둔화하고 있는 추세다.

지난해 10월 KB금융경영연구소가 전국 25~59세 남녀 1인 가구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월 소득에서 저축이 차지하는 비율은 44.1%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2년 전 같은 조사(34.3%)와 비교했을 때 9.8% 포인트나 높아졌다. 반대로 소비는 2년 전(57.6%)보다 13.4%포인트 떨어진 44.2%를 기록했다.

한국, 중국 할 것 없이 경제 활동 인구의 소비 위축 심리가 한동안 이어짐에 따라, 경기 부양 속도도 늦춰질 것으로 전망된다.

임서영 차이나랩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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