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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골 시신' 모친과 2년 동거…인천 빌라 비극 아무도 몰랐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어머니 A씨의 시신을 장기간 집에 방치한 혐의를 받는 40대 여성이 13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인천시 미추홀구 인천지방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경찰은 집 안에서 '2020년 8월 엄마가 사망했다'고 적힌 메모가 발견된 점을 토대로 A씨가 사망 후 2년 넘게 집 안에 방치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연합뉴스

어머니 A씨의 시신을 장기간 집에 방치한 혐의를 받는 40대 여성이 13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인천시 미추홀구 인천지방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경찰은 집 안에서 '2020년 8월 엄마가 사망했다'고 적힌 메모가 발견된 점을 토대로 A씨가 사망 후 2년 넘게 집 안에 방치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신이 이불에 덮여 있었는데 부패가 심해서 이불이 안 떨어졌다.”
 지난 11일 밤 인천 남동구 빌라에서 백골 상태의 시신을 발견한 소방 관계자의 말이다. 경찰과 소방은 이날 오후 10시20분쯤 A씨(78·여) 자택 현관문을 강제 개방했다. “엄마와 연락이 닿지 않아 집에 왔는데 함께 사는 셋째 언니가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고 A씨의 넷째 딸이 신고한 데 따른 조치였다. 자택 안에선 A씨의 시신이 이불에 덮인 채 발견됐다. 경찰은 셋째 딸 정모(40대)씨가 쓴 것으로 추정되는 노트도 발견했는데 ‘2020년 8월 엄마가 사망했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시신 근처에서 턱을 괸 채 앉아있던 정씨는 묵묵부답이었다고 한다. 12일 오전 7시20분쯤 경찰은 사체유기 혐의로 정씨를 긴급체포했다. 아무도 알지 못했던 ‘엄마 시신과의 동거’가 2년여 만에 세상에 드러난 순간이었다.

숨진 A씨는 딸 4명, 아들 2명을 둔 어머니였다. 1970년대까지 충북 중원군(현 충주시)에 살았던 그는 최소 8차례 주소를 옮긴 것으로 파악된다. 40여년간 경기 부천시, 인천 서구, 인천 남동구, 인천 미추홀구, 경기도 오산시 등을 오갔는데 남편이 사망한 2000년 이후 주소지 이전이 잦았다. 2000년대 중반부터는 자녀들과 떨어져 산 것으로 추정된다. 2011년 5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지정됐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2013년 9월 지자체의 소득재산조사에서 A씨의 자녀 중에 기준이상의 소득이 발생한 것이 확인되면서 수급대상에서 제외된 것이다. 지자체 관계자는 “같이 살진 않지만, 자녀가 부양 능력이 있다는 점이 인정되면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에서 탈락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2016년 9월 홀로 생계를 꾸려가던 A씨에게 동거인이 생겼다. 미혼이었던 셋째 딸 정씨와 함께 인천 남동구의 한 빌라에 자가(自家)를 구했다. 몸이 불편한 A씨는 주로 집에 있었고 정씨는 뚜렷한 직업 없이 간헐적으로 아르바이트했다고 한다. 이웃들은 이들 모녀가 형편이 넉넉하진 않았지만, 돈독한 사이였다고 기억했다. 주민 B씨(50대)는 “정씨가 다리가 아픈 어머니를 모시고 산책하거나 장을 보러 가는 걸 종종 봤다”며 “정씨가 ‘어머니가 주민등록보다 실제로 나이가 더 많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정씨가 낯을 가리고 말주변이 없어서 그런지 이웃과 교류가 적었다”며 “이사도 둘이 이삿짐센터를 불러서 했다. 친척이나 친구가 찾아오는 걸 본 적이 없다”고 전했다. 정씨 6남매는 성격 차이 등으로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고 왕래가 적었다고 한다.

12일 오후 인천시 남동구 A씨 자택 앞에 폴리스라인이 설치돼 있다. 심석용 기자

12일 오후 인천시 남동구 A씨 자택 앞에 폴리스라인이 설치돼 있다. 심석용 기자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면서 모녀는 세상과 더 멀어졌다. 정씨가 홀로 외출하는 모습이 목격됐지만, 이상하게 여기는 주민은 없었다. 주민 C씨(50대)는 “언제부턴가 할머니가 잘 안 보였지만, 평소 교류가 없어 묻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자체도 이상징후를 감지하지 못했다. 지난해 11월 조사원이 주민등록 사실 조사를 위해 A씨 자택을 찾았는데 정씨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대신 전화로 응답했는데 정씨는 조사원에게 “엄마가 죽었다”고 털어놨다고 한다. 조사원은 “그럼 사망신고를 하시라”고 답하고는 정씨의 말을 관할 행정복지센터에 알리지 않았다. 지자체 관계자는 “사망신고가 접수되지 않으면서 추가 조치는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사망신고가 접수되지 않으면서 A씨에 대한 기초연금은 한 달에 약 30만원씩 지속해서 지급됐다.

연금 끊길까 사망신고 안 했나

 초기 경찰 조사에서 침묵하던 정씨는 12일 저녁 “어머니가 사망하기 전에 병 때문에 아팠다”며 “어머니 앞으로 나오는 연금이 끊길까 봐 사망 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A씨의 사망 시점이나 사망 원인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정밀 검사를 거쳐 밝혀질 전망이다. 13일 오후 1시30분 인천지법 영장실질심사 법정 앞에 선 정씨는 “어머니는 왜 사망했느냐. 사망 신고는 왜 하지 않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지 않았다. 김현덕 인천지법 영장전담 판사는 이날 오후 “도망할 우려가 있다”며 정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경찰은 정씨가 A씨의 휴대전화를 사용한 사실은 확인했지만, 현재까지 정씨가 모친이 살아있는 것처럼 고의로 꾸민 정황은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정씨는 A씨 명의로 된 휴대전화 요금도 연체 없이 납부했다고 한다. 다만 정씨가 고의로 사망 신고를 하지 않아 지난달까지 A씨의 기초연금을 수령한 것으로 보고 있는 만큼 추가 혐의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사망 원인이 특정되지 않은 만큼 여러 가능성을 열어 놓고 수사할 것”이라며 “A씨의 진료 기록 등을 확인해 지병이 있었는지 등도 확인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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