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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말' 관례 깼다…尹 거침없는 '1만자 발언' 공개한 이유

중앙일보

입력

윤석열 대통령이 1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3년 외교,국방부 업무보고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1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3년 외교,국방부 업무보고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특히 마무리 발언은 즉석에서 대통령의 소신, 철학을 그대로 드러낸 것입니다.”

지난 6일 이재명 대통령실 부대변인이 언론 브리핑에서 강조한 말이다. 이 부대변인의 설명처럼 대통령실은 최근 주요 회의 때마다 윤 대통령의 마무리 발언을 날 것 그대로 공개하고 있다. 대통령의 말은 정제돼 언론에 공개되는 것이 관례였지만, 윤 대통령의 발언은 “나오는 배식이 좋아야 국가가 나를 아끼고 있다는 것을 청년이 느낍니다(11일 국방부 업무보고)”라거나 “대학이 혁신을 못 하면서 대학교수가 공무원도 바뀌어야 한다고 하면 안 되죠(5일 교육부 업무보고)”와 같이 구어체 그대로 출입기자단에 공지되고 있다. 양도 상당하다. 통상 7000~8000자로 원고지 40장 분량에 달한다. 회의 시작 전 준비된 원고를 읽는 윤 대통령의 모두발언을 더하면 1만자를 넘기기 일쑤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마무리 발언 공개 이유에 대해 “국민에게 회의 내용을 가감 없이 전달하라는 윤 대통령의 지시 때문”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생각과 국정철학을 투명하게 국민과 전 공직사회에 공유하려는 윤 대통령의 의지가 강하다는 것이다. 최근 업무보고에 참석했던 한 정부 관계자도 “참모를 거치지 않고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국정철학에 대한 설명을 들으니 정책 추진 방향이 명확해졌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10일 외교·국방부 업무보고에선 전술핵과 일본 방위비 증액 등에 대한 민감한 발언도 쏟아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북한의 위협에 대한 국민의 우려를 달래려 대통령이 확고한 안보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윤 대통령의 마무리 발언 전문이 처음 공개된 건 이태원 참사 때였다. 그전까진 모두 발언과 대통령실이 전한 축약본만 전달돼왔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7일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에서 윤희근 경찰청장을 앞에 두고 경찰에 대해 질타를 쏟아냈고, 1만자에 달하는 내용을 그대로 공개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1월 18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취재진과 출근길 문답을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의 도어스테핑은 작년 11월 이후 중단된 상태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1월 18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취재진과 출근길 문답을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의 도어스테핑은 작년 11월 이후 중단된 상태다. 뉴스1

대통령실 내부에선 이례적인 발언 공개에 대해 윤석열식 화법과 도어스테핑 중단을 그 이유로 꼽는다. 한 대통령실 참모는 “정치인 출신이 아닌 윤 대통령은 자신의 발언이 명확하게 전달되길 바란다”며 “대선 기간에도 발언 의도와 다른 뜻으로 해석되는 것에 답답함을 표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통령실 관계자는 “도어스테핑을 하지 않으면서 국민과 직접 소통할 기회가 줄어든 점도 영향을 미친 듯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의 화법 자체가 만연체에 가까워 애초 짧은 문답이 오가는 도어스테핑과는 안 어울리는 측면이 있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1만자에 달하는 윤 대통령의 발언이 회의 때마다 공개되는 것이 “오히려 주목성을 떨어뜨린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문장씩 따로 살펴보면 모두 이슈가 될 만한 사안인데, 발언이 길어지며 묻혀 버린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의 말이 길다 보니 회의 때 “가능한 대통령과 먼 곳에 앉혀달라”는 민원이 많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대통령의 발언을 가감 없이 알게 되는 것은 한국 사회에선 아직 드문 일”이라며 “찬반은 있겠으나 시도 자체는 평가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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