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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증금 날개 없는 추락, 계륵이 된 전세] 전세의 소멸, 월세 42% 넘고 주세까지 등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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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2호 01면

SPECIAL RE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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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모(48)씨 가족은 지난해 말 서울 동작구의 한 아파트를 보증금 1억원, 월세 230만원 조건으로 임차했다. 이 아파트  전셋값은 지난해 8월 7억원이었지만 이후 전세 거래가 뚝 끊겼다. 조씨는 “잇단 금리 인상에 대출 이자 부담이 커서 목돈 마련이 필요한 전세 대신 월세를 택했다”고 말했다. 조씨나 이 아파트만의 사례가 아니다. 지난해 서울 주택 전세 거래량은 25만8529건으로 2021년 대비 7.7% 급감했다. 반면 서울 아파트 월세 비중은 42.5%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 빠른 속도로 전세 비중에 육박하고 있다.

전·월세같이 거액의 전세금이나 보증금 없이 매주 임대료를 내는 개념인 주세(週貰)도 등장하고 있다. 서울 강남구 학동역 부근의 한 오피스텔에선 주세 45만원 조건의 매물이 나왔다. 대구에서 서울로 직장을 옮기게 된 윤정현(31)씨는 “나처럼 목돈을 못 모은 사회초년생은 고금리 시대에 주세가 유리하다”며 매물들을 눈여겨보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부터 계속된 금리 인상 여파로 시장에서 전세 수요가 급감하고, 월세 수요가 이를 무섭게 대체 중인 가운데 주세라는 신개념 제도까지 나타났다. 그러면서 세계에서 한국에만 있는 전세 제도의 ‘소멸’이 시작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628채에 달하는 빌라 세입자의 보증금을 가로챈 ‘전세 사기’ 일당 수십 명이 최근 검거되면서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보증금을 떼일 우려가 커진 ‘깡통전세’에 대한 공포도 시장을 전세로부터 멀어지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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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저금리 시절처럼 집주인 주도가 아니라, 고금리에 따른 깡통전세 우려가 커진 세입자 주도로 빠른 월세화가 진행되고 있다”며 “장기적으로 전세가 소멸될 위기에 처했다”고 말했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장도 “금리가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진 않을 공산이 크고, 돌아가도 전셋값이 워낙 오른 상태라 금리가 또 오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임차인 입장에선 전세 수요가 늘기 어려울 것”이라며 “당장은 어렵지만 10년 후처럼 장기적으로 봤을 땐 전세가 확실히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2020년 주택임대차보호법 도입 당시 전세 소멸을 경고했던 윤희숙 전 국회의원은 13일 통화에서 “지금은 임대차법이라는 인재(人災)에 더해 고금리라는 자연재해가 덮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일시적 현상이라는 반론도 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현재 월세가 계속 오르고 있는 데다가 향후 금리가 떨어지면 다시 월세보다 전세가 유리해져 수요가 전세로 이동할 수 있다”며 “월세는 (드는 자금이) 소멸성인 반면 전세는 저축성이라 내 집 마련의 징검다리로 인식되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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