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기자 “만주국 외교권 없어, 푸이는 관동군 허수아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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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2호 29면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759〉

만주국은 1938년 이탈리아와 수교했다. 수교기념으로 평화 대표단을 로마에 파견했다. 무명용사 묘지를 참관하는 만주국 대표단. [사진 김명호]

만주국은 1938년 이탈리아와 수교했다. 수교기념으로 평화 대표단을 로마에 파견했다. 무명용사 묘지를 참관하는 만주국 대표단. [사진 김명호]

1932년 3월 1일 만주국 집정(執政)에 취임한 푸이(溥儀·부의)는 호칭이 맘에 들지 않았다. 27세의 청년이었지만 두번 청(淸) 제국의 황제를 경험한 터였다. 사람 속을 꿰뚫어 볼 줄 알고, 부릴 줄도 알았다. 조상의 발상지 만주에 청 제국을 부활시키겠다는 일념(一念) 외에는 딴생각이 없었다. 집정 취임 4개월 후 일본이 중국인의 노예화 교육을 위해 설립한 협화회(協和會) 명예회장직을 덜컥 수락했다. 관동군 사령관과 만주국 총리가 서명한 ‘일만의정서(日滿議定書)’도 대충 읽어보고 비준했다.

계획대로 만주국의 주권을 장악한 일본은 푸이의 황제 등극을 추진했다. 푸이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2년간 사용한 연호 대동(大同)이 눈에 거슬렸다. 천수를 누린 강희제(康熙帝)와 자신의 직전 황제 광서제(光緖帝) 덕종(德宗)에서 한 자씩 따내 강덕(康德)으로 바꿔버렸다.

“리샹란, 머지않아 만주인 귀 지배”

국·공 양당은 푸이의 비굴해 보이는 모습만 내보냈다. 독일 기자가 촬영한 푸이의 원래 모습. [사진 김명호]

국·공 양당은 푸이의 비굴해 보이는 모습만 내보냈다. 독일 기자가 촬영한 푸이의 원래 모습. [사진 김명호]

일본이 중국의 동북3성에 선보인 만주제국의 출현은 세계적인 뉴스거리였다. 젊은 독일 기자가 상급자에게 동의를 구했다. “만주국 황제 푸이를 인터뷰하겠다. 출장을 허락해주기 바란다.” 한마디로 거절당했다. “피곤해 보인다. 휴가 줄 테니 쓸데없는 생각 그만하고 잠이나 처질러 자라.” 무안만 당한 기자는 궁금증을 억누를 방법이 없었다. 예금을 털어 장도에 올랐다. 폴란드를 경유해 소련에 도착했다. 과로와 감기로 병원 신세 지느라 수중에 있던 돈을 탕진했다. 장인의 유품인 금시계를 팔았다. 주는 대로 받고 보니 집을 사고도 남을 액수였다. 시베리아 횡단열차 특등 객실에 몸을 실었다. 만주국 국경도시 만주리(滿洲里) 역에 도착하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남편의 유일한 유물을 선뜻 건네준 장모에게 보낼 편지를 썼다. “플랫폼에 있는 군인들 모습이 우리와 다릅니다. 한 사람은 우리처럼 백색이고 두 명은 황색입니다. 백색은 러시아인이고 황색은 중국인과 일본인 같습니다. 제가 이곳에 온 목적은 황제 인터뷰 한 가지 때문입니다. 다른 곳에 호기심이 발동할까 우려됩니다.” 시계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1934년 3월 말, 제도(帝都) 창춘(長春)에 도착한 기자는 만주국 외교총장 셰제스(謝介石·사개석)에게 황제 인터뷰를 청했다. 놀랄 정도로 쉽게 허락이 떨어졌다. 푸이를 만난 기자는 잠시 입이 벌어졌다. 사진에서 보던 것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머리에 발끝까지 황제의 기품이 넘쳤다. 영어로 진행된 인터뷰는 5분도 걸리지 않았다. 기자의 첫 질문이 민감한 문제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만주국은 건국 2년이 지나도록 일본을 제외한 다른 나라의 승인을 받지 못했다. 이유가 궁금하다.” 난생처음 기자의 질문을 받은 푸이는 잠시 당황했다. 짧게 대답하고 자리를 떴다. “우리는 머지않아 만주국이 하나의 독립국임을 스스로 증명하겠다.”

기자가 만주에 온 목적은 만주국에 외교권이 있는지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푸이의 말과 행동에서 만주국이 독립국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자 기분이 좋았다. 이왕 온 김에 만주 최대의 도시 선양(瀋陽)으로 갔다. 도착 첫날, 야마토(大和)호텔에서 리샹란(李香蘭·이향란)의 노래를 듣고 귀가 번쩍했다. 이런 기사를 작성했다. “만주국은 외교권이 없다. 푸이는 관동군의 허수아비다. 만주인의 귀를 리샹란이라는 예쁜 꾸냥이 지배할 날이 머지 않았다.”

1945년 가을, 게 풍년으로 상하이 도처에서 이런 광경이 벌어졌다. [사진 김명호]

1945년 가을, 게 풍년으로 상하이 도처에서 이런 광경이 벌어졌다. [사진 김명호]

만주국도 외국과의 수교에 신경을 썼다. 수립 일주일 후 외교총장 셰제스가 일본,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소련 등 17개국에 수교를 희망한다는 전문을 발송했다. 이튿날 하얼빈에서 열린 ‘건국기념연회’에 각국 영사들을 초청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일본 대리영사 외에 참석한 외교관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이유가 있었다. 만주국 정부는 일본이 만든 정부였다. 국제연맹은 난징(南京)의 국민정부를 합법적인 중국 정부로 인정했다. 중국 정부가 승인하지 않는 만주국을 국제연맹이 승인할 리가 없었다.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일본은 초강대국에 끼지 못했다.

일본은 중국 정부의 만주국 승인을 위해 기를 썼다. 수단은 물론 방법도 가리지 않았다. 뇌물 좋아하는 중국 관리들도 이 문제만은 등을 돌렸다. 외교부가 만주국과 외교관계 수립한 일본을 대놓고 비난했다. “일본은 무력으로 동북3성 전역을 겁탈했다. 만주국이라는 괴뢰조직 만들어 푸이를 주인으로 내세웠다. 실권을 쥔 도쿄 정부의 관리들이 뒤에서 모든 업무를 조정한다. 자신들의 피 묻은 손으로 만든 괴뢰조직을 승인한 것은 국제연맹의 권위에 대한 도전과 다를 바 없다. 훗날 일본국민의 피눈물만 증가시킬 뿐이다.” 일본은 끄떡도 안 했다. 국제 정세가 요동을 치면서 만주국 위상도 변했다. 바티칸을 필두로 24개국의 승인을 받았다.

일본이 패망하자 푸이도 퇴위를 선언했다. 독일 기자의 리샹란에 대한 예언은 적중했다. 만주국 존속 14년간 리샹란은 노래와 연기로 중국인을 홀리고 전선에 있는 일본군의 사기 진작에 한몫을 했다. 상하이의 일본교민 수용소에서 한간(漢奸)죄 선고를 기다리던 중 낯선 중국 청년이 수용소 소장과 함께 면회를 왔다. 리샹란을 확인하자 입을 열었다. “함께 외부에서 오찬을 하고 싶다.” 소장에게는 긴 말을 하지 않았다. “1시간이면 족하다.” 소장은 깔끔한 복장에 의표가 당당하고 정중한 청년의 신분을 아는 것 같았다. 무슨 말을 하건 고개만 끄덕였다.

“공산당·팔로군 상황만 알려 달라”

상하이에서 귀국선에 오른 일본 교민들. 리샹란도 이런 모습으로 일본으로 돌아갔다. [사진 김명호]

상하이에서 귀국선에 오른 일본 교민들. 리샹란도 이런 모습으로 일본으로 돌아갔다. [사진 김명호]

프랑스 조계의 화려한 공관에 도착한 청년은 리샹란을 거실로 안내했다. 런던이나 뉴욕 한복판에 내놔도 손색이 없을 중년 남성 10여 명이 리샹란을 기다리고 있었다. 풍성한 상하이 요리에 리샹란은 허기가 동했다. 연장자로 보이는 사람이 덕담을 했다. “금년은 게가 풍년이다. 누구나 게 8마리로 점심을 대신할 정도다. 농산물이건 수산물이건 풍년에는 맛이 떨어진다. 여사가 즐기는 줄 알지만 다른 요리를 준비했다.” 오찬이 끝날 무렵 리샹란 앞에 자리한 중국 복장의 노신사가 본론을 꺼냈다. “여사의 군사재판 선고가 목전에 다가왔다. 기소를 철회하면 자유의 몸이 된다. 중국에 거주할 의향이 있으면 기소건 재판이건 없던 일로 하겠다. 이 집을 여사 명의로 바꾸고 생활 편의를 위해 비서, 운전기사, 요리사와 신형 캐딜락을 제공하겠다. 풍족한 생활비도 물론이다. 전국 각지를 자유롭게 여행만 다니면 된다.”

리샹란은 의아했다. 젓가락 만지작거리며 이유를 물었다. 생각도 못했던 답이 돌아왔다. “여사는 동북 지역 어디건 익숙하지 않은 곳이 없다. 아는 사람이 많고 친구도 많다. 중국어는 중국인들 보다 더 아름다운 중국어를 구사한다. 동북의 풍토와 인정도 익숙하다. 공산당과 팔로군의 상황만 우리에게 알려주면 된다.” 리샹란의 대답은 단호했다. “나는 리샹란이란 예명으로 활동한 일본인 야마구치 요시코(山口淑子)다. 일본인으로 일본의 국책에 협조했을 뿐이다. 국적 문제만 해결되면 한간 재판을 받을 이유가 없다. 간첩도 해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할 생각이 없다. 감옥에서 5년을 있건, 10년을 있건 상관치 않겠다. 나는 중국에서 태어나 중국에서 성장했다. 중국은 내가 사랑하는 모국이며 고국이다.” 듣기를 마친 노신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본에 돌아가면 중·일관계 정상화를 위해 노력해 주기 바란다.” 리샹란은 고개 숙이며 눈물로 대답을 대신했다.

노신사는 빈말을 하지 않았다. 리샹란도 약속을 지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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