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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춤추다 넘어질까봐? 엘리베이터 연습으로 충분해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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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2호 18면

[유주현의 비욘드 스테이지] 댄스가수의 전설 김완선·박남정

1980년대를 주름잡았던 댄스가수 김완선(왼쪽)과 박남정이 18일 오랜만에 한 무대에 선다. [사진 마포문화재단]

1980년대를 주름잡았던 댄스가수 김완선(왼쪽)과 박남정이 18일 오랜만에 한 무대에 선다. [사진 마포문화재단]

지금 세계를 주름잡고 있는 ‘K팝’은 댄스음악이다. 2000년대 초 H.O.T와 보아가 세계 시장에 진출한 이래 지금의 BTS, 블랙핑크에 이르기까지 쭉 그랬다. 이런 댄스 아이돌이 어느날 갑자기 등장한 건 아니다. 1980년대 가요계에 ‘한국의 마돈나와 마이클 잭슨’이 있었으니, 김완선과 박남정이다. 이들은 발군의 춤 실력은 물론, 한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고유의 음색까지 갖추고 청소년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두 사람의 춤과 노래를 열심히 흉내내던 ‘김완선·박남정 키즈’들이 지금의 ‘K팝’ 씬을 만들었고, 이들이 유행시킨 ㄱㄴ춤, 토끼춤 등은 K팝 댄스의 핵심인 포인트 안무의 원조가 됐다.

김 “해외 영화제 여우주연상도 받아”

두 ‘레전드’가 만났다. 마포문화재단의 기획 공연 시리즈 ‘어떤가요’ 3탄(18일 마포아트센터)을 위해서다. 지난해 조정현·이정봉·이규석·이치현·이정석 등 8090 가수들이 먼저 꾸린 ‘어떤가요’ 1,2탄에 중장년층의 호응이 뜨겁자, 올해는 댄스가수까지 확장한 것. 김완선의 ‘리듬 속의 그 춤을’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박남정의 ‘사랑의 불시착’ ‘널 그리며’ 등 추억의 히트곡들이 우리를 타임머신에 태워줄 예정이다.

연습실에서 리허설 중인 김완선. [사진 마포문화재단]

연습실에서 리허설 중인 김완선. [사진 마포문화재단]

4일 연습실에서 만난 두 사람은 7년여 만에 한 무대에 선다고 했다. 김완선은 예상대로 얼음공주였다. “연습하러 왔는데 인터뷰가 있는 줄 몰랐다” “둘다 말수가 적어서 인사 정도 하는 사이였다”면서 냉기를 뿜었다. 하지만 장난기 가득한 박남정이 “완선씨는 선망의 대상이라 말도 잘 못 걸었다” “완선씨와 같이 무대 서는 것 만으로도 좋았다”며 얼음을 부수자 추억 얘기도 하나둘 꺼내놓았다. 사실 두 사람은 전성기 시절 매일같이 방송을 함께 했던 터라 ‘동창생 바이브’라고. “학교 다니듯 매일매일 만났으니 자연스럽죠. 우리와 이지연·소방차·양수경·이상은·변진섭이 얼굴 본 횟수만 해도 엄청날 걸요.”(김)

당시 가요 프로그램은 가수들이 자기 노래만 하는 게 아니라 함께 꾸미는 무대도 제법 있었다. 둘 사이 연결고리는 마이클 잭슨이었다. “그땐 PD가 시키면 학교에서 숙제하듯 해결했는데, 우린 가끔 마이클 잭슨 노래를 했죠. 둘이 아이보리색 의상을 맞춰 입고 ‘빌리진’을 같이했던 기억이 나네요. 컴퓨터음악이 일반적이지 않았을 땐데, 어떻게 좀 잘 해보려고 낙원상가까지 쫓아가서 힘들게 음악을 만들었어요. 드럼머신 같은 것도 써 보고 공을 들였죠. 같이 연습하면서 신기했어요. 여자는 브레이크나 팝핀을 아예 못하는 줄 알았는데, 통하는 게 있더군요. 그때 반응이요? 난리 났었죠.”(박) “남정씨나 저나 너무 인기가 많아서, 같이 뭘 하면 다들 좋아라 했죠. 뭘 해도 되는 시절이었어요.(웃음)”(김)

연습실에서 리허설 중인 박남정. [사진 마포문화재단]

연습실에서 리허설 중인 박남정. [사진 마포문화재단]

1980년대 댄스가수계 두 봉우리였지만, 뿌리는 완전히 달랐다. 영화 ‘플래시 댄스’의 한 장면에 비친 스트리트 댄스에 매료되서 혼자 이태원 클럽을 돌며 춤을 독학한 박남정에 비해, 김완선은 매니저계의 전설인 이모 한백희가 차린 연습실에서 당대 춤꾼들에게 레슨을 받으며 다양한 춤을 섭렵했다.

“완선씨는 체계적으로 춤을 배운 사람이고, 저는 땅 파서 연습한 사람이죠. 정말 아무 것도 없던 시절이에요. TV에서도 춤을 못봤거든요. AFKN(주한미군방송)에서 토요일 밤 12시에 하는 ‘소울트레인’이 유일했죠. 나이트클럽에 굳이 찾아가지 않으면 외국 음악을 들을 기회도 없었어요. 종로 국일관과 이태원의 모든 나이트클럽에서 알바를 하면서 춤을 익혔고, 데뷔 때는 안무도 직접 했죠.”(박) “그때 춤추는 사람들은 보통 나이트클럽 거울 앞에서 연습했다던데, 저는 춤선생님이 있었어요. 마포 공덕동에 우리 연습실이 아주 컸거든요. 우리나라 댄스씬의 첫번째 리더였던 이성문 선생님을 비롯해서 나이트클럽에서 연습하던 사람들이 우리 연습실에 모여들었어요. 그 덕에 저도 다양한 춤을 많이 접할 수 있었죠.”(김)

요즘은 수많은 아이돌 군단의 춘추전국시대지만, 80년대 두 사람은 라이벌도 없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에 가까웠다. 특히 김완선은 다른 여가수들에게 흔했던 안티 하나 없는 범접 불가능한 ‘천상계’였다. “그때는 여가수가 나오면 여자들이 굉장히 싫어했는데, 완선씨만 독보적으로 디스를 안 당했던 기억이 나요. 당시 이지연·세또래·강수지·하수빈 같이 청순한 스타일은 욕을 무지하게 먹었거든요. 완선씨만 격이 다르니 질투도 못한 거죠.”(박) “유치한 시절이었어요. 남자들이 너무 좋아하는 이지연씨가 무대에 서면 객석에서 여학생들이 어찌나 험하게 욕을 하는지, 옆에서 보기도 괴로울 정도였죠. 나 같으면 못 견뎠을 것 같은데, 지연씨는 그냥 못 들은 척 하는 게 너무 불쌍했어요. 지금은 멋지게 성공해서 잘 살고 있죠. 여가수들 모일 때 종종 같이 보고, 서로 SNS로 응원하고 있어요.”(김)

라이벌이 없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방심한 상태로 90년대 서태지와 아이들의 파격적인 등장을 목격했고, 격동하는 흐름에 ‘80년대 춤신춤왕’의 자리는 없었다. “라이벌이 없었던 게 아쉬워요.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경쟁의 니즈가 없으니 발전을 못한 거죠. 5년쯤 지나니 후배들이 튀어나오는데 이게 뭐지 싶고, 이미 따라갈 수 없더군요. 서태지가 나왔을 땐 짜증이 났죠.(웃음) 당시 제 신곡인 ‘비에 스친 날들’과 비교하며 그래도 내 노래보다 못하다 싶었으니까요. 사실 제 백업 댄서 ‘프렌즈’였던 이주노와 양현석이 미리 데모테이프를 들려주는데, 랩은 끝내주더군요. 저도 시도했었지만, 한국말로 랩을 하면 ‘간지’가 안 난다고 대충 했었거든요.”(박) “홍콩으로 떠나기 직전이었는데, 제가 패널로 있던 예능 프로에서 서태지가 첫 데뷔를 했어요. ‘난 알아요’ 노래가 좋았지만, 랩이 그 정도로 성공할 거라고는 생각 못했죠. 저도 그 무렵 6집에서 랩을 검토하다가 아직 이르다고 안 했거든요. 안 하길 잘했죠 뭐.”(김)

원조 아이돌로서 지금 아이돌 천하는 격세지감이다. 그들의 시대엔 서양 팝 스타일에 뒤처져 있다는 자괴감에 시달렸지만, 지금은 K팝이 대세가 됐다. 박남정의 딸 시은도 걸그룹 스테이씨 멤버로 활약 중이다. “시은이를 봤는데 너무 예쁘고 잘하더군요. 사실 요즘엔 못하는 친구를 찾기가 힘들어요. 노래만 하는 것도 아니고 춤과 연기까지 하도록 진화가 된 것 같아요. 다 잘하는 가운데서 살아남는 것도 어렵지만요.”(김) “요즘은 개인 방송이 있으니 자신만 있으면 기회를 만들 수 있어요. 기획사들이 그런 걸 눈여겨 보고 있죠. 물론 다들 잘하니 어렵지만, 튀면 다 찾아오게 돼 있어요. 결론적으로 아주 좋은 환경이 된 거예요.”(박)

콘서트는 둘 다 팬데믹 이후 처음이라는데, 추억여행보다 새로운 시도에 방점을 찍는다. 30여년간 춰 왔던 춤은 따로 연습할 필요도 없단다. “설마 우리가 순서 틀리고 넘어질까봐요. 춤 연습 안한 지 꽤 됐지만 다 배어 있어요.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웃음)”(김) “춤 연습은 엘리베이터 기다리는 동안 하는 정도? 그래도 완벽합니다. 그보다 저는 관객과 소통을 시도해 보려고요. 무대에서 노래만 부르는 것보다 관객 눈치를 봐 가면서 얘기도 좀 하고. 그런 걸 요즘 시대가 원하는 것 같아요. 퀴즈 내서 상품도 주고. 그런 식으로 구상하고 있어요.”(박)

박 “서태지가 나왔을 땐 짜증이 났죠”

오랜 세월 곁을 지켜주는 팬들이 있기에 가능한 시도다. 이제 가족이 됐다는 팬 얘기를 할 때 두 사람의 표정이 가장 밝았다. “36년 된 팬들이 아직 스무명 정도 옆에 있어요. 가수와 팬이 아니라 가장 친한 친구? 집에 초대도 하고, 꽤 자주 만나요. 다들 경력과 일이 있으니까 각자의 분야에서 제가 필요한 걸 도와주기도 하고. 무조건적인 서포트를 해주니 너무 고맙죠.”(김) “한달전 쯤 난생 처음 팬미팅을 했어요. 팬들이 주최한다길래 저도 조명, 음향 장비 챙겨서 같이 만들어 봤죠. 100명쯤 모였는데, 이런 게 된다고 상상을 못했거든요. 행사 때 삼삼오오 모이면 고마운 정도였으니까요. 이번에 체계적으로 해보니 영탁·임영웅이 안 부러워요. 이렇게 응원해 준다니, 나도 좀더 노력해 봐야겠구나 싶더군요. 임영웅 공연 때 버스 대절을 한다면 나는 헬기라도 준비해야겠다. 그런 힘이 생겼어요.”(박)

만나 보니 이들에겐 ‘레전드’란 수식어가 영 억울해 보였다. 둘 다 끝없이 새로움을 추구하는 ‘영원한 현역’이라서다. “10년 전부터 계속 싱글을 냈어요. 작년에도 두 번 냈고, 올해도 그럴 것 같아요. 작년 여름에는 저의 스토리로 만든 예술영화 ‘킬링디바’가 외국 영화제에서 작품상도 받고, 저는 여우주연상도 받았죠. 5월엔 뮤지컬도 할 예정인데, 이제까지와 좀 다른 일도 해보며 살고 싶어요.”(김) “저는 팬들과 함께 만드는 공연으로 전국 투어에 도전해 볼 생각이에요. 작게 하더라도 나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고 싶어서요. 완선씨도 게스트로 다 얘기된 상태죠.(웃음)”(박) “글쎄요, 뮤지컬이 바빠서요.(웃음)”(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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