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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리셋'할 수 있다면? 로봇母와 창조주 딸… 연상호 SF '정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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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공개되는 연상호 감독의 넷플릭스 신작 '정이'는 급격한 기후변화로 폐허가 된 지구를 벗어나 이주한 쉘터에서 전쟁이 발발하자, 이를 끝내기 위해 전설적인 용병 ‘정이’의 뇌를 복제해 최고의 전투 AI 정이(사진, 김현주)를 개발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SF 영화다. 사진 넷플릭스

20일 공개되는 연상호 감독의 넷플릭스 신작 '정이'는 급격한 기후변화로 폐허가 된 지구를 벗어나 이주한 쉘터에서 전쟁이 발발하자, 이를 끝내기 위해 전설적인 용병 ‘정이’의 뇌를 복제해 최고의 전투 AI 정이(사진, 김현주)를 개발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SF 영화다. 사진 넷플릭스

영화 '정이'에서 지난해 작고한 고 배우 강수연(가운데)이 전설의 용병이었던 어머니 윤정이를 뇌복제 전투 AI로 성공시키려는 딸 서현 역을 맡았다. 사진 넷플릭스

영화 '정이'에서 지난해 작고한 고 배우 강수연(가운데)이 전설의 용병이었던 어머니 윤정이를 뇌복제 전투 AI로 성공시키려는 딸 서현 역을 맡았다. 사진 넷플릭스

“내 부모에 대해 뭔가 ‘리셋’(재설정)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 어떤 선택을 할까. 영화에 담은 이러한 질문들이 한국적인 SF라 생각했습니다.”

연상호(44) 감독이 ‘한국적인 SF’에 도전장을 냈다. K좀비 붐을 일으킨 영화 ‘부산행’(2016) ‘반도’(2020), 시즌2로 계속될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2021)에 이어서다.
20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되는 ‘정이’ 제작보고회가 12일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 영화관에서 열렸다. 원안‧각본을 겸한 연 감독을 비롯해 주연 배우 김현주(45)‧류경수(30)가 참석했다.
‘정이’는 전설의 용병을 뇌 복제한 인공지능(AI) 전투 로봇 ‘정이’의 개발에 얽힌 모녀의 이야기다. 단 한 번의 작전 실패로 용병 윤정이(김현주)가 식물인간이 되자 윤정이의 딸 윤서현(강수연)은 AI 군수품 회사 크로노이드의 연구팀장이 되어 어머니를 닮은 ‘정이’ 복제에 매달린다. ‘정이’ 상품화에 혈안이 된 회사에 맞서 어머니의 존엄을 지켜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암울한 ‘사이버펑크’ 정조를 화면에 가득 담아낸 연 감독은 “아이콘으로만 존재했던 정이라는 인물이 그 모든 것에서 해방되는 이야기로, 인간성이 과연 인간만의 것인지 묻고 싶었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연상호 감독의 SF 영화 ‘정이’ #20일 넷플릭스 190여개국 출시 #故 배우 강수연 주연맡은 유작 #김현주, 식물인간‧전투로봇 연기

로봇 액션보단 SF적 질문 담은 모녀 드라마 

작품에서 로봇 액션보다 휴먼 드라마가 더 크게 부각된다. 극의 감정을 이끄는 주인공은 고(故) 강수연이 연기한 서현이다. 중년의 어머니와 중년이 된 딸이 각각 AI 로봇과 그 창조주가 되어 마주하는 상황이 흥미롭다. 김현주가 사지가 훼손된 식물인간으로 늙어가는 인간 정이와, 생성‧폐기를 거듭하는 복수의 로봇 정이를 모두 연기했다.
로봇들을 상대로 한 시뮬레이션 전투에 끊임없이 투입되는 로봇 정이는 마네킹처럼 무표정하다가 전원을 켠 순간 사고 당시의 고통스러운 감정을 급격히 분출하고 또다시 완전히 정지하는, 극과 극의 연기를 오간다.
김현주는 “AI인데 사람처럼 보여야 했다. 부자연스러운 동시에 자연스러워야 했다. 현장에서 연 감독님과 하나하나 만들어갔다”고 했다. 연 감독은 “김현주씨는 제가 생각한 정이와 그림체가 일단 맞았다. 잘 생겼잖나. ‘지옥’에서 순간적으로 감정을 뿜어내는 연기를 잘했는데, 당시 액션 훈련했던 것을 드라마에 모두 담지 못해 아쉬운 마음에 캐스팅했다”고 밝혔다.

"김현주 잘생겨…'지옥' 이어 '정이' 그림체 맞았죠" 

김현주(가운데)는 식물인간으로 늙어가는 인간 윤정이와 그의 뇌복제로 탄생한 로봇 정이를 오가며 연기했다. 사진 넷플릭스

김현주(가운데)는 식물인간으로 늙어가는 인간 윤정이와 그의 뇌복제로 탄생한 로봇 정이를 오가며 연기했다. 사진 넷플릭스

영화의 주 무대인 크로노이드 사내 풍경은 첨단 연구실과 구식의 제품 생산 공장을 정교하게 혼합했다. 연 감독은 “보안을 위해 유선을 많이 쓰는 시기의 세계관, 그런 것들이 사이버펑크적인 룩을 내는 데 좋은 소재일 것 같아 베이스로 두고 작업을 했다”며 “SF지만 옛날 홍콩 영화배우 전쯔단(甄子丹)의 동작 같은 처절하고 둔탁한 로봇 액션을 넣고 싶었다”고 말했다.
로봇 정이가 김현주 아닌 다른 로봇의 얼굴을 갈아 끼운 채로 감정 연기와 액션을 펼치는 장면은 그간 한국 SF에서 보지 못한 장면이다. 김현주의 눈동자 떨림 연기, 눈물에 비친 반사 장면 등을 컴퓨터그래픽(CG) 캐릭터에 녹여냈다. 김현주는 “최대한 제 표정을 담고 싶어하셔서 기계화된다는 생각 없이 그 장면의 감정을 살려 연기했다”고 말했다.

세계관·등장인물 던져놓은 설정 충분히 못 펼쳐

영화 '정이'에서 AI 전투 로봇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져 있다. 연상호 감독과 ‘부산행’ ‘반도’ ‘지옥’을 함께한 정황수 VFX 수퍼바이저가 '정이'의 컴퓨터그래픽(CG) 일체를 이끌었다. 연 감독은 “촬영 끝나고 후반 작업을 10개월 정도 했는데 로봇 대역 배우와 로봇(CG) 비율이 안 맞는 문제 등으로 마지막까지 수정했다. 후반작업이 끝날 때까지 결과물이 어떨지 나조차도 확신을 못할 정도였다”고 했다. 사진 넷플릭스

영화 '정이'에서 AI 전투 로봇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져 있다. 연상호 감독과 ‘부산행’ ‘반도’ ‘지옥’을 함께한 정황수 VFX 수퍼바이저가 '정이'의 컴퓨터그래픽(CG) 일체를 이끌었다. 연 감독은 “촬영 끝나고 후반 작업을 10개월 정도 했는데 로봇 대역 배우와 로봇(CG) 비율이 안 맞는 문제 등으로 마지막까지 수정했다. 후반작업이 끝날 때까지 결과물이 어떨지 나조차도 확신을 못할 정도였다”고 했다. 사진 넷플릭스

방대한 세계관과 일부 등장인물의 서사가 충분히 펼쳐지지 않은 점은 아쉽다. 기후 변화로 지구가 폐허가 되자 탈출한 인간들이 우주에 만든 새로운 터전 ‘쉘터’에서마저 수십 년째 내전을 벌이는 상태란 설명으로 시작하지만, 내전의 실체는 보여주지 않는다.
류경수가 연기한 크로노이드 연구소장 상훈 등은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의 사이비 교단 인물들과 캐스팅이 일부 겹쳐, 두 작품이 어딘가 이어진다는 인상을 주지만 연결고리가 명확하게 드러나진 않는다. ‘정이’가 독립된 영화라기보다 시리즈물의 1화 혹은 프리퀄처럼 다가오는 이유다.
연 감독은 “로봇 정이는 윤정이이긴 하지만 새로운 인물이기도 하다”고 확장 가능성을 내비쳤지만, 후속작 계획은 언급하지 않았다.

고 강수연 배우 유작…연상호 "'정이' 탄생 원동력"

넷플릭스 영화 '정이' 제작보고회가 12일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건대입구 영화관에서 열렸다. ‘정이’를 탄생시킨 군수품 회사 크로노이드 연구소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은 무대에서 연상호 감독(왼쪽부터)과 배우 김현주, 류경수가 참석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 넷플릭스

넷플릭스 영화 '정이' 제작보고회가 12일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건대입구 영화관에서 열렸다. ‘정이’를 탄생시킨 군수품 회사 크로노이드 연구소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은 무대에서 연상호 감독(왼쪽부터)과 배우 김현주, 류경수가 참석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 넷플릭스

‘정이’는 영화 ‘달빛 길어올리기’(감독 임권택) 이후 강수연의 12년 만의 장편 복귀작이다. 그가 지난해 5월 갑작스레 작고하면서 유작이 됐다. 영화 말미에 추모 자막이 뜬다. 제작보고회에서 그의 생전 모습을 담은 제작기 영상이 공개되자 김현주‧류경수는 눈물을 비추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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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는 “처음에 ‘내가 그분(강수연)의 눈을 보며 연기할 수 있나’란 생각에 겁이 났다. 그런데 촬영 현장에선 선배님이 아닌 그냥 동료였다. 누구보다 진지하고 현장에 열정적이셨고, 고민도 많으셨을 것”이라고 애도했다.
연 감독은 “영화를 이 자리까지 오게 한 원동력은 강수연 배우였다”고 강조했다. “한국에서 흔치 않은 SF영화인 데다 예산이 적지 않게 들어 종합 엔터테인먼트적인 성격이어야 하는데, 모녀의 이야기다 보니 영화화에 회의적인 측면이 있었다. 그러던 차에 강수연 배우가 윤서현 역에 떠오르면서 영화로 만들고 싶은 생각이 강해졌다”고 돌이켰다.

'정이'는 주연 배우 강수연이 촬영을 마친 뒤 지난해 5월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면서 그의 유고작이 됐다. 사진 넷플릭스

'정이'는 주연 배우 강수연이 촬영을 마친 뒤 지난해 5월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면서 그의 유고작이 됐다. 사진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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